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폭력으로 인한 죽음 막으려면 특별법 따로 만들어야"

한채연 2026. 3. 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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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여자들③] 허윤정 한국여성변호사회 수석부회장 인터뷰

이재명 정부가 교제폭력 대응을 국정과제로 지정하면서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언론은 주로 굵직한 교제 살인 사건을 재조명하지만, 죽은 피해자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경험만이 문제를 알리고 제도를 바꿀 수 있다. 신고부터 회복까지, 그들이 마주한 장벽은 무엇이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제도를 통해 개선할 수 있을까? 실제 사례를 통해 그 가능성을 모색해봤다. <기자말>

[한채연, 유영주, 나도아, 이서영 기자]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전 연인에게 살해 당한' 뉴스가 잊을 만하면 보도되는 한국 사회에서 교제폭력은 '일상화된 폭력'이 됐다.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과에 따르면 2025년 11월 기준 교제폭력 관련 112 신고 건수는 9만 6520건(하루 평균 289건)으로, 이는 2024년 8만 8394건(하루 평균 242.2건) 대비 약 9.2% 증가한 수치다.

이에 지난 1월 22일 법무부는 상반기 민생·안전 10대 법안을 선정해 발표하면서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해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 피해를 막으려면 기존의 법 개정이 아닌 교제폭력을 규정하는 별도의 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허윤정 한국여성변호사회 수석부회장을 지난해 12월 서초동에서 만나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다. 아래는 일문일답.

"형법상 반의사불벌조항 때문에 피해자 보호 실패하기도"
 한국여성변호사회 허윤정 수석부회장.
ⓒ 취재원 제공
- 스토킹처벌법이나 가정폭력처벌법과 달리, 교제폭력을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별도의 법이 부재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교제폭력 사건은 어떤 법을 통해 처리되고 있나?
"교제폭력 사건은 주로 스토킹처벌법 또는 형법을 통해 처리되고 있다. 2024년 한국여성변호사회 지원사례를 기준으로 교제폭력 사건 기소 죄목을 보면 폭행, 상해, 카메라 촬영 및 촬영물 이용 협박, 강제추행, 강요 순으로 많았다. 폭행·상해가 가장 많으니 교제폭력은 대부분 형법으로 처리되거나 스토킹에 해당하는 경우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한다."

- 스토킹처벌법에서는 반의사불벌조항이 폐지됐지만, 여전히 폭행이나 협박(형법)은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한다. 반의사불벌조항이 교제폭력 사건에서 어떻게 작용한다고 보나?
"범죄 행위가 스토킹처벌법에서 규정하는 스토킹에 해당한다면 피해자 의사와 상관 없이 처벌할 수 있지만, 모든 교제폭력 사건이 스토킹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폭행죄만 적용된 사건이라면, 실제 적용되는 법조가 형법이다보니 피해자가 처벌 불원을 표명할 경우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게 된다.

형법상 반의사불벌조항은 피해자가 보복의 두려움이나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을 이유로 처벌 불원을 표명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때 분리 조치 등 경찰의 실질적인 보호가 이뤄지지 않다보니 2차 피해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반의사불벌조항으로 피해자 보호에 실패해 피해자가 사망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이는 교제폭력을 법제화하지 않는다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 결국 피해를 막으려면 교제폭력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인데,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방안이 적합하다고 보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제화 방안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해외처럼 가정폭력처벌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법률혼 외 동거 관계 등 가족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법적으로 인정되는 외국과 달리, 가족의 범주를 좁게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결혼을 전제하지 않거나 일시적 만남인 경우에는 가정폭력처벌법 적용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의 정의에 친밀한 관계를 포함한다는 것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

두 번째 방안으로, 스토킹처벌법을 개정하자는 의견이다. 물론 교제폭력과 스토킹 범죄에 유사점이 있어 현재도 스토킹처벌법을 인용해 교제폭력 사건을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스토킹처벌법은 스토킹 행위를 넘어서는 다양한 폭력에 대한 처벌을 하기가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

세 번째 방안이 바로 별도의 교제폭력 법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어떤 죄를 법적으로 명명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범죄 예방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토킹처벌법을 제정해 경각심을 높인 것처럼 교제폭력처벌법을 따로 만들어야 사회적 인식 도모와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2대 국회 발의 교제폭력 관련 법안 종류
ⓒ 법제처 국회입법현황
- 그러나 교제폭력 법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친밀한 관계(교제관계)를 법적으로 정의하기 모호하다는 점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법안은 추상적인 것이 많고, 그걸 구체화하는 것이 수사기관과 법무부의 역할이다. 법이 모호하거나 추상적일지라도 수사기관과 법원이 해석을 통해 그 공백을 메울 것이라고 본다. 판결이 축적되면서 법이 규율하는 교제관계가 무엇인지 점차 명확해질 것이다. 친밀한 관계(교제관계)를 판단하는 것은 법 적용 과정에서 하는 것이므로, 당장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포괄적인 규정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 교제폭력 입법 시 추가적으로 포함돼야 할 제도가 있다면.
"가해자 위치추적 전자감시 제도가 필요하다. 접근금지 명령은 위반 시 신고해야만 처벌이 이뤄진다. 그렇다보니 이미 피해를 당한 후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제폭력은 그 폭력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는 사건이 많은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있는 데다 자칫하면 피해자에게 또다른 부담을 줄 수 있다. 위치추적 장치를 도입하면 실시간으로 가해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관리해 추가 피해를 예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참고할 만한 해외 모델이 있나?
"미국, 영국 등은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폭력이 발생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으면 가해자를 반드시 체포하는 의무체포제를 도입해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단순히 분리 조치나 권고를 넘어선 강력한 피해자 보호 방안이기에 참고할 만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 교제폭력 법률 지원 변호사로서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피해자 입장을 헤아릴 감수성을 지닌 변호사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여성변호사회에서 피해자 법률 상담을 지원하고 있지만, 예산 조기 마감으로 지원이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피해자가 제대로 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이런 법률상담 지원이나 국선변호 지원 등 제도적 보호 조치를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성 또는 청소년간 교제폭력 사건도 동일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의 사각지대 또한 메꿔야 한다."

- 신고를 망설이고 있는 피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피해자들은 가해자 처벌 외에도 사건을 공적으로 이야기하는 과정 자체에서 위로받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상담과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위한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피해를 입고 있다면, 저희를 찾아주길 바란다."

[살아남은 여자들]
① "미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교제폭력 3번의 신고,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https://omn.kr/2gr4r
② 가랑비에 옷 젖듯, 교제 폭력은 그렇게 시작된다 https://omn.kr/2h5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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