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들러보세요, 한국을 사랑한 외국 기자가 남긴 '궁전'
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서울 창의문 고개에서 보이는 서촌이 차분하다. 분수령인 자하문 너머 종로구 부암동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경복궁과 청와대를 비롯한 오랜 통치 공간이어선가. 자연스러운 차분함보다는 오랜 위력에 눌린 절제에 가까워 보인다. 어느 통치자가 이 공간의 건축 높이를 극도로 제한해 놓았다. 그 영향일까? 소리 높여 외치기보다 침묵하기로 다짐한 공간처럼 보인다.
일제강점기 서촌에는 나라를 팔고 민족을 배반하며 호가호위를 누린 자들이 있었다. 윤덕영과 이완용의 아방궁은 사라졌어도, 그 땅에 쌓인 분노까지 씻겨나갔을까. 아방궁이 남겼다는 작은 돌덩이만으로도, 하늘을 찌르는 분노를 능히 증명할 수 있겠다.
그 집들이 어떤 얼굴이었는지, 얼마나 호화로웠는지는 기록에서만 엿볼 수 있다. 나이 든 서촌 골목은, 그런 사실을 애써 상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골목을 지날 때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침묵을 느낄 뿐이다. 말하지 않아도 끝내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자리를 차지한 동네, 그것이 오래된 서촌의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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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동주 문학관 창의문에서 길 건너 인왕산 오르는 초입에 '윤동주 문학관'이 서 있다. 옛 수도시설을 고쳐 문학관으로 활용 중이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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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안연우_겸재 정선 겸재 정선이, 인왕산 초입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보고 그렸다는 그림. 현장에서 대비해 보면 실경 산수화의 진수를 누릴 수 있다. |
| ⓒ 이영천(공원 전시물 촬영) |
무상한 사랑과 권력
공원을 지나 능선에 오르다 보면, 도시 표정이 빠르게 유순해진다. 소음과 건물, 단조로운 콘크리트가 작아지고 흙과 돌, 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높이를 다투는 건물들이 얌전해 보이고, 곁의 백악과 멀리 남산까지 순응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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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부 소나무 인왕산 오르는 중턱, 뿌리가 이어진 소나무 두 그루가 계단 옆에 서 있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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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차바위 인왕산 한양도성에서 가지를 쳐 기차바위, 홍지문, 구기동을 지나 멀리 보이는 북한산 향로봉으로 이어진 '탕춘대성'의 능선이다. |
| ⓒ 이영천 |
풍경이 아닌 기운을 붙잡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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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양도성 인왕산 정상에서 바라 본 한양도성. 좌측이 백악, 우측이 남산이다. 멀리 낙산 자락이 희미하게 보인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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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왕제색도_겸재 정선 비 개인 후의 인왕산 모습을 그린 그림. 병환 중인 친구 이병연의 쾌유를 빌면서 그렸다. |
| ⓒ 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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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왕산 남측 가까이 우측 중간에 보이는 곳이 범바위와 군부대. 좌측 중간은 사직공원을 지나 경희궁과 기상청이 있는 숲이다. 그 앞에 남산이 보이고, 멀리 오른쪽으로 관악산이 아련하다. |
| ⓒ 이영천 |
도성은 오히려 이런 방식으로 시간을 쌓는 데 익숙해져 있다. 지우지 않고, 앞세우지도 않은 채, 그냥 함께 품었다. 겸재의 그림이 풍경을 넘어 기운을 붙잡았듯, 사직공원 역시 시간의 깊이를 그대로 안고 있다.
문은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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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회영 기념관 귀족의 참다운 사회적, 국가적 역할을 보여준, 이회영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찾았던 날, 휴관이어서 문이 닫혀 있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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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딜쿠샤 AP통신사의 '앨버트 테일러'가 그의 아내에게 지어 준 집. 딜쿠샤는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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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난파 생가 뛰어난 예술가로, 질곡의 친일파로 한 생을 살다간 음악가 홍난파의 생가. 집 뒤로 인왕산 범바위가 보인다. |
| ⓒ 이영천 |
성곽은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고, 흔적을 더듬으며 돈의문 터에 이른다. 문은 없다. 다만 번잡한 길만 남았다. 문이 사라진 자리는 언제나 혼란스럽다. 무엇을 막았고, 무엇을 내보냈는지 기억에만 남아 있다.
왕조 개창 초기, 여러 번 문을 짓다 보니 '새 문'이 되었다. 사람들은 새 문이 있던 자리를 아무렇지 않게 지났다. 문이 요구한 건 찰나이지 영속이 아니다. 속도를 늦추는 일, 뭐든 서둘러 지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미음 완보로 걷다 보면, 이 도시는 설명보다 훨씬 많은 걸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시나브로 느끼게 된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너무 빨리 지나쳐 왔을 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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