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좀 다르다... 지적이고 철학적인 좀비 영화
[김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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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년 후: 뼈의 사원> 스틸 |
| ⓒ 소니픽처스 |
감염자를 피하는 방편으로 합류한 집단에 오히려 더 큰 공포를 느낀 스파이크는 어떻게든 이들에게서 벗어나려 한다. 한편, 전작에서 소년이 만났던 의사 '켈슨'은 그가 건설한 뼈의 사원 인근 감염자 무리 '알파(리더)'에게 특이점을 발견한다. 해당 개체에 '삼손'이란 이름을 붙이고 관찰하던 의사는 어쩌면 세상을 바꿀 변화의 가능성을 포착한다.
장르 문법 답습 대신 선택한 청소년 성장기
<28년 후>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 전작으로부터 1년 만에 돌아왔다. 20세기 좀비 장르의 상징과 같은 조지 로메로 스타일의 느릿느릿 걷는 되살아난 시체가 아니라 생존자를 쫓아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21세기 '육상선수' 좀비의 전형을 확립한 대니 보일 감독 & 알렉스 가랜드 각본가 콤비가 야심 가득 부활시킨 리부트 중간 허리를 담당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1편과 3편은 직접 연출을 맡은 대니 보일이 감독을 맡지 않은 3부작 중 유일한 작업이기도 하다.
전작 <28년 후>는 21세기 좀비 영화의 전형을 확립한 <28일 후>의 본격 계승을 기대한 장르 관객에겐 당혹감을 던진 작품이다. '뛰는 좀비'가 선사하는 압도적 공포와 짜릿한 쾌감은 '알파'라 불리는 근육질 감염자가 완벽히 구현했지만, 영화 대부분은 감염자와 펼치는 활극이라기보단 멸망 이후 세상에서 태어난 소년이 생존에 급급한 폐쇄된 공동체를 벗어나 위험한 바깥 본토에서 자립해가는 '성장물'에 할애되었기 때문이다. 부모세대가 기대하는 모범적 계승이 아닌,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주적 영웅 서사의 출발점으로 3부작은 시작된다.
<28년 후: 뼈의 사원>은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 소년에게 응당 닥치게 마련인 시련과 유혹, 상실과 성장의 서사를 펼친다. 그의 곁에는 달콤한 파괴와 쾌락의 화신 & 엄격한 세상 이치와 함께 연민을 전하는 스승이 거세게 충돌한다. 주인공이 어디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3부작의 향방과 소년의 운명이 (자주적으로) 결정될 테다. 인간이 사라져 텅 빈 야생지대에서 펼쳐지는 소규모 집단 내부의 이야기지만, 스파이크에겐 세계가 달린 문제다.
<28년 후> 3부작은 흔히 '뛰는 좀비' 장르의 왕도로 통하는 <28일 후> 직계 후예이지만, 실상 고전적인 좀비를 감염자란 유사 존재로 대체한 하위 장르를 지향하는 시리즈다. 신약 개발 도중 탄생한 '분노 바이러스'에 의한 돌연변이 감염 확산으로 벌어진 재앙으로 사회가 붕괴된 영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바깥세상은 기존 국가와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한국영화 <반도> 등이 이를 벤치마킹한 셈이다. 하지만 영국 본토는 중세 시대로 퇴행한 상태다. 모든 게 '초기화'된 세계인 것.
본토 대부분은 28년 동안 감염자가 장악한 상태다. 통상적인 좀비와 달리 이들은 엄연히 '살아있는' 존재다. 시체가 부활한 게 아닌,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이기에 추위나 배고픔을 당연히 느낀다. 게다가 지성이 사라진 까닭에 식량을 비축하거나 재해를 대비할 줄 모른다. 그래서 파괴적 효과를 일으켜도 시간이 지나면 사태가 진정될 줄 알았다. 그러나 모든 생명은 생존을 위해 진화를 모색하듯, 이 변이된 인간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이런 변화는 전작에서 상세히 해설된 바 있다.
후속작에선 뼈의 사원을 무대로 켈슨 박사와 삼손의 일화가 스파이크의 여정과 병렬로 펼쳐지다 합류한다. 성공적인 '트릴로지(3부작)' 영화 구성에서 대개 2부에 속한 작품이 복수의 이야기 축을 형성하는 셈.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에서 프로도와 샘 & 아라고른, 레골라스, 김리 & 메리와 피핀 일행으로 원정대가 동시에 다른 여행을 치르는 것에 비하면 간략해도 연출 측면에서 집중력이 분산되기 딱 좋은 형식이다. 대니 보일 대신에 연출을 맡은 니아 다코스타 감독에겐 일종의 시험무대인데, 굵직하게 별개로 진행되는 에피소드가 처음엔 동떨어진 이야기로 비치지만, 막판엔 '빅 픽처'로 구현되는 솜씨가 유려하다.
스파이크는 홀로서기에 나섰지만, 12살 소년이 살아남기엔 감염자가 득실대는 본토는 하루 생존도 쉽지 않은 '디스토피아'다. 감염자 무리를 웃어대며 처치하는 '지미스' 무리는 일견 든든한 보호막일 수밖에 없다. 애초 막다른 길에서 포위된 소년에게 그들이 내민 손 외에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그러나 곧 이 집단이 감염자보다 더 위험함이 드러난다.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지미 크리스탈 경'은 추종자를 '손가락(들)'이라 부르며 기괴한 사교 집단을 이끈다. 그들은 감염자뿐 아니라 간신히 살아남은 인간 생존자를 '자비'란 명목으로 고문하며 학살한다.
그저 생존 편의를 위해 가담한 것뿐인데 실은 미치광이 살인마 무리에 합류한 소년은 공포에 몸을 떨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탈자로 의심을 당하면 언제 끔찍하게 죽임당할지 모른다. 공포와 세뇌를 통해 이 집단은 타인을 착취하며 구세계의 잔재는 물론 새로운 사회 형성의 씨앗마저 파괴한다. 세기말 종말론 집단의 극단적 형태라는 점에서 무차별 살상만 없을 뿐, 현실에서 우리가 접하는 배타적 사이비 종교집단과 다를 게 없다. 사회 질서와 공권력이 무너진 국가의 붕괴나 내전 상황이 압축된 형상으로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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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년 후: 뼈의 사원> 스틸 |
| ⓒ 소니픽처스 |
스파이크는 폐쇄된 공동체에서 영웅적 일원으로 대우받지만, 온전히 아들이 존경하기엔 한계를 지닌 아버지 그늘을 벗어났다. 그러나 소년이 당장 목숨 부지도 힘겨운 외부 세상에서 버티려면 간섭은 하지 않되 도움은 제공하는 '어른'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폭군 '지미 크리스탈 경' vs. 정신적인 (두 번째) 아버지 '켈슨 박사'의 가치관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소년은 선택에 따라 지미의 충복이 되거나, 켈슨의 이상론으로 비칠 수 있으나 세상을 재건하기 위해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이어받을 수 있다.
전직 NHS(영국 국민 보건 서비스) 의사인 켈슨 박사는 멸망 후에도 변함없이 자신의 소임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산 자건, 죽은 자건, 심지어 감염자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편견 없는 태도와 관찰 덕분에 그는 여태껏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무엇인가를 찾아낸다. 그러나 이는 흔한 SF 영화 속 과학자의 천재성이 아닌, 어떻게 보면 종교인의 박애와 흡사한 접근법 덕분이다. 게임 설정 등속 '클리셰'만 남긴 채 한때 엄연한 인간이던 존재를 무차별 폭력이 정당화되는 대상으로 전락한 좀비에게 장르의 창시자 조지 로메로가 설파했던 철학적 개성을 다시 부여하려는 야심이 전면화하는 대목이다.
<뼈의 사원>은 천사와 악마가 좌우에서 설득과 유혹을 날리듯 스파이크 앞에 놓인 시험대다. 나치 수용소 간수, 아프리카 내전 소년병이 그랬듯 폭력과 살인에 무덤덤한 중독 상태로 전락할 것인지, 타인을 돕고 약자를 동정하며 세계를 재건할 것인지 여부가 본인은 물론 세계의 향배와 연결된다. 감염자건 생존자건 자신과 무리의 생존에만 치중한 '닫힌 세계'를 극복하고 미약한 희망이라도 공존의 미래를 꿈꾸길 두려움과 더불어 개척하는 여정은 희생과 결단이 필수다.
좀비 장르는 대중화하면서 본래 출발과 동떨어져 버렸다. 강제로 고향에서 납치된 아프리카 흑인들의 원념이 깃든 주술적 요소, 노예나 노동자로 차별당하는 하층민의 집단적 형상화 같은 사회적 함의는 실종된 채 오로지 게임 속 인명 살상에 도덕적 가책을 제거한 스트레스 해소 대상으로 전락한 일상이다. 대니 보일 감독은 본인의 혁신적 시도마저 '소비'되는 시대에 결자해지 심경으로 자신만의 독창적 세계관을 구축하는 작업에 정진하는 중이다.
<28년 후: 뼈의 사원>은 전형적 좀비 액션물을 기대하는 관객 기대치와 별개로 훌륭한 중간 계투다. 오히려 청소년용 성장 소설 정석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모범적인 아버지이자 후속 세대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진짜 어른과, 달콤한 유혹과 쾌락 중독으로 꾀는 기생 세력이 경합하고, 인류의 원초적 역사처럼 생존을 위해 사생결단 혹은 공존해야 하는 적대적 세력이 대립한다. 가운데에서 소년은 목숨 건 결단에 직면한다.
광활한 영국 북부 야생지대는 생존 장르의 이상적 배경인 동시에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든다. 여기에 영국 대중음악의 풍성한 유산이 귓가에 꽂히면 오랜 여운을 남길 테다. 적대하는 두 집단 간의 소통 가능성, 공포와 거부감을 극복하고 다가서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함의를 깨알처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여기에 모든 시리즈의 근본이라 할 '최초의 존재'와 통하는 짜릿한 순간이 문득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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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년 후: 뼈의 사원> 포스터 |
| ⓒ 소니픽처스 |
28년 후: 뼈의 사원
28 Years Later: The Bone Temple
2026 영국, 미국 좀비 아포칼립스
2026.02.27. 개봉 109분 청소년 관람불가
감독 니아 다코스타
출연 알피 윌리엄스, 랄프 파인즈, 잭 오코넬, 에린 켈리먼, 치 루이스페리 외
수입/배급 소니 픽처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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