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기다려 20초 눈맞춤, 짧고 강렬한 '퇴근길' 경험기
[정소나 기자]
지난 26일, 김선호 배우의 연극 <비밀 통로>를 하는 날. 김선호 배우를 좋아하는 사춘기 딸은 운좋게 연극을 예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이 볼 수는 없었다. 내용도 전혀 모른다. 왜냐하면 예매에 실패해 딸 아이만 혼자 연극을 봤기 때문이다. 나는 밤늦게 공연이 끝나니 아이를 데리러 가야한다는 핑계 덕분에 '연예인의 퇴근길'이라는 경험을 처음 해보았다.
김선호 배우를 알게 된 것은 JTBC 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2>를 통해서였다. 워낙 대학로 연극 배우 시절부터 '아이돌' 급 인기였다고 들었는데 역시나. 매 프로그램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갯마을 차차차>, <스타트업>, <폭싹 속았수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까지. 빠짐없이 그의 연기를 챙겨보고 있다. 팬카페 가입은 물론 팬미팅까지 참여하며 즐거운 '덕질'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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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통로 퇴근길 배우 퇴근길 배웅 후 해산하는 팬들 |
| ⓒ 정소나 |
혼자 어색하지만 태연한 척 아무 말 없이 슬쩍 대열에 끼어 나만의 긴장감을 즐기고 있던 중이었다. 20대 여성 3명 정도가 뒤에 서있다가 말을 조심스레 꺼낸다.
"이거 무슨 줄이에요? 누구 나오는거예요?"
바로 그 때, 내 옆에 있던 50대 중반의 여성이 자신 있게 말한다.
"김선호 배우요."
"아 이사통(<이 사랑 통역 되나요>)? 아 <스타트업>에 나온 그 배우요? 대박."
내 옆의 50대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혼자 왔지만 어딘가 모르게 여유로워 보이는 태도가 단숨에 열혈 팬임을 직감했다. 팬은 팬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그녀와 갑자기 말을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자신의 핸드폰을 바로 꺼내어 20대 여성들에게 보여주는 그녀. 김선호 배우가 바탕화면이었다.
나는 물었다.
"오늘 연극 안보셨어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말이 이어진다.
"연극은 7회 정도 예약했는데 오늘은 퇴근길 보려고 왔어요. 1, 2차보다 3차 예매가 너무 힘들었네요. 전 부산에서 왔어요. 딸들이 서울에 살아서 이번 주말까지 서울에 있을거예요."
"대단하시네요. 한번 예매하기도 힘든데 일곱번이라니요!"
놀라움, 부러움, 경이로움까지. 그 어떤 단어로도 형용이 안 됐다.
"딸들이 예약해주고, 저도 예약하고... 가족 다 동원해서 성공한 거죠. 아무래도 딸들이 빨라요."
내게 언제 예약했냐고 물어 나는 3월에 본다고 말했다. 그것도 행운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갯마을 차차차>부터 좋아했다고 했다. 팬클럽 활동도 꽤 열심히 하는 열심 회원이었다. 나도 질세라 말했다.
"저도 카페 회원이에요.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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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통로 연극 공연장 비밀통로 연극 공연장 |
| ⓒ 정소나 |
'찰칵 찰칵'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바로 김선호 배우가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회색 티와 가죽 자켓, 키링이 달린 백팩까지. 미소를 짓는 그를 향해 우리는 순간을 기록했다. 아쉽게도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단 10초라도 순간을 담았으니 그 자체로 짧지만 강렬한 행복이었다. 태어나 처음 해본 '퇴근길' 현장 방문은 체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분명히 앞에 서있었는데 어느 순간 인파에 밀려 둘째 줄로 밀려나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떻게든 배우 얼굴을 잘 찍어보겠다고 팔을 부들부들 떨며 휴대폰을 들고 서있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나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다.
20초의 만남 뒤 배우는 바로 차를 타고 홀연히 떠났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질서정연하게 발길을 돌리는 모습 또한 진풍경이었다.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것. '덕질'에는 나이가 장벽이 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고 그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삶의 에너지이며 즐거움이다. 혼자였다면 지루했을 30분이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며 설렘을 공유해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한편, 연극 <비밀 통로> 를 보고 온 딸은 내게 단 하나의 정보도 주지 않았다. 엄마를 위해 끝까지 스포일러를 하지 않겠다는 딸아이의 단호하고도 얄미운 태도에 약간의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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