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윤어게인' 집회 참가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
[안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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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문화회관에서 바라본 집회 |
| ⓒ 안지훈 |
광화문 광장이 시민의 자발적 결사가 이뤄지는 집회 공간으로 기능한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 민주적 질서 회복, 국가 기능 재건 등을 외치며 그 방법으로 제도의 정비나 정권의 전향적 태도 등을 주문하는 집회가 광화문을 채웠습니다.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냄과 동시에 국제 사회가 주목한 촛불 집회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런데 최근, 반민주적 내란을 옹호하거나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는 집회가 광화문 일대를 물들이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의혹 제기가 빗발치고 대안은 '윤 어게인'으로 수렴되는 듯합니다. 2월 28일, 공연을 보기 위해 찾은 세종문화회관에서 바라본 보수 진영의 집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이들은 점심부터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집회를 벌였습니다. 해당 단체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의장으로 있는 단체로, 최근 '서부지법 폭동'을 교사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 목사가 옥중서신을 보내오면서 이 단체의 집회에 불씨를 지폈습니다. 공연을 보기 전 광장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은 필자에게 스피커를 타고 전해지는 이들의 주장은 역시 윤석열씨와 전 목사의 석방이었습니다.
신자유연대와 자유대학도 각각 시간대를 달리해서 자신들의 집회를 벌였습니다. 주요 화두는 역시 '윤 어게인'으로 동일했습니다. 물론 신자유연대는 "차이나 아웃" 등의 혐오 구호를 앞세워 반중 정서를 자극하며 부정선거와 연결지었고, 자유대학의 집회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큰 태극기를 휘두르는 청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필자가 주변을 지나자 태극기를 흔들던 마스크 청년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여 '청년이 깨어나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필자인 청년을 겨냥한 것 같았습니다. 전날 저녁부터 이날 새벽까지 진행된 전한길씨를 비롯한 '부정선거론자'들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토론도 언급됐습니다. '증거가 차고 넘친다', '거대한 카르텔이 있다', '실체를 밝히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점검해야 한다' 등 전한길씨의 전날 발언을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씁쓸한 헛웃음을 지으며 극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외국인 관광객과 집회 참가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중국 개입이나 거대 카르텔 같은, 외국인이 듣기에도 헛웃음이 날 법한 말을 전하지 않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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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보빌딩에 걸린 광화문글판 |
| ⓒ 안지훈 |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전한길씨와 이준석 대표의 토론을 보고 필자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다시 책장에서 꺼냈습니다.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 등으로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책으로, 20세기 어두운 파시즘 속 개인의 심리를 조명한 저작입니다. 내란 이후 극우 파시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제기됐고, 무엇보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이와 궤적을 같이 하므로 지금 다시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날 오전에 읽은 책의 내용과 광화문 글판의 글귀 사이에 나름대로의 연결고리를 발견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책의 초장에서 고독과 정신적 고립감이 어떻게 파시즘적인 태도를 낳는지 분석합니다. 고립된 사람들이 관계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소속감을 줄 수 있는 사회 활동에 관여하려 하고, 파시즘이나 오늘날 극우주의가 내세우는 문구들이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설명입니다.
아무리 천박한 행동 양식과 관계를 맺더라도 혼자인 것보다는 훨씬 낫다. 종교와 민족주의는 어떤 관습이나 믿음 못지않게 터무니없고 수치스럽지만, 개인을 타인과 연결해주기만 한다면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가 될 수 있다.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36쪽.
에리히 프롬이 예시로 든 종교와 민족주의는 이날 필자가 보수 진영의 집회에서 보고 들은 주요 메시지였습니다. 프롬의 설명은 이제 익숙합니다. 극우의 부상이 전 세계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사회자본의 부족으로 인한 고립, 상대적 박탈감, 과거에 대한 그릇된 환상 등이 극우의 추동력으로 지적되곤 합니다. 이날 프롬의 책을 읽고, 광화문 글판의 문구를 보며 대낮의 집회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광화문 글판의 문구를 한 번씩 쳐다봤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라는 문구에서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고, 이렇게 물어주는 사람을 주변에 두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음모론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의 말이 그분들의 귓가에 맴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사회와 조금이라도 건전하게 연결된다면 음모론 또는 극우 권위주의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을 품어보기도 합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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