[세상만사] 항주니 감독처럼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장항준 감독에게는 신비한 마력이 있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그는 2002년 '라이터를 켜라'로 감독 데뷔를 했지만 이후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며 한동안 영화계를 떠나 있었다.
그는 영화감독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청년실업률이 팬데믹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 등 고용이 불안정하고 물가는 오르는 팍팍한 상황이지만 부디 '눈물자국 없는' 항주니 감독처럼 살면 좋겠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장항준 감독에게는 신비한 마력이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인간적 호감과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이토록 밝고 명랑하며 사랑스럽기까지 한 50대 남성이 또 있을까 싶다. 스스로 ‘항주니’라는 애칭으로 칭하는 그는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을 들어도 “응 맞아” 하며 타격 없이 받아친다. 자존감 높고 낙천적인 성격 덕에 ‘눈물자국 없는 몰티즈’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간 작품 연출보다 예능으로 사랑받았다. 예능에서 화제가 된 그의 레퍼토리는 크게 두 가지다. 궁핍했던 20∼30대 시절 절친한 가수 윤종신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은 일, 아내인 김은희 작가가 드라마 ‘시그널’ ‘킹덤’으로 큰 성공을 거둔 뒤 아내의 수입으로 주로 생계를 꾸리게 된 일에 대해서다. 보통 자격지심을 느낄 법도 한데 그는 해맑기만 하다.
이를테면 신혼 때 생활비가 없어서 윤종신이 먹거리와 생필품을 채워줬다는 일화를 전하며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도움받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었어요. ‘너무 고맙다. 다음에 또 해줬으면 좋겠다’ 그랬죠(웃음).” 평소 아내의 카드를 쓴다고 얘기할 때도 태평했다. “아내는 글 쓰느라 너무 바빠요. 누군가는 (돈을) 써야 경제가 돌아갈 것 아닙니까.”
이런 그가 밉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상대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지니기 때문이다. 가령 그는 한 방송에서 “가장은 경제적·도덕적 우위를 점한 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 구성원들이 본받을 점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집 가장은 김은희”라고 말했다. 자격지심 없이 아내의 능력을 치켜세우는 모습은 가부장 사회를 향한 통쾌한 일격으로도 느껴졌다.
2017년 인터뷰에서 장 감독을 처음 만났다. 9년 만의 영화 복귀작 ‘기억의 밤’을 개봉할 때였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그는 2002년 ‘라이터를 켜라’로 감독 데뷔를 했지만 이후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며 한동안 영화계를 떠나 있었다. ‘싸인’ 등 드라마 연출과 예능 출연으로 인기를 얻었으나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그는 영화감독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신인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 작품이 ‘기억의 밤’이라면서 “되든 안 되든, 앞으로는 영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행보는 다짐대로였다. 3편의 연출작을 내리 선보인 뒤 야심차게 ‘왕과 사는 남자’를 내놨다. 그는 촬영 전 스태프들에게 “짜증 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소리치지 마라. 내 현장은 행복한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매사에 자만하거나 과시하지도 않는다. ‘왕사남’이 개봉 직후 흥행세를 타자 그는 무대인사에서 “거장 직전 감독”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타고난 유쾌함과 겸손함이다. 마침내 1000만 위업 달성을 눈앞에 둔, 진짜 흥행 거장 감독이 됐다. “나를 믿고 투자해 준 분들이 손해 보지 않았으면 좋겠고, 배우와 스태프에게도 옳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그의 진심은 실현됐다.
장 감독이 보여준 삶의 태도가 청년세대에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청년실업률이 팬데믹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 등 고용이 불안정하고 물가는 오르는 팍팍한 상황이지만 부디 ‘눈물자국 없는’ 항주니 감독처럼 살면 좋겠다. 자신을 믿으며 목표를 향해 명랑하게 나아가 보는 것이다. 장 감독 특유의 낙천적 태도가 영화계 전체로도 번졌으면 좋겠다. 침체에 빠진 영화계에 새해 첫 1000만 낭보와 함께 긍정적 에너지가 깃들길 바란다. ‘한국 영화와 극장 산업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좋은 영화는 언제든 관객이 찾는다’는 희망으로 치환되길 소망한다.
권남영 문화체육부 기자 kwonn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동 엑소더스… 이란 교민 인접국 긴급 대피
- 코스피만 더 빠졌다… 시총 377조원 증발
- “다음 생에도 내 딸로”…6명 살리고 별이 된 10대 소녀 [아살세]
- 국회, 尹 사진 철거하고 李대통령으로…“우 의장 결정”
- 1만 팔로워 기독교 인스타, 알고 보니 JMS?
- ‘여수 4개월 영아 살해’ 부모 신상 ‘탈탈’…아기 죽던 날 아빠는 ‘이곳’에
- 李대통령 분당 아파트 매수희망자 등장…“계약은 아직”
- [단독] “총리실 움직여 경찰서장 목줄”… 이만희 ‘복심’ 이희자, 정치권 접촉 정황
- [단독] ‘이재명표 배드뱅크’ 빚 탕감 시작도 못 했는데… 이자만 챙겨
- [단독] 임대아파트 낙인에… 같은 동네인데 초등 입학생 수 ‘극과 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