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마약 검사 받으셨어요?"

김옥성 2026. 2. 2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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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담장 안에 남아 있는 두 잣대

[김옥성 기자]

새 학기를 앞둔 학교는 늘 바쁩니다. 교실을 정리하고,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설레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그 설렘 뒤에서 몇몇 교사들은 보건소와 병원을 오가며 마약 검사 결과 종이를 챙깁니다. 특히 기간제 교사들에게는 이 일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씁쓸한 일입니다.

오늘 마침 사랑하는 제자 한 명과 통화를 했습니다. 오랜 기간 기간제교사를 하는 제자입니다. 새학기 되면 뭐가 제일 힘드냐고 하니 마약 검사 이야기를 합니다. 매년 되풀이되는 마약 검사로 자존심이 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교육공무원법 상 교육공무원 임용 결격사유에 마약 중독자를 포함하게 되면서, 기간제 교사는 매년 계약시마다 마약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학교에 제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검사가 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아이들을 가르치는데도, 일하는 자리 모양이 다르다는 까닭으로 누구는 한 번만 내면 되고, 누구는 계약을 다시 맺을 때마다 또 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같은 학교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서 일해도 빼주는 일은 없습니다.

해마다 제 돈을 들여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일. 그 일은 단순한 서류 절차가 아니라 "나는 떳떳한 사람입니다" 하고 거듭 밝히는 일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 학교운동장 학교담장너무 운동장,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똑같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늘 차별을 당해야 한다는 것은 가슴아픈 일입니다.
ⓒ 김옥성
"그럴 만한 까닭이 없는 차별"이라는 말

인권위원회는 이런 관행이 그럴 만한 까닭이 없는 차별이라고 밝혔습니다. 같은 일을 맡아 하는 교사에게 일하는 자리 모양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검사를 되풀이하게 하는 것은 사람다운 권리를 해칠 걱정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교육 당국은 법에 어쩔 수 없이 따른 것이라거나, 채용하는 곳이 달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일을 처리하기 편하다는 사정이 사람의 권리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정규 교사는 휴직했다 돌아와도 다시 검사를 내지 않아도 되는 일을 떠올려 보면, 같은 교실에서 같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기간제 교사에게만 거듭 내라고 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치우치지 않은 듯 보일지 몰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되풀이되는 검사는 "혹시 위험한 사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깔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학교는 민주주의와 사람의 권리, 서로를 고루 대하는 삶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가치를 말하는 교사가 정작 자신의 일자리 때문에 차별을 겪는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요? 교육은 본디 모두를 고루 바라보는 데서 출발합니다. 교사의 자리 때문에 차별이 생긴다면, 학교는 스스로 가르치는 가치를 흔들게 됩니다.

사실 기간제 교사가 겪는 어려움은 마약 검사만이 아닙니다. 성과에 따른 돈을 받을 때 손해를 보기도 하고, 연수를 받을 기회가 적기도 하며, 여러 가지 사무 일이 몰리기도 합니다. 학교 안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의 벽'이 있습니다. 이번 일은 그 벽을 드러낸 한 모습일 뿐입니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할 때

인권위원회의 권고는 단순히 일을 고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학교 안에서 느끼는 차별을 없애라는 사회의 요구입니다.

먼저, 같은 기관에서 이어서 일하는 경우에는 검사를 다시 내지 않도록 길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 나라가 필요해서 하는 검사라면 그 돈도 나라가 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기간제 교사들이 겪는 다른 어려움도 빠짐없이 살펴보고, 실제로 힘이 되는 고침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차별 없는 교실은 차별받지 않는 교사에서 시작됩니다. 기간제 교사도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삶을 살피며, 학교를 떠받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차별을 그냥 두는 일은 교육의 바른 뜻을 스스로 약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차별 없는 교실"은 "차별받지 않는 교사"에서 시작됩니다.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한 교육 당국은 인권위원회의 말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학교 문을 들어서는 모든 교사가 오롯이 가르치는 일에만 힘쓸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나라 학교가 지켜야 할 가장 낮고도 기본인 품격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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