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마지막 날, 희소질환 아이 엄마는 가슴이 답답합니다
[서이슬 기자]
2월 마지막 날은 세계적으로 Rare Disease Day, 한국에서는 '희귀질환 극복의 날'로 불린다. 내 아이가 갖고 태어난, 질병분류기호 Q87.2. 10만명 중 한 명 꼴로 진단되는 선천성 복합혈관질환인 KT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도 물론 이날이 호명하는 '희귀질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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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희소질환의날 로고 |
| ⓒ raredisease.org |
먼저, '희귀질환'이라는 단어는 기만적이다. '희귀'하다는 건 흔치 않아서 그만큼 '귀하다'는 뜻인데, 실제로 희소질환자(*공식적인 표현으로는 '희귀질환'이 사용되나, 아래부터는 필자의 문제의식에 따라 '희소질환'으로 표기한다)들은 전혀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숫자가 적어 홀대 당한다. 어떤 질환은 약이 있어도 너무 비싸서 약을 쓸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어떤 질환은 그런 약을 건강보험 급여화 해 달라고 몇 년씩 매달려야 하고, 또 어떤 질환은 아예 약이 없다.
그 세 가지 경우 모두, 원인은 환자 수가 적어서다. 환자 수가 적어서 약값이 비싸고, 환자 수가 적어서 건강보험 급여화 요구에 힘이 실리지 못하며, 환자 수가 적어서 약물 개발 자체가 안 되거나 속도가 늦다. 모든 것이 경제성으로 평가되는 시대에, 희소질환 약제는 경제성이 없기 때문에 아예 외면받거나 초고가 약제가 된다. 이런 상황이니 단어 하나에도 고까운 마음이 든다.
극복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의무
둘째로, 힘들고 어려운 것을 이겨낸다는 뜻을 가진 '극복'이라는 단어 역시 문제다. 질병과 관련하여 '극복'이라는 단어의 함의가 '병의 정복' '완치'에 있다면, 희소질환은 대개 극복이 불가능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내 아이가 가지고 있는 질환은 배아기에 생긴 체세포 돌연변이가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래서 이 돌연변이를 없앨 방법이 있지 않는 한, 이 질환을 '극복'할 방법은 없다. 우리 외에도 수많은 희소질환이 그런 상황에 있다.
의학적으로는 당연하고, 심리적, 정신적으로도 희소질환으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기란 어렵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극복'이 아니라, 현대 의학으로 이겨낼 수 없는 질환을 가지고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이다. 세계 희소질환의 날 웹사이트(https://www.rarediseaseday.org/what-is-rare-disease-day/)가 밝히고 있듯, 희소질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기회, 의료 서비스, 진단과 치료 접근성의 형평성"이다. 다시 말하면, 희소질환을 갖고 있다고 해서 사회적 기회가,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불평등하게 주어지거나 박탈되어서는 안 되는데 실제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사회적 기회: 취업과 이동권
먼저, 사회적 기회를 생각해보자. 내 아이가 갖고 있는 KT 증후군은 다행스럽게도 밤낮으로 '투병'을 해야 하는 질환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질환으로 인해 신체 변형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학창시절에는 물론이고, 생계를 꾸려야 하는 성인기에 들어서면 더욱 그렇다. 암 경험자들의 (재)취업이 어려운 것처럼, 완치법이 없어 평생 질환을 안고 살아야 하는, 몸의 생김과 조건이 다른 희소질환자 역시 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어렵사리 취업을 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KT 증후군 환자들 중에는 이유 없는 급성 감염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경우 염증이 순식간에 번져 발과 다리에 고열이 오르고 심한 통증이 오기 때문에 빠르게 항생제 처방을 받고 며칠 쉬어주어야 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조금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병가 내는 직원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여전하고, 아픈 사람이 충분히 쉬기에는 아직 상병수당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충분치 않다.
그리고, 지난번 글에서 밝힌 것처럼(관련 기사 : 반년마다 아이 신발 사려고 50만 원을 씁니다, 왜냐면요 https://omn.kr/2gvo6), 발에 맞는 신발을 구할 수 없어 아예 집 밖을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고, 이동 약자 편의시설이 충분치 않은 물리적 환경 탓에 여러 차원의 이동권에 제약을 받기도 쉽다. 이처럼, 질환은 개인의 몸에 있지만, 일상의 제약은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다. 취업 기회, 병가 제도, 이동권 보장은 복지와 노동환경, 생활환경의 문제이며, 이것은 공공정책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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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에서는 희소질환을 진단받기 힘들다. 환자가 스스로 정보를 찾아 서울로 이동해야 하는 구조다. AI생성 이미지 |
| ⓒ 오마이뉴스 |
물론 희소질환도 종류가 많고 다양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희귀질환 헬프라인'이라는 이름의 번듯한 포털 사이트도 구축되어 있는 마당에 왜 환자·가족들이 스스로 모든 것을 찾아 헤매다 결국 서울로, 서울로 와야만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각 지역 1, 2차 의료기관에서 선천성 희소질환이 의심되는 이들이 발견되면 지역마다 있는 국립대병원으로 보내주고, 지역 국립대병원에서 이들 질환에 대해 함께 알아봐 주고, 특수한 검사나 치료가 필요한 때가 아니라면 각 지역에서 추적관찰, 일상 진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이것은 희소질환이 의학적으로 복잡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 지역에서 진단받을 수 없는 구조, 환자가 스스로 정보를 찾아 서울로 이동해야 하는 구조는 의료 전달체계의 설계 문제다.
의료비 문제도 마찬가지다. 희소질환 상병코드가 있는 경우 산정특례 대상자로 등록되어 의료비는 본인부담금의 10%만 내도록 되어 있지만, 비급여 진료나 보장구는 전액 환자 부담이다. 내 아이의 경우 최근 KT 증후군으로 인한 척추측만증이 악화되어 척추교정기 처방을 받았는데, 이 교정기는 비급여 보장구여서 165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희소질환일수록 시기별로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고, 증상에 따라 다양한 조치가 필요한데, 비급여 항목이어서 고액의 비용 부담이 발생하면 누군가는 치료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형평성은 일부 항목을 지원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제도의 틈새에서 발생하는 비용 부담을 줄이는 것 또한 국가의 의무다.
진단과 치료접근성: 스스로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진단을 받고 나면 한시름 놓았다 싶지만, 실은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앞으로 무엇을 예상해야 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증상을 덜어줄 수 있는 약물은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한 공식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는 여전히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사 한 사람이 다종다양한 희소질환을 볼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고, 희소질환 중에서도 어느 정도 표준적인 치료법이나 치료제가 있는 경우와 KT 증후군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KT 증후군에 관한 한, 양질의 정보는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우리 단체 온라인 카페에 있다. 지난 11년간 쌓아 올린 해외 자료와 국내 경험,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민이 쌓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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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T 증후군에 관한 한, 양질의 정보는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우리 단체 온라인 카페에 있다. |
| ⓒ foyu on Unsplash |
유병인구가 얼마나 되든, 환우회나 환자단체가 만들어져 있든 아니든, 희소질환이 있는 사람 누구나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제대로 고민해보면 좋겠다. 희소질환자의 형평성을 보장하는 일은 선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의무다. 2월 마지막 날은 기념일로 남을 것이 아니라, 그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묻는 날이어야 한다. 희소질환을 '극복'하라고 말하기 전에, 국가가 형평성을 보장하고 있는지 먼저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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