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네 번 절하고, 580년 전 그 길 위에 나섭니다
[김슬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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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열린 요동 답사 고유제 기념 사진 (가운데 훈민정음 손바닥 책을 들고 있는 필자와 권오향씨) @유동걸 |
| ⓒ 유동걸 |
세종대왕 동상 앞, 아룀글을 올리다
이날 고유제는 세종훈민정음배움터 고은별 전문위원의 사회로 진행됐다. 나는 제주(祭主)로서 세종대왕 동상 앞에 맑은 물 한 잔을 올린 뒤, 참석자 일동과 함께 국궁사배를 올렸다. 비가 많이 내려 목례로 절을 대신했지만, 세종대왕은 흐뭇하게 바라보는 듯했다.
이어서 내가 직접 작성한 '세종대왕 어전에 올리는 요동 답사 아룀글'을 낭독했다. '아룀글'은 고유문(告由文)을 쉬운 우리말로 바꾼 이름이다.
"전하께옵서 세상의 소리를 살피시어 스물여덟 자를 지으신 것이 계해년이옵고, 해례를 갖추어 세상에 반포하신 것이 병인년이오니, 이제 그로부터 오백여든 해가 흘렀사옵니다."
나는 빗소리에 더욱 크게 우렁차게 낭독할 수밖에 없었다.
580년 만에 후손들 한자리에
이날 고유제에서 가장 뭉클했던 순간은 후손 대표들의 인사말이었다. 세종대왕의 후손인 이주화 선생(전주 이씨), 신숙주의 후손인 신경식 고령신씨연구소 소장(고령 신씨), 성삼문의 후손인 성병석 전 교장(창녕 성씨)이 차례로 나와 선조의 뜻을 기렸다. 손수산 후손이 손병삼 인쇄향 대표는 직접 참여는 못하고 후원금을 보내왔다.
580년 전 세종이 신숙주와 성삼문을 요동으로 보냈고, 그 역사의 현장을 확인하러 가는 자리에 세 분의 후손이 함께 서 있었다. 역사는 이렇게 사람을 통해 이어지는 것이구나, 새삼 느꼈다. 특히 이번 답사 여행을 함께 기획해 준 신경식 소장은 신숙주의 후손으로서, 580년 전 선조가 걸었던 길을 후대의 연구자가 다시 걷는 것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내빈들의 축사도 의미 깊었다. 최영길 한맥뿌리문화연구원 원장은 훈민정음 창제와 보급의 절차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정적으로 훈민정음 해례본(1446)이 나오게 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 최만리의 후손이다. 최원장은 후원금까지 내며 훈민정음 연구의 길을 축복하러 왔다. 이 또한 역사의 화해가 아닌가. 세종대왕국제상 제정 운동을 펼치고 있는 임정기 씨의 축사도 이어졌다.
국어교사를 대표해서 현직 국어교사인 유동걸씨도 현장 기록을 내내 남기며 축복해 주었다. 유엔피스코 허준혁 사무총장은 눈 수술 직후임에도 나와서 평화운동가답게 한글평화의 여정을 축복했다. 김용관 세종대왕 사가독서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신숙주, 성삼문이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법해 주지 스님)에서 사가독서했던 역사를 기리며 축하했다. 때마침 세종대왕 취재를 나왔던 'Korea News Productions'의 프랭크 스미스 특파원이 취재를 해주었다.
창제와 반포 사이, 그 결정적 고리를 찾아서
고유제를 마친 뒤, 권오향 박사(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겸임교수)가 답사 추진 경과와 일정을 보고했다. 오는 4일부터 7일까지 3박 4일, 중국 선양(瀋陽)과 요양(遼陽) 일대를 답사한다.
왜 요양인가. 1445년 정월 초이레, 세종은 신숙주와 성삼문, 손수산을 요동으로 보냈다. "요동에 가서 운서를 물으라." 훈민정음 28자를 만든 것이 1443년, 해례본을 갖추어 반포한 것이 1446년. 그 사이 1445년에 세종이 내린 결단이었다.
훈민정음 창제의 첫째 목적은 우리 토박이말을 적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종의 뜻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중국 황제들이 천 년 넘게 풀지 못한 한자음의 정밀 표기를, 스물여덟 자의 소리글자로 해결하려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당대 최고의 음운학자 황찬을 만나야 했고, 신숙주와 성삼문은 혹한의 겨울길을 걸어 요양에 이르러 황찬의 거처를 열세 번이나 찾아갔다. 그 성과가 해례본의 살과 뼈가 되었다.
이번 답사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황찬이 머물렀던 요양 노성(老城)의 공간적 실체. 둘째, 신숙주 일행이 묵었을 요동관에서 황찬의 거처까지 '열세 번 왕래'의 거리와 동선. 셋째, 현지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사료의 흔적이다.
이번 답사에는 중국 음운 전문가 권오향 박사와 중국인 해례본 연구자이자 동시통역사인 장리메이(张丽梅) 선생이 함께한다. 580년 전 신숙주 곁에 성삼문과 손수산이 있었듯이, 내 곁에 뜻을 같이하는 동행이 있다.
현재 중국에 있지만 현지에서 합류할 장리메이 선생이 함께하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580년 전에는 우리가 중국 학자를 찾아가 배움을 청했다. 이제는 중국인 제자와 나란히 역사의 현장을 함께 걷는다. 학문의 길이 비로소 쌍방향으로 열린 것이다.
2026년, 겹겹이 쌓인 뜻깊은 해
2026년은 한글 역사에서 여러 겹의 의미가 포개지는 해이다. 훈민정음 반포 580돌, 한글날 제정 100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창립 70돌, 주시경 선생 탄신 150돌, 박두성 선생의 훈맹정음 100돌. 나는 이 모든 뜻을 아우르는 '한글580100'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번 요동 답사는 그 첫 번째 대외 행보다.
고유제를 마치고 다시 한번 국궁사배를 올린 뒤, 참석자들과 함께 음복을 나누고 묵념했다.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은 여전히 말없이 앉아 계셨지만, 580년 전 "요동에 가서 운서를 물으라" 하셨던 그 음성이 귓전에 울리는 듯했다.
4일, 나는 선양행 비행기에 오른다. 신숙주와 성삼문과 손수산이 혹한의 겨울길을 걸어갔던 그 요양의 거리를, 이제 내가 밟는다. 글자 하나하나에 깃든 세종의 뜻과, 요양의 겨울밤 황찬 앞에서 고개 숙여 물었을 세 사람의 간절함을 가슴에 품고 떠난다.
581년 전의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오겠다. 응원하고 후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번 답사는 필자가 원장으로 있는 세종국어문화원이 주최하고 고령신씨연구소와 인쇄향, 한맥뿌리문화연구원, '흥해라 나랏말쌈' 2025년 한글날 기념 특집을 만든 이광록 피디, 이주화 세종대왕 후손 등이 후원에 참여했다.
<고유제 축문(告由祭 祝文) 전문>
- 세종대왕 어전에 올리는 요동 답사 아룀글
바야흐로 때는(유세차) 병오년 2026년 3월 2일
훈민정음 해례본학 박사 김슬옹은 삼가 세종대왕 전하의 성상 앞에 엎드려 아뢰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옵서 세상의 소리를 살피시어
스물여덟 자를 지으신 것이 계해년(1443)이옵고
해례를 갖추어 세상에 반포하신 것이 병인년(1446)이오니
이제 그로부터 오백여든 해가 흘렀사옵니다.
돌이켜 아뢰옵건대
을축년(1445) 정월 초이레
전하께옵서 신숙주 공과 성삼문 공과 손수산 공을 불러
요동으로 보내시어 운서를 묻게 하시니
이는 창제와 반포 사이
해례본 완성의 결정적 고리이옵고
중국 황제들께옵서 한자음 적기 천년의 난제를 풀고자 하신
전하의 원대하신 뜻이었사옵니다.
신숙주 일행이 혹한을 무릅쓰고
한양에서 의주를 지나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요양에 이르러 황찬의 문을 열세 번이나 두드리니
그 간절한 물음 끝에 얻은 바가
해례본의 살과 뼈가 되었사옵니다.
소신은 기사년(1977)으로부터 마흔아홉 해를 한글의 길에 바쳐
세 개의 박사학위를 받고 백스물여섯 권의 책을 펴내었으며
갑오년(2014)에는 해례본 원본을 두 손에 받들어
실견하는 떨림을 얻었사옵니다.
그러하오나
신숙주와 성삼문과 손수산이 걸었던 그 땅을
아직 두 발로 밟아 보지 못하였사옵기에
이제 오백여든 해 만에 그 길 위에 서고자 하옵니다.
중국 음운 전문가 권오향 박사와
중국인 해례본 연구자 장리메이 선생이 함께하오니
오백여든 해 전의 국제 토론의 그 현장에
이제 그 뜻을 잇는 학인들이 그 길을 이어가고자 하나이다.
삼가 아뢰옵건대
소신이 이번 답사에서
황찬이 머물렀던 요양 노성의 공간적 실체를 살피고
열세 번 왕래의 거리와 동선을 몸으로 가늠하며
현지에 남은 사료의 흔적을 찾아
해례본 연구의 새 실마리를 얻고자 하옵니다.
병오년(2026)은
훈민정음 반포 오백여든 돌이요
한글날 제정 백 돌이요
주시경 선생 탄신 백쉰 돌이요
박두성 선생의 훈맹정음 백 돌이요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창립 칠십 돌이니
실로 뜻깊은 해이옵니다.
엎드려 비옵나니
전하의 크신 뜻이 소신의 발걸음을 이끄시어
오백여든 해 전의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올 수 있도록 굽어살피소서.
전하의 거룩하신 뜻 앞에
삼가 맑은 물 한 잔을 올리고
네 번 절하며 아뢰옵니다.
상향
병오년(丙午年) 삼월(三月) 초이틀
훈민정음 해례본학 박사 김슬옹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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