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목 잡은 노다 vs 표심 잡은 안노
노다, 고루한 전략에 ‘중도’ 역사적 몰락
안노, 젊은 미래정당 만들어 11석 돌풍
살아온 세대만큼 큰 간극이 정치판 바꿔

자민당의 역사적 압승으로 마무리된 지난 8일 일본 중의원 선거는 야당의 지형도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이 손잡은 ‘중도개혁연합’의 몰락은 단독 개헌선(중의원 3분의 2)을 확보한 자민당과 대비된 반면 창당 1년도 안 된 ‘팀 미라이’는 비례대표 11석을 확보하며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중도개혁연합의 노다 요시히코(69) 전 공동대표와 팀 미라이의 안노 다카히로(35) 대표가 선거 기간 보여준 ‘정치 언어’가 그들이 살아온 세대만큼이나 큰 간극을 보였고, 이 차이가 결국 선거 결과의 희비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다는 중량급 정치인으로 야당에 속하면서도 자민당과 정치노선에서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보수적 성향을 보이는 정치인이다. 그는 1957년 자위대 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1993년 중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다카이치 총리와 함께 ‘마쓰시타정경숙’ 출신으로 노다가 1기, 다카이치가 3기다.
민주당 정권에서 재무상을 거쳐 2011~2012년 제95대 일본 총리를 지냈다. 그는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이후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서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정권을 넘겨줬다. 하지만 2024년 9월 입헌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후 그다음 달 중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148석으로 늘리며 다시 차기 총리로 거론됐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중도개혁연합은 49석에 그치며 급격한 몰락을 경험했다.
정치학자인 오카다 겐지 센슈대 법학부 교수는 18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입헌민주당을 비롯한 일본 리버럴 정당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에게 ‘정론만 늘어놓고 비판만 하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카다 교수는 한 고등학생의 말을 빌려 이들의 이미지를 “올바름을 강요하는 싫어하는 사회과 교사”라고 표현했다.
중도개혁연합은 고물가 상황 속에서 ‘생활자 퍼스트’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식료품 소비세 감세 등을 공약했지만 자민당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보여주지 못했다. 탈원전이나 개헌 같은 이념적 의제도 명확한 노선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는 정책 지향에서 차이를 안고 있는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의 결합이라는 구조적 한계와도 맞닿아 있다.

대신 그들의 메시지에는 ‘민주주의’ ‘입헌주의’ ‘인간의 존엄성’ 같은 추상적 표현이 주를 이뤘다. 노다는 선거 전인 지난달 16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국가나 이데올로기보다 인간중심주의와 존엄성을 중시하는 이들과 함께한다”고 밝혔다. 같은 달 27일 첫 거리 연설에서는 “이번 선거는 단순한 표심 대결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초를 국민이 직접 판단하는 선거”라고 강조했다. 또한 선거 닷새 전인 지난 3일에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방식의 총선”이라며 다카이치 총리의 조기 의회 해산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오카다 교수는 “중도는 추상적인 인간 존엄 중시 같은 것을 내걸었지만 노다 전 대표는 사회가 현실적으로 직면한 상황을 언어화해 구체적인 선택지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1990년생인 안노는 도쿄대 공학부를 졸업한 뒤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을 연달아 창업했고 SF 소설 콘테스트 수상 경력을 지닌 작가이기도 하다.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5위로 낙선했지만 당시 결성된 자원봉사 조직 ‘팀 안노’를 기반으로 지난해 팀 미라이를 창당했다. ‘미라이’는 일본어로 미래를 뜻한다. 팀 미라이는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151만표를 얻어 비례 의석 1석을 얻으며 안노가 원내에 입성했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당초 목표는 5석이었으나 이보다 훨씬 많은 11석을 얻었다. 당선자들의 평균 연령은 40.2세로 도쿄대·교토대 출신 IT 경력자, 금융권 인사, AI 엔지니어 등으로 이뤄져 있다.
안노는 도쿄도지사 선거 때부터 “일본이라는 국가의 운영체제는 낡았다. 버그를 수정하고 업데이트해야 한다” “정치는 이념 투쟁이 아니라 플랫폼 설계”라는 메시지를 반복해 왔다. 정치를 가치 대결이 아닌 시스템 설계의 영역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헌법 개정과 같은 이념적 쟁점은 과감히 비켜가고 생활·기술·제도 문제로 직진했다. 팀 미라이는 유튜브 라이브와 24시간 챗봇 등을 활용해 밀착형 공약을 적극 홍보했다. 특히 거대 정당들이 포퓰리즘적인 소비세 감세를 외칠 때 소비세를 유지하는 대신 사회보험료(건강보험·연금 등)를 먼저 줄여야 한다며 차별화했다. 안노는 “소비세를 낮추는 대신 미래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거 직후 기자회견에서 “감세에 회의적인 유권자들에게 팀 미라이가 유일한 선택지가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저출생 대책에서도 단순 현금 지원 대신 자녀 수에 따라 부모의 소득세율을 낮춰주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는 대도시에 거주하는 20~30대 맞벌이 부부와 무당층의 호응을 얻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TV도쿄가 지난 13~1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8~39세의 팀 미라이 지지율은 지난해 7월 조사 대비 4%에서 8%로 뛰었다. 40~50대에서도 3%에서 9%로 뛰었다.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13일 이토 마사아키 세이케이대 교수를 인용해 “팀 미라이는 기존 정당이 내세운 정체성이나 이데올로기를 배제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국가 운영을 업데이트한다는 시각에서 정책을 내놓은 점이 주목된다”고 전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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