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먹어도 안 잡히는 혈압… 숨은 원인은 ‘망가진 콩팥’

민태원 2026. 3. 3.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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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고혈압성 콩팥병
게티이미지뱅크

고혈압 지속땐 콩팥 미세혈관 손상
콩팥 기능 저하 염·수분 조절 힘들어
콩팥 손상때 까지 뚜렷한 증상 없어
소변 거품·혈뇨·야간뇨 있다면 의심
정기적 콩팥·소변 검사로 예방해야

40세 남성 A씨는 평소 고혈압이 있었으나 치료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 시력 저하로 안과를 찾았다가 받은 혈액 검사에서 사구체여과율(콩팥이 1분당 걸러주는 혈액량, 정상 90~120㎖)이 분당 25㎖로 크게 떨어져 ‘만성 콩팥병 4단계’에 해당된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신장내과로 즉시 의뢰돼 조직 검사 결과 ‘고혈압성 콩팥병증’으로 진단됐다. 고혈압이 콩팥 기능 손상을 불렀는데도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A씨는 뒤늦게 고혈압 치료를 받았으나 콩팥 기능은 점차 악화해 결국 투석을 받을 상황에 처했다.

고혈압은 2024년 기준 19세 이상 3명 중 1명(30.7%)이 앓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그런데 고혈압 약은 한 번 복용하면 중단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에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 “혈압이 조금 높은 편”이라거나 “혈압약만 먹고 있다”며 단순 고혈압 정도로 생각하고 정작 소변이나 혈액 검사를 통해 콩팥 기능을 확인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러다 A씨처럼 콩팥병이 꽤 진행된 상태로 발견되기도 한다. 말기 콩팥병 단계까지 가면 투석 치료나 콩팥 이식을 받아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만성 콩팥병의 원인 질환으로 당뇨병이 많이 알려져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 당뇨병성 콩팥병의 증가세가 이어지자 몇 년 전부터 벌여 온 관련 학계의 대국민 홍보·교육 등 인식 개선 노력 덕분이다. 고혈압성 콩팥병의 심각성 또한 못지않은데, 환자·국민의 인식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편이다.

2024년 대한신장학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투석이나 콩팥 이식 등 신대체요법이 필요한 말기 콩팥병 환자의 원인 질환으로 당뇨병이 45.9%로 가장 많았고 고혈압이 22.2%로 두 번째를 차지했다. 이 같은 경향은 지난 20년간 비슷했다. 고혈압성 콩팥병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 고혈압인 줄 알았는데…

콩팥은 혈액을 걸러 몸속 노폐물을 소변으로 빼내고 체내 수분과 전해질 균형을 조절하며 혈압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고혈압과 콩팥 질환은 서로 깊이 연결돼 있다. 고혈압이 오래 지속되면 콩팥의 미세혈관이 손상돼 여과 기능이 떨어지고 반대로 콩팥 기능이 나빠지면 염분 및 수분 조절이 어려워지고 혈압이 더 올라 ‘이차성 고혈압’ 유발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문제는 콩팥이 상당 부분 망가질 때까지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기엔 피로감, 부종, 소변 변화 같은 증상이 거의 없거나 매우 미미해 일상에서 알아차리기 어렵다. 윤혜은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2일 “고혈압 환자 중 상당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콩팥 질환을 함께 앓는 경우가 많다”면서 “콩팥 기능이 천천히 나빠지는 경우 자각 증상이 없기 때문에 검사를 하지 않는 한 콩팥 기능 이상을 알기 어렵다. 이는 고혈압 약을 복용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사에서는 단백뇨가 검출되거나 사구체여과율이 감소하는 등 ‘경고등’이 나타날 수 있다. 소변·혈액 검사를 통한 정기적인 콩팥 기능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윤혜은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가 소변 검사 결과 단백뇨가 의심되는 40대 여성의 혈압을 측정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등 국내 다기관 연구팀이 만성 콩팥병 환자 2044명을 대상으로 3.6년간 추적 관찰해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수축기 혈압이 120㎜Hg 미만으로 조절된 환자군에 비해 140㎜Hg 이상으로 높게 유지된 그룹에서 사구체여과율이 50% 이상 감소하거나 신대체요법을 시작하는 위험이 2.2배 높았다.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을수록 콩팥 기능이 더 빠르게 저하됐다.

가톨릭의대 산하 8개 부속병원이 진행 중인 코호트(동일 집단) 연구에선 국내에서 가장 흔한 사구체신염(혈액 여과 기능을 하는 사구체에 염증 발생)인 ‘IgA 신증’ 환자 가운데 단백뇨가 많은 환자를 분석한 결과, 혈압 조절이 질환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확인됐다.

거품 많은 단백뇨, 콩팥병의 초기 신호

고혈압 환자는 언제 콩팥 질환을 의심해야 할까. 우선 혈압약을 2~3가지 복용하고 있음에도 혈압이 지속적으로 높다면 단순한 본태성 고혈압이 아니라 콩팥병에 의한 이차성 고혈압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 충분한 용량의 혈압약을 사용해도 혈압이 조절되지 않거나 최근 갑자기 혈압이 올랐다면 콩팥 기능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건강검진 등 소변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온 것도 중요한 신호다. 콩팥 질환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지만 소변 검사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변화가 나타난다. 소변에 거품이 많은 단백뇨, 혈뇨, 오줌량 감소, 야간뇨가 있다면 꼭 확인이 필요하다. 윤 교수는 “고혈압이 있는데 소변 검사에서 ‘요단백 양성’이 나온 경우 콩팥 기능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단백뇨는 콩팥병의 초기 신호”라고 말했다.

몸이 붓는 증상 역시 유념해야 한다. 콩팥이 체내 수분과 염분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 얼굴이나 발목, 종아리 등에 부종이 생길 수 있다. 부종이 하루 종일 지속되면서 혈압 상승이 동반된다면 콩팥 질환을 의심해야 한다.

고혈압 진료 과정에서 시행한 혈액 검사에서 크레아티닌 수치가 올라가거나 사구체여과율이 줄었다면 증상이 없더라도 이미 콩팥 기능이 떨어졌다는 객관적 지표이므로 전문 진료가 필요하다. 40세 이전에 고혈압을 유병하거나 당뇨병·심혈관 질환이 동반된 경우, 가족 중 콩팥 질환자가 있는 경우 역시 콩팥 질환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고혈압이 있다면 단순히 혈압 수치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콩팥 기능 검사와 소변 검사를 함께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고혈압이나 콩팥병을 갖고 있다면 저염식과 운동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흡연은 혈관의 동맥경화 유발요인이므로 금연이 필수다.

윤 교수는 “고혈압 약을 한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약물치료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혈압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했을 때 생기는 문제가 더 크다”면서 “고혈압 초기에는 식습관과 운동을 통해 조절 가능하며 약물치료를 병행하다가 좋아지면 약물을 줄이거나 끊는 경우도 있으므로, 고혈압이 있고 약물치료가 필요하면 두려워 말고 적극적으로 치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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