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붕괴됐지만…가치는 남았다 [홍익희의 비트코인 이야기]
최근 비트코인은 급락을 겪었다. 뉴스는 각기 다른 이유를 들었다. “미 증시 퍼펙트 스톰, 신규 실업수당 청구 예상치 크게 웃돌아, 클래리티 법 난항” 등. 그러나 이 모든 설명을 하나로 꿰는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다. 무너진 것은 비트코인이 아니라, 레버리지였다.
이번 급락이 보여준 것은 비트코인의 ‘내재 가치’가 아니라, 금융 시장의 자동 반응 시스템이었다. 선물과 옵션에 쌓여 있던 과도한 롱(매수) 포지션이 가격 하락을 촉발했다. 또한 마진콜(반대매매)과 강제 청산이 연쇄적으로 작동하며 가격을 더 끌어내렸다. 이는 투자자 판단이 아니라 알고리즘 결정이었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은(銀) 시장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銀 급락의 날, 무엇이 무너졌고 무엇이 버텼나
2026년 1월 30~31일, 은 가격이 급락하자 시장의 첫 반응은 단순했다. “은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해석이었다. 그러나 그날의 가격 움직임을 시장별로 나눠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
결론은 명확하다. 그날 무너진 것은 은의 가치가 아니라 레버리지 구조였다. 그리고 이 패턴은 놀라울 만큼 비트코인이 급락할 때마다 반복된 장면과 정확히 닮아 있었다. 그날 시장에는 세 가지 불안 요인이 동시에 작동했다.
첫째, 미국 정부 셧다운 우려다. 예산 협상 지연으로 정책 공백 가능성이 부각하자 시장은 즉각 리스크 축소 모드로 전환했다. 둘째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중심으로 한 빅테크 실적 둔화다. 이는 단순한 개별 기업 이슈를 넘어 AI·클라우드 성장에 대한 의문으로 확장됐다. 셋째는 케빈 워시의 연준 의장 임명 이슈다. 통화 정책 기조가 다시 매파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긴장도를 높였다.
이 세 변수는 서로 다른 뉴스처럼 보이지만, 알고리즘 매매 세계에서는 하나의 신호로 수렴된다.
“지금은 리스크를 줄일 때다”
가격을 움직인 것은 사람이 아냐
이번 급락의 직접적인 매도 주체는 개인 투자자도, 실물 수요자도 아니었다. 시장을 움직인 것은 헤지펀드의 자동 매매 시스템, 곧 알고리즘이었다. 여기엔 세 부류의 핵심 플레이어가 있다.
첫째, CTA(Commodity Trading Adviser·상품거래자문사) 펀드다. CTA 펀드는 주식과 채권, 통화, 상품 등 선물 시장 추세를 분석해 자동으로 매매하는 컴퓨터 구동 전략을 구사한다. 이들은 가격 추세만 본다. 은이 귀한지, 산업 수요가 어떤지 중요하지 않다. 기술적 기준선이 깨지는 순간 자동 매도가 시작된다.
둘째, 퀀트 헤지펀드다. 이들은 자산 간 상관관계를 중시한다. 기술주 하락, 변동성 확대, 정책 불확실성이 겹치자 ‘리스크 자산 전반 축소’로 즉시 반응했다.
셋째, 마켓 메이킹 HFT(High Frequency Trading·고빈도 매매)다. 평소에는 유동성을 공급하지만, 변동성이 급격히 커지는 순간 호가를 철회한다. 그 순간 시장에는 매도만 남고, 이를 받아줄 가격은 사라진다.
이 세 부류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가격만 본다. 맥락은 없다. 그래서 시장 규모가 작고 레버리지가 많이 붙은 자산, 곧 비트코인과 은이 가장 크게 흔들렸다.
증거금 체계 변화로 강제 청산 속출…뉴욕선물거래소 ‘대혼돈’
이번 은 사태의 결정적 계기는 증거금 체계의 변화였다. 지난 1월 13일, 거래소는 귀금속 선물의 증거금을 계약당 일정 금액에서 명목가치 대비 백분율 방식 곧 가액의 9%로 바꿨다. 가격이 오르면 증거금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달리 말해, 이 변화는 상승장이 지속될수록 레버리지가 자동으로 조여지는 구조다. 가격이 오르면, 투자자 부담이 커지는 시스템이었다.
그 뒤 1월 28일, 첫 번째 증거금 인상이 있었다. 은 선물 증거금을 9%에서 11%로 올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장은 ‘건전한 조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3일 뒤, 두 번째 인상이 단행됐다. 증거금은 11%에서 15%로 뛰었다. 이 변화의 의미는 단순한 4%포인트 인상이 아니다. 같은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현금이 약 36% 증가하는 충격이었다.
가격이 내려가는 와중에 증거금이 올라가면, 시장은 자발적 매도가 아니라 강제 청산으로 이어진다. 곧 ‘지지선 붕괴 → CTA 매도 → 변동성 폭증 → HFT 가속 → 마진콜 → 강제 청산 → 다시 가격 붕괴’로 이어지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이 와중에 실물 없이도 공매도를 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불리온(BULLION)’ 은행들이 숏(매도) 포지션을 잡고 공매도로 가격 하락을 주도해 이익을 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7일 금요일 장 마감부터 또 한 차례 은 선물 증거금이 15%에서 18%로 인상됐다.
뉴욕·런던·상하이 서로 탈동조화…엇갈린 가격 흐름
이번 사태의 본질은 세 시장의 가격이 다음처럼 동시에 갈라졌다는 점이다.
같은 은인데 가격이 세 갈래로 찢어졌다. 지난 2월 2일 뉴욕 선물은 72달러까지 급락했다 79달러로 반등해 은 공포와 청산 속도를 반영했다. 런던 현물은 85달러대를 유지하며 ‘지금 실물로 받을 수 있는 은’의 수요를 반영했다. 상하이 종가는 그날 하루 개인 투자자의 진입을 막았음에도 104달러대로 산업과 실수요의 체온을 보여줬다.

이번 장세에서 주목할 대목은, 서구(뉴욕·런던)뿐 아니라 중국도 은 투기 억제에 나섰다는 점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유일한 은 펀드(UBS SDIC Silver Futures Fund)로 자금이 몰려들어 순가치 대비 36%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그러자 중국은 하루는 진입을 중지시키고, 하루는 기준 가격을 아예 상하이 선물 가격에서 글로벌 선물 가격으로 바꿨다. 하루 만에 가격이 30% 이상 급락했다. 상하이선물거래소도 투기 과열을 식히기 위해 이틀 연속으로 가격 제한폭과 증거금을 올렸다.
뉴욕이 레버리지를 끝까지 허용하며 ‘사형 집행’을 했다면, 상하이는 산업 보호와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급브레이크를 밟은 셈이다.
비트코인과 銀, 왜 이렇게 닮았나
비트코인과 은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게 움직인다. 시장 규모가 작아 작은 자금에도 과도하게 움직이고 레버리지가 붙는 순간 폭발적으로 오르며 레버리지가 빠질 때 가장 먼저 무너진다.
그래서 두 자산은 모두 ‘뉴스’보다 ‘포지션’이 가격을 움직이는 시간이 길다. 급락의 원인은 가치 훼손이 아니라 디레버리징이다. 그래도 실수요가 있는 쪽은 끝까지 버틴다. 비트코인은 네트워크가 멈추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고, 은은 태양광 패널과 전기차, 전력망, 반도체 산업 현장에서 계속 소비된다.
이번 비트코인과 은 급락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오해는 “가격이 급락했으니, 자산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 시장에서는 종종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가격은 시스템의 반응을 보여줄 뿐, 항상 가치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8호(2026.02.25~03.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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