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 군 부정선거 양심선언, 국민훈장으로 돌아오다
[이영일 기자]
1992년 3월 22일, 군복을 입은 한 젊은 장교의 결단이 우리나라 선거제도와 공익제보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출발점이 된다. 당시 경기도 파주시 소재 모 육군 부대의 이지문 중위는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군대 내 부정선거를 폭로해 권력과 조직의 침묵을 깨뜨렸다. 그리고 34년이 흐른 지금, 그 용기있는 선택이 국민훈장으로 그에게 돌아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변호인'에서 양심선언을 한 군의관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고문은 2월 27일 국민권익위원회가 개최한 제14회 국민권익의 날 기념식에서 반부패·공익신고 활성화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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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고문이 27일 국민권익위원회가 개최한 제14회 국민권익의 날 기념식에서 한삼석 권익위원장 직무대리로부터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고 있다. |
| ⓒ 국민권익위원회 '권익비전' |
당시 군 내부에서는 '군인 표는 곧 여당 표'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 장병들은 외부 참관 없이 부대가 설치한 기표소에서 투표했고 상급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투표의 비밀성과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가능성이 존재했다.
ROTC 출신 젊은 장교였던 이지문 중위는 이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의심되는 부정행위를 목격하고 오랜 고민끝에 침묵 대신 고발을 선택했다. 1992년 3월 22일, 그는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를 찾아가 군 부재자투표 실태를 공개하는 양심선언을 했다. 군 조직 내부자가 선거 부정을 공개적으로 폭로한 것은 큰 용기없인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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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회 국민권익의 날 기념식 모습. |
| ⓒ 내부제보실천운동 |
이 사건 이후 군 부재자투표 방식은 근본적으로 개편됐다. 군인들이 부대 밖으로 나가 투표하는 '영외투표' 제도가 도입되면서 군 조직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투표가 가능해졌고, 군 관련 부정선거 논란도 크게 줄었다. 한 개인의 양심적 선택이 민주주의 제도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 사건은 이후 한국 사회에서 '공익제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출발점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지문 상임고문의 활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후 30여 년간 공익신고자 보호 제도 개선 운동에 헌신해 왔다. 공익신고자 보호 관련 법·제도 개정 운동에 참여하고 내부제보실천운동과 호루라기재단 설립에 관여하며 공익제보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데 힘써왔다.
여러 기관과 부패 및 공익신고 보호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자문 활동을 이어오며 반부패·청렴 문화 확산에도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국민포장과 대통령 표창, 부패방지위원장 표창에 이어 이번에 국민훈장까지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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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고문이 자신의 국민훈장 목련장 수상을 안내하는 홍보판을 바라보고 있다. |
| ⓒ 내부제보실천운동 |
군 조직 내부의 부정선거를 세상에 알렸던 한 장교의 양심선언은 이제 우리나라 공익제보 역사 속 상징적 사건으로 자리 잡았다.
이 상임고문은 27일 저녁 기자와의 통화에서 1992년의 선택을 이야기했다.
"34년전 군 부재자투표 부정 공익제보로 시작된 공익제보 인생이 어느덧 3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날의 선택은 제 삶을 바꾸었고 우리 사회 공익제보자 보호의 여정과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앞으로의 과제로 '공익제보기금' 입법화를 제시했다. 부패 신고로 환수된 몰수·추징금을 재원으로 공익신고자를 지원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이 상임고문은 "훈장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출발점"이라며 "공익신고자가 개인의 희생에만 의존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남은 사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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