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서는 할매지만, 바다에 나가면 스무 살이라우"
[진재중 기자]
새벽빛이 바다 위에 얇게 퍼진다. 밤과 아침의 경계에서 파도는 낮게 숨을 고르고 찬 기운은 살을 에듯 스민다. 검은 물결 앞에 선 여든 줄의 해녀는 말없이 물안경을 고쳐 쓴다. 주름 깊은 얼굴 위로 스치는 바닷바람, 그러나 표정에는 두려움 대신 오래된 익숙함이 배어 있다.
수십 년간 이어온 물질과 숨비소리 속에서 바다는 더 이상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곧 삶의 방식이자 자존심이 되었다. 거센 물살과 마주하는 순간, 나이는 의미를 잃는다. 바다는 일터이면서도 쉼터이고, 평생을 품어온 삶의 자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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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 바다로 향하는 오용분 해녀의 잠수복 차림, 마치 출동을 앞둔 특수부대원처럼 결연함이 느껴진다. |
| ⓒ 진재중 |
충청북도에서 태어났지만 사람들은 그를 "이북 사람"이라 부른다. 북녘과 가장 가까운 항구, 강원 고성의 대진항에서 평생을 살다 보니 말투도, 삶의 결도 이곳 사람을 닮았기 때문이다. 바다가 없는 내륙의 땅에서 자랐지만 그의 인생은 결국 바다로 흘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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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을 깨우는동해안 최북단 저도어장 |
| ⓒ 진재중 |
처음 바다에 나섰을 때 그는 수영조차 할 줄 몰랐고 물질을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다. 가시처럼 돋아난 성게에 찔릴까 두려워했고 눈앞의 문어조차 쉽게 잡지 못했다. 평상복에 운동화를 신은 채 바닷가에 엎드려 물속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방법을 익혀야 했다. 제주에서 온 해녀들이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능숙하게 전복을 따는 모습을 지켜보며 동작 하나하나를 따라 하며 그렇게 몇 년간 기술을 몸에 익혔다.
납으로 무게를 맞추는 법, 물에 들어갈 때 몸을 곧게 세워 잠수하는 요령, 떠오를 때의 자세와 안전 수칙까지 모두 바다에서 직접 배웠다. 스스로 익힌 잠수 실력으로 그는 저도어장과 북방한계선 인근까지 오가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숙련된 해녀가 되었다. 잠수복과 오리발만으로 15m 깊이까지 들어가 해삼이며 성게, 문어를 잡아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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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m 깊이의 바닷속에서 문어를 낚아채는 오용분 해녀 |
| ⓒ 진재중 |
고성 대진의 해녀들은 제주도 해녀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바다를 마주한다. 제주 해녀들이 비교적 얕은 연안에서 물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 대진 해녀들은 어선을 타고 먼바다까지 나가야 한다.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거친 파도를 넘어야 하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배가 닿는 곳은 물살이 세고 파도가 높은 바다 한가운데다. 이들은 깊은 물속으로 몸을 던져 해삼과 해산물을 채취한다. 수심이 깊을수록 물의 압력은 강해지고 한 번의 호흡에 의지한 채 버텨야 하는 시간도 길어진다. 시야는 흐리고 조류는 몸을 밀어내며 바닷속은 늘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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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진해녀들은 어선을 타고 먼바다로 이동한다 |
| ⓒ 진재중 |
오용분 해녀는 잠수 기술이 날로 향상되면서 형편이 크게 나아져 자녀들을 대학까지 보냈다. 한때는 하루 200만 원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1970년대는 바다 환경이 좋아 해녀들이 물질을 하면 미역·다시마·전복 등 해산물을 풍성하게 채취할 수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판로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힘들게 잡아 올린 해산물을 제값에 팔지 못하고 버려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오용분 해녀는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해산물 값을 정당하게 받기 위해 어촌계에 입찰·경매 제도 도입을 건의했고,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해산물 거래 방식이 점차 체계화되었고 해녀들은 안정적인 가격에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오용분 해녀는 단순히 물질에 그치지 않고, 해녀들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 유통 구조 개선에 앞장선 것이다. 이는 해녀들의 수입 안정에 크게 기여한 중요한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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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진항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최북단에 자리한 항구. |
| ⓒ 진재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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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녀가 물질한 성게 |
| ⓒ 진재중 |
동해안 최북단 항구 어판장에서 갓 잡은 성게를 손질하던 오용분 해녀의 얼굴에는 깊은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그에게 물속은 두려움의 공간이 아니라 가장 편안한 삶의 터전이었다. 바다는 생계를 책임져 주었고 수많은 인연과 삶의 의미를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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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가운 바다에 들어가기 전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피워 물을 데우는 해녀들의 준비 모습 |
| ⓒ 진재중 |
50년 넘게 물질을 해온 해녀의 절반 가량이 잠수병 등 직업병에 시달릴 만큼 해녀의 삶은 여전히 위태롭다. 장시간 잠수로 치아 손상과 저혈압 등 건강 문제를 겪고,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면 위험 신호조차 느끼지 못한 채 바다를 헤매는 상황도 생긴다. 일부 자치단체들이 잠수병 치료를 지원하고 나서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이용은 쉽지 않다.
오랜 세월 깊은 바다에서의 노동은 그의 몸에 큰 상처와 만성 통증을 남겼고, 병상에 머무는 시간은 하루도 바다를 떠난 적 없던 그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한때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에 빠지기도 했지만 곁을 지킨 남편의 헌신적인 보살핌과 끊임없는 격려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는 남편이 있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며 깊은 고마움과 행복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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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에서 건져올린 해산물을 배에 싣기위해 이동하고 있는 해녀 |
| ⓒ 진재중 |
물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오용분 해녀에게도 고민은 있다. 고성군 나잠어업인이 고령화와 후계자 부재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현실에 걱정이 크다. 강원 해녀가 마지막 세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제주해녀들처럼 고성 해녀들도 직업 여성으로서 정당한 인정과 대우를 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가 평생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은 해산물만이 아니었다. 가난을 이겨낸 자존심과 사라져가는 공동체를 지키려는 책임감이었다. 동해의 거센 물살 속에서 오용분 해녀는 오늘도 바다를 삶의 자리로 증명하고 있다. 그에게 바다는 일터이자 쉼터다. 곧 인생 그 자체다. 오용분 해녀는 "육지에서는 늙은 할머니라도, 물속에 들어가면 20대 젊은 여성 못지않은 생기를 되찾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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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온 삶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오용분 해녀 |
| ⓒ 진재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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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어장 위에 떠 있는 해녀들을 실은 어선, 그들에게는 안식처이자 삶의 터전인 바다다 |
| ⓒ 진재중 |
○ 편집ㅣ최유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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