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론'의 진원지가 바뀌었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
| ▲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한국사 강사 출신 유튜버 전한길(본명 전유관), 김미영 VON 대표, 이영돈PD, 박주현 변호사가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펜앤마이크>에서 부정선거를 주제로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
| ⓒ 개혁신당 제공 |
그런 실상을 반영하는 것이 1992년 8월 31일 한준수 전 충남 연기군수가 폭로한 3·24 총선의 관권선거 실태다. 그해 8월 31일 자 <중앙일보> '전 군수 관권선거 폭로'는 "한씨는 이날 회견에서 총선자금 배포용으로 이종국 충남지사로부터 1천만 원(10만원권 수표 1백 장) 등 세 차례 총 2천만 원을 받아 현금으로 배포했다며 그중 9백만 원(10만원권 수표 90장)을 증거로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그해 4월 16일 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3·24총선이 벌어진 3월에 서울시의 비빔밥 평균 값은 2860원이고 짜장면 평균은 1590원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충남지사가 연기군수에게 건넨 금액에 3이나 4를 곱해야 현재의 가치가 대략 도출된다.
위와 같이 행정 라인을 통해 선거에 투입된 금전은 현물이나 현금의 형태로 유권자에게 전달됐다. 그해 3월 17일 자 <경향신문>은 선거자금을 '총알'이나 '탄환'에 비유하면서 "50~60년대 선거 때는 막걸리와 고무신탄이 주종(主種)탄"이었다고 한 뒤 "(요즘은) 현찰탄이라야 위력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부정선거가 눈에 잘 띄던 시절에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쪽에서 부정선거론을 제기했다. 이승만 시절의 민주당, 박정희 시절의 신민당, 전두환 시절의 신한민주당·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 등이 그 진원지였다.
반면, 21세기에는 정반대 진영이 주된 진원지다. 자유당·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한나라당을 계승하는 보수진영이 부정선거 폐해를 호소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윤석열이 12·3 내란의 명분으로 제시한 것 중 하나도 부정선거 규명이다.
그런데 보수진영은 근거를 분명히 제시하지 못한다. 지난달 27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부정선거 음모론' 토론을 벌인 전한길 한국사 강사는 근거를 대라는 추궁에 대해 "그래서 선관위 서버를 까보자, 투표인명부를 까보자는 것"이라는 말로 응수했다. 윤석열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군을 파견한 것 역시 그 증거를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가 부정선거론에 동의하는가?'
제대로 입증하지도 못할 부정선거론이 무책임하게 유포되는 일차적 원인은 최근 30년간의 대통령선거 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1948년 이래의 근 반세기 동안 대선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보수진영은 1997년 이후로는 3승 4패를 기록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의 당선은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당수의 보수진영 유권자들 사이에서 부정선거론이 퍼지는 한 가지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원인은 정치적 지형 변화다. 직업 정치인들이 정치를 주도하던 시절은 인터넷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달과 함께 이미 옛날이야기가 됐다. 정치적 포퓰리즘의 확산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반 대중이 링 밖의 관중으로 머물지 않고 직접 링 위로 올라가는 일이 이제는 보편적 현상이 되고 있다.
정치에서 대중의 역할이 강화되면, 국회의원들과 대통령이 주권자를 대리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의존도가 자연히 낮아진다. 이는 대의제를 지탱하는 핵심 요소인 선거제도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트리게 된다.
<한국정치학회보> 제59집 제5호(2025.12)에 실린 장승진 국민대 교수의 논문 '누가 부정선거론에 동의하는가?'는 포퓰리즘 확산과 선거제도 지지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세계 학계의 연구 결과를 이렇게 정리한다.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유권자들 역시 민주주의를 가장 바람직한 정치체제라고 생각하고 지지하지만, 이와 동시에 현재의 민주주의 정치과정이 일반대중의 의지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맥락에서 포퓰리즘 성향이 강할수록 선거와 의회를 통한 대의제 민주주의를 불신하고 국민투표와 같은 유권자의 직접적인 참여에 기반한 정책 결정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유권자일수록 선거의 무결성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증거도 존재한다. 그리고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유권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가 침묵하는 대중을 대변하기 때문에 절대로 질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러한 믿음이 배반되었을 때 현실을 부정하고 음모론에 기댐으로써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려고 하기 쉽다."
대의제에 대한 불신은 보수진영을 지지하는 대중뿐 아니라 진보진영을 지지하는 대중에게서도 확인된다. 그런데도 보수진영 쪽의 대중이 선거제도에 대한 불신을 더 많이 나타내고 있다. 이는 보수진영 대중에 대한 보수진영 정치인들의 리더십에서 주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자기 진영 정치인에게 믿고 맡겨도 된다는 신뢰가 보수진영 내에서 상대적으로 낮게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보수진영 정치인들의 리더십 약화와 보수진영 대중의 발언권 강화는 이 진영의 분열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최근 이 진영에서는 대한민국 체제을 거부하거나 불신하는 기운이 상승하고 있다. 보수는 현 체제를 보호하고 수호해야 하는 진영인데도 이처럼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체제불신세력이 가장 믿지 못하는 국가기관은 선관위
<현대정치연구> 제18권 제2호(2025.8)에 실린 성예진 성균관대 좋은민주주의연구센터 전임연구원의 논문 '2025년 체제불신, 체제수호 보수의 분화'는 2022년·2024년·2025년에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체제를 불신하는 대중의 비율이 진보나 중도층보다 보수층에서 최근 급격히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
|
| ▲ 본문에 설명된 통계. |
| ⓒ 성예진,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
|
|
| ▲ 본문에 설명된 통계. |
| ⓒ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성예진 |
국회에서는 박근혜·윤석열 탄핵소추의결이 나오고 헌법재판소에서는 박·윤 탄핵결정이 나왔다. 선관위에서는 선거 결과에 대한 공인된 확인이 나왔다. 이에 비해 최근의 대법원은 선거와의 관련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이것이 위 수치에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의 민주진영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에 비해, 21세기 보수진영에서는 부정선거 음모론과 함께 '못 믿겠다 갈아보자'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 상황에 대해 보수정당 지도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듯한 현상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흐름이 공고해지면 한국 보수는 양분될 수밖에 없다. 보수정당이 보유한 국회 의석의 상당수가 극우정당 수중에 들어갈 수도 있다. 이 상황이 장기화하면 진보진영에도 영향이 미치게 된다. 극우세력이 부정선거론을 추동하는 지금의 상황은 진보·보수를 초월한 정치권 전반의 일대 개편으로 이어질 만한 현상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90%대 검거율'에 숨겨진 진실... 피해자는 왜 절망하는가
- "나는 자폭을 못했다, 살아남은 게 불편하다"... 이 청년의 정체
- [오마이포토2026] 송언석 "오늘 대구경북통합법을" - 한병도 "충남대전은?"
- 이렇게 '자기소개'하면 다들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 "노인일자리, 복지 비용 아닌 국가 인구정책 핵심 투자"
- '대통령 팬카페 강퇴' 최민희 편집권 침해 논란... "정청래 악수가 그리 중요?"
- 900만 돌파 <왕사남> 수양대군과 전두환의 평행이론
- 장동혁 모친 시골집 거주는 '사실'... 보령 주민들 만나 들어보니
- 급락장에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 발동... 한 달만
- "작살로 다금바리 잡는 낚시꾼들, 너무 화가 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