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사회의 한계 뛰어넘는 정열의 춤사위

김상목 2026. 3. 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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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매드 댄스 오피스>

[김상목 기자]

 <매드 댄스 오피스> 포스터
ⓒ ㈜엔케이컨텐츠
구청 기획과장 '국희'는 뛰어난 업무 능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불도저 추진력 덕분에 구청장에 신임받는 그녀는 공석인 부구청장 1순위 후보다. 게다가 사랑하는 외동딸 '해리'의 임용고시 합격까지 경사가 겹쳤다. 홀로 자식을 키우면서도 직장에서 흠잡을 데 없는 경력을 쌓아온 노력은 이제 보상을 받을 참이다.

하지만 만사형통 같던 앞날에 먹구름이 닥친다. 승진은 라이벌 총무과장에게 빼앗길 위기,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딸의 가출은 오직 앞만 보고 자신과 주변을 채찍질하던 그녀를 엉망으로 뒤흔든다. 딱히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곤경에 빠진 국희는 내키지 않는 민원 처리차 플라멩코 연습실을 찾으며 변화가 깃든다.

웃기엔 좀 불편한 관료행정 블랙코미디

<매드 댄스 오피스>는 욕심이 아주 많은 영화다. 코미디 정조를 시종일관 고수하면서도, 지방자치와 행정 전반에 걸친 시사적인 조명과 함께 변화를 추동하는 엔진으로서 여성 연대를 앞장세운다. 여기에 세대 갈등도 더해진다. 관객이 일상에서 항상 접하는 사회 현실 전반이 다뤄지기에 화면 안과 밖의 경계가 뚜렷하게 그어지지 않는다. 이는 양날의 칼로 작동하는데, 한 시대의 풍속도를 높은 압축률로 저장한 생생한 풍자물이 될 가능성과 함께 조금만 삐끗하면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혼종으로 전락할 위기 중간에 놓이는 위치다.

우선 주 배경이 되는 구청 내부 사정부터 살펴보자. 딱히 구정에는 관심이 덜해 보여도 연임에는 아주 열심인 구청장, 비리로 면직되어 부재한 부구청장, 공석을 놓고 경합하는 기획과장과 총무과장의 구도가 전제된다. 동기생으로 보이는 두 과장의 업무 스타일은 천양지차다. 연줄과 요령에 특화된 총무과장 vs 안 되면 되게 하라! 무한동력이 장착된 것처럼 일중독인 기획과장이다. 확실히 업무 능력은 기획과장 국희가 월등하지만, 정작 기획과 부하 직원들은 그런 선임자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에 질질 끌려다닌다.

딱 한 사람, 주임 '연경'은 열성적인 국희의 추종자다. 그녀는 과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며 따라 배우려 시도한다. 비밀 노트엔 마치 일기장처럼 빼곡하게 국희의 일상이 메모된다. 물론 마음과 현실은 다르다. 자신감이 부족한 연경은 늘 동네북으로 털리는 게 일상이다. 선배 직원들도, 경쟁부서인 총무과 직원들도 기획과의 약한 고리로 연경을 표적으로 잡고 희생양으로 삼기 일쑤다. 국희 역시 그녀를 영 미덥지 않게 여기긴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청 행정 일상이 내내 그려진다. 바깥에서 보기엔 그저 우스꽝스러운 목표 설정 운동이 일상화한 구청 풍경, 하지만 정작 구호 외에 제대로 진지하게 구현하려 노력하는 이는 국희 외엔 아무리 찾아도 당최 보이지 않는 현실. 요란하게 구민을 위한 대규모 사업이 진행되지만, 정작 주민들은 별 기대가 없는 풍경. 야심 가득한 목표를 제시하지만, 정작 동상이몽으로 진행되는 관료주의 풍조가 화면 안에 가득하다. 이야기의 주요 축인 시민공원 건립 기념 축제 준비 과정이 백미다.

나를 따르라! 밀어붙이는 국희의 고군분투와 제대로 손발 안 맞는 공무원 사회 내 한숨 나오는 실태의 환장할 조합이다. 군대 내무반을 다룬 콩트처럼 위에서 내린 지시는 하급자로 전가되다 본래 의도와 한참 멀어지고, 그런 탁상행정 탓에 좋은 취지로 출발한 기획은 탱자가 된다. 윗사람은 보여주기식 이벤트에만 솔깃하고, 사업의 기본 의도와 원칙엔 다들 무관심하다. 공직 사회에선 '줄'을 잘 서는 게 중요하다며 다들 권력의 향배에만 눈치 백단이다. 이러니 일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관객에겐 너무 익숙한 풍경인 셈.

'저녁이 있는 삶'이 선물할 변화의 바람
 <매드 댄스 오피스> 스틸
ⓒ ㈜엔케이컨텐츠
주인공은 곤경에 빠진다. 딱히 국희가 잘못한 건 없다. 게으름 부리거나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갈아 넣으며 열심히 노력한 게 죄다. 오랜 고생의 보답으로 마땅히 그녀에게 주어져야 할 공적 보상과 사적 보람은 동시에 날아갔다. 수고한 사람보다 기회주의적인 경쟁자가 출세하고 홀몸으로 번듯하게 키운 자식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 집을 나가서 연락도 중단된 상태다. 이쯤이면 대체 50 평생 뭐하러 살았나 후회막급일 뿐이다.

그렇다고 맡은 일을 내버릴 국희가 아니다.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휴가란 없이 야근을 밥 먹듯 하며 불만족해도 주어진 업무에 분주하다. 악성 민원인에 대처하고자 숨지 않고 직접 대면하려 한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난생처음 플라멩코 학원에 발을 들인다. 그저 눈덩이처럼 공론화하기 전에 대화로 풀고자 찾아간 그곳에서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춤바람'이 난다.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다.

국희는 요즘 온라인에서 너무나 쉽게 매도 대상인 '월급 루팡' 공무원들과 대척점에 선 존재다. 우리가 내는 세금이 한 푼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그녀는 불철주야 '열일하는' 존재다. 그러나 극소수를 제외하면 그런 국희의 노고는 환영받는 거랑 거리가 멀다. 기획과 직원들은 죽어라 일하는 과장 덕분에 사생활 파탄 직전이고, 눈치만 살피며 누구도 능동적으로 일하길 꺼린다. 야전사령관처럼 진두지휘를 해봐야 나머진 몽땅 예비군 훈련장이 따로 없다. 주인공은 사상누각을 세워왔던 것뿐이다. 반복되는 야근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만을 쌓고, 결국엔 화근으로 작용한다.

경제적 자립과 함께 무시받지 않기 위한 사회적 지위를 위해 낮이고 밤이고 구청에 봉직하고, 나머지 시간은 엄격하게 딸 훈육에 쏟아부은 국희의 지난 삶은 여가나 자아실현이 끼어들 틈이라곤 찾을 수 없었을 게 눈에 선하다. 한때 유행하던 '저녁이 있는 삶'이란 표현은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이런 당연한 요구가 희귀하고 수용되기 어려웠던 탓이다. 국희 역시 상상도 해보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절도 있는 동작과 자유분방한 춤사위가 어우러진 플라멩코의 매력은 사방에서 벽이 조여오듯 곤경에 처한 주인공에게 해방의 춤이 되어준다.

물론 국희에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다. 그러나 우연으로 가장한 필연적 운명처럼 플라멩코 교습은 그녀에게 돌파구가 되어준다. 알고 보니 '일석삼조'가 따로 없다(영화를 본다면 이게 어떤 뜻인지 퍼즐이 풀릴 테다). 그러나 스스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지경에 더 움츠러든 몸과 마음이 개방될 때 피로와는 다른 감각이 개방될 수 있다. 레저와 취미생활의 긍정적 효용이 제대로 구현되는 순간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지인데 말이다.

세 여자의 앙상블, 세대 간 소통의 가능성

얼굴이 익숙한 많은 연기자가 <매드 댄스 오피스> 화면을 채우지만, 카메라의 초점은 3명의 여성에게 집중한다. 우선 주인공 국희다. 중년에 접어든 성실한 직장여성이자 헌신적인 엄마다. 다음은 직장 후배 연경, 자신감이나 패기라곤 찾기 힘든 전형적인 'Z세대' 직장인이다. 늘 힘들어하고 책임지지 못한다. 그리고 국희의 딸 해리, 엄마 말 고분고분 잘 듣는 착한 딸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엄마랑 불구대천 원수나 다를 바 없다. 폭탄선언과 함께 가출해 전화 한 통 걸 수 없는 해리와의 관계 단절에 애가 타는 주인공이다.

연경은 그런 국희에게 해리의 대체재로 공무와 상실감 양쪽을 모두 채워준다. 여전히 기성세대 일부에선 나약하고 문제 있는 면모로 파악하는 정서적 상처를 지닌 그녀는 존경하는 상사의 상처를 안타까워하며 딸과의 소통 문제를 도우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유일무이한 상담자인 동시에 갈등하는 세대 간 이해의 가교로 '델마와 루이스'처럼 관계를 심화한다. 둘은 상사와 부하를 넘어 번갈아 서로를 돕고 격려하며 이상적인 직장 동료 관계로 향한다. 그리고 더불어 변화의 발걸음을 내디딘다.

해리의 등장 분량은 국희와 연경에 비교하면 약소하지만, 연경에 일정하게 겹치며 앞만 보며 달려왔던 국희에게 인생 전환점으로 중대한 의미를 띠는 캐릭터다. 아마 자녀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기성세대라면 국희와 해리의 짧지만 격한 대립은 남의 일이 아닌 감정이입 대상이 될 법하다. 이미 다수 영화와 드라마로 갈고 닦은 염혜란 & 최성은 배우와 합을 맞춘 아이돌 출신 연기자 아린의 배역 소화력이 돋보인다. 감독이 이 3명 역학관계에 공들인 기색이 역력한 지점이다.

영화의 완성도 너머 현실로의 확장 포인트
 <매드 댄스 오피스> 스틸
ⓒ ㈜엔케이컨텐츠
아쉬운 점이라면, 위 3명의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만큼 반비례하는 나머지 배우들의 도구화다. 보고 있으면 눈에 두드러질 만큼 대부분의 출연 배우가 시작과 끝에서 고정된 역할과 성격에 머문다. 변화가 쉽지 않은 공무원 사회 현실 반영이라면 반영이랄까? 메인 악역이라 할 구청장과 총무과장은 물론, 악인이라기엔 애매해도 평범한 월급 도둑 노릇의 대다수 구청 공무원은 개선도 회심도 딱히 엿보일 게 없다. 독립영화판에서 검증된 몇몇 연기자가 평범한 '개그캐'로 그치거나, 주요 여성 배역에 집중된 조명 덕분에 남성 배역 절대다수가 개성도 없을뿐더러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도 그다지 개연성과 연결되진 않아 보인다.

주요 사건과 상황들은 자연스럽게 현실을 반영하게 만든다. 공감하기엔 장벽이 낮지만, 반대로 감정을 제대로 이입하기엔 농도가 옅은 편이다. 공직 사회의 부정적 관행이 살짝 공분을 불러오긴 하지만, 통쾌한 해결책이나 갈등의 해소보다는 전지적 존재에 의한 예외적 기회에 가까운 방책에 그친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화면 속 구청은 예전과 변할 것 없이 연공서열과 연줄 위주로 돌아갈 테다. 그래서 뒷맛이 썩 개운하거나 후련하진 않다. 외려 현실고증이 뛰어난 셈이긴 한데 영화가 코미디 정조를 시종일관 유지하기에 부조화에 가까운 셈.

염혜란과 최성은, 두 배우는 인상적인 호흡을 선보인다. 이 영화의 필살기인 플라멩코 춤과 공무 수행의 교차, 그 분기점마다 화면 가득 잡히는 국희와 연경의 눈동자 실핏줄까지 드러나는 표정의 미세한 떨림, 관객의 시선과 맞닿은 시선과 눈빛이 제법 근사하다. 풍자의 예리함이 꽁꽁 얼어붙은 관객 가슴 속 동토를 뚫기엔 역부족이고, 대개 이미 익숙한 소재의 반복이긴 해도 특별히 부족하거나 치명적 구멍도 없는 안전하고 무난한 작업이다.

<작품정보>

매드 댄스 오피스
Mad Dance Office
2026 한국 휴먼 코미디
2026.03.04. 개봉 106분 전체관람가
감독/각본 조현진
출연 염혜란, 최성은, 우미화, 박호산, 백현진, 아린
제작 ㈜컨텐츠 크리에이티브 그룹 문
배급 ㈜디스테이션
제공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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