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오폭 1년, 버려진 상흔] 지붕처럼 무너진 일상…안전한 봄날 언제 오나
정문도 안 닫혀 장사 접어” 토로
政·軍 '노곡2리' 지원…3리 제외
행정구역상 결정…억울함 호소
불면증·공황·과민 반응 등 증상
'정신적 치료 지원' 사실상 중단
훈련 고지 無…굉음·진동 고통
노후 주택 많아 진단·보강 필요

포천 오폭 사고 1년. 폭발은 멈췄지만, 마을 주민들의 시간은 회복되지 못한 채 그날에 멈춰 있다. 트라우마는 방치됐고, 복구·보상은 지연됐다. '알 권리' 보장 없는 훈련 방식도 여전하다. 인천일보는 최초의 주민 심리 실태조사와 훈련장의 사전 고지 안전성 점검에 나섰다. 그리고 전문가·정치권 인터뷰를 통해 국가 책임의 빈틈을 들여다봤다.

"국민의 터전을 망쳐놓고, 정부와 군대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건지..."
지난달 26일, 노곡3리 주민 정영애(67)씨가 집 뒷마당 텃밭에서 부서진 지붕을 쳐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집은 천장이 살짝 주저앉아 있거나, 지붕이 파손되는 등 정상적인 구조로 보기 어려웠다. 군 측이 지붕에 덮었다는 비닐은 바람이 불자 요란하게 펄럭였고, 틈 사이로 찬 공기가 실내까지 스며들었다.
체감온도 영하 10도를 웃도는 2월 밤, 정씨가 냉기에 벌벌 떨며 지내야 했던 이유다.

그는 "난로를 켜고 이불을 여러 겹 덮어도 찬 바람을 막지 못하니까 추워서 버티기 힘들었다. 정문도 제대로 안 닫혀서 칼국수 장사는 아예 접었다"며 "이젠 정신치료 지원도 해주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벌써 1년이 전인 오폭 사고 당시를 또렷이 기억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옆 동네로 날아가더니, 이내 폭탄 터지는 굉음이 들렸다. 충격파로 집 전체가 흔들렸다. 그는 이후 한동안 병원을 오가며 정신적인 치료를 받았고, 군에 피해보상과 복구를 신청했다. 하지만 '노곡2리만 해당이 된다'는 통보가 돌아왔다.
앞서 정부와 군은 보상·복구 등 재난특별관리 범위를 폭탄이 떨어진 노곡2리로 설정했다. 노곡3리도 함께 검토됐다가 최종에서 빠졌다. 이에 주민들의 도움 요청은 마을 안에서 맴돌 뿐이다.
균열·파손·누수 등이 일어난 민백근(78)씨의 집은 불과 170여m의 영평천 지류를 경계만 넘으면 노곡2리다. 노곡2리 마을회관과도 직선거리 290여m다. 비슷한 입장인 최기순(95)씨의 경우, 집 대문으로 폭탄 파편이 날라오기까지 했다. 주민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행정구역 경계 하나로 지원 여부가 달라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노곡2리라고 상황이 크게 나아진 것도 아니다. 당일 노곡2리 삼거리로 이동하자, 파손된 민가와 잔해가 눈에 들어왔다. 한 갈색 벽돌 주택은 폐허가 됐다. 깨진 창문 틈 사이로 책장과 소파, 액자가 보였다. 한때 사람이 살던 공간이 인기척 하나 없다.
맞은편으로 200여m 떨어진 승진성당 역시 지붕과 외벽이 군데군데 파이고 철근이 드러나 있었다. 빛바랜 신문들은 문 앞에 어지럽게 흩어졌다.
"총소리, 포 소리 들으면서 자라서 익숙했는데 지금은 너무 불안해요."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주민 문미애(65)씨는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사고 당시 그는 집에서 TV를 보던 중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땅이 들렸다 내려앉는 충격을 느꼈다. 밖으로 뛰쳐나갔을 때는 집과 인근 가게 유리창이 산산이 깨져 있었고, 주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있었다.
문씨는 "그땐 숨이 안 쉬어질 정도였다. 요즘도 포 사격 소리나 총소리가 들리면 견디기 힘들다"며 "창문이 덜컹거리기만 해도 그날이 떠오른다"고 했다.
미세하게 손끝을 떨고 있던 그는 불안 증상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었다. 문씨처럼 마을에 불면증, 공황, 과민 반응 등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을 호소하는 주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지원은 사실상 모두 중단됐다.
노곡리는 승진 과학화 훈련장, 로드리게스 훈련장, 다락대 훈련장 등 여러 곳에서 총과 포를 쏘는 영향을 받고 있다. 더 문제는 사전에 사격 일정 등을 안내하는 시스템이 법적으로 정해져있지 않다. 주민들은 사고 이전에도, 이후에도 돌발스런 굉음과 진동을 감내하고 있다.

사고 지점에서 직선거리로 160여m 떨어진 2층 주택·가게 건물은 1층만 부서진 유리창 등이 수리됐다. 2층은 군이 모포로 간신히 가려준 상태다.
김진옥(79)씨의 집은 균열이 3cm에서 많게는 10cm까지 벌어져 안전이 우려됨에도, 보상 및 복구가 일부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고 이후 벽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날이 풀리면서 균열이 커지고 있다"며 "수리도 못 한 채 지내고 있는데, 날이 풀리면 더 갈라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시골인 노곡2리와 3리 모두 건축 연도가 수십년 지난 노후 주택이 많아 사고 뒤에도 손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증언이 빗발치는 중이다. 그러나 추가 정밀 진단이나 보강 계획 등이 마련되지 않아 주민들이 답답해하고 있다.
'상생은 외면하고 폭탄만 안기는 군'. 분노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세차게 흔들렸다. 오폭 사고로부터 사계절이 지난 지금도 노곡리 마을엔 봄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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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글=이광덕·김현우·박지혜·김혜진 기자
사진=김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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