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세, 그리고 난 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목수정의 바스티유 광장]
[목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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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레 제퇴르 드 방 서점에서 직원이 지젤 펠리코의 회고록 <그리고 삶의 기쁨>을 진열하고 있다. 이 회고록은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쥐디트 페리뇽이 공동 집필했다. |
| ⓒ 로이터 연합뉴스 |
2024년 재판 과정에서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의 무게를 짐작하기에 회고록 제목에 담긴 '기쁨'이란 단어는 그 자체로 전율이었다. 인생을 함께한 남편의 충격적인 행각, 그가 조직한 범행에 동참한 수많은 남자, 법정에서도 죄를 부인하고 그녀를 조롱하던 잔인한 시선들, 산산조각 난 50년의 삶을 딛고 그녀가 마침내 도달한 곳이 '기쁨'이라면, 거기엔 지혜와 용기가 있을 터이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17일 프랑스의 플라마리옹을 비롯해 전 세계 22개국에서 동시 출간된 그녀의 책은 각국 아마존에서 종합 1위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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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2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클래런스 하우스에서 영국의 커밀라 왕비가 지젤 펠리코(오른쪽)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 AFP 연합뉴스 |
2020년 11월 2일은 지젤 펠리코의 삶에 쓰나미가 들이닥친 날이었다. 50년을 단단한 신뢰와 애정으로 살아왔던 남편 도미니크 펠리코가 경찰에 연행됐다. 남편이 슈퍼마켓에서 여자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하다 고발되자 집을 압수수색해 증거들을 찾아낸 경찰은 남편을 구속했다.
지젤은 비록 그가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다 할지라도 심리치료를 받도록 하면서 끝까지 남편을 지키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지젤을 따로 부른 경찰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편 범죄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그녀 자신이라는 범행 정황이 드러났다. 남편 컴퓨터에서 2만 개의 성폭행 사진과 비디오가 발견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남편은 주기적으로 그녀에게 약을 먹여 의식불명 상태에 들게 했고, 아내를 성폭행할 남자를 온라인으로 모집해 그 장면을 촬영해 왔다. 그 사이 지젤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종종 자신이 지난밤 있었던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뇌 건강에 대한 의심을 갖게 했고 산부인과 질환도 점점 심해져 갔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그녀는 숱하게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어떤 일이 그녀에게 일어났는지 알아챈 의사는 없었다.
3년에 걸친 수사 끝에 남편 도미니크 펠리코와 50명의 남자들에 대한 재판이 2024년 9월 시작되었다. 피해자 신원 보호를 위해 비밀 재판이 진행될 수 있었으나 지젤은 익명 보호 대신 공개 재판을 요구했다.
"수치심은 그들의 몫이어야 한다는 자각이 나를 일으켰다."
처음엔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심한 수치심에 시달렸다. 아무도 모르게 이 사건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뻔뻔한 태도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어 갔다. 가해 남성들이 "부부간에 합의된 줄 알았다", "그녀도 즐기는 줄 알았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서 "내가 숨으면 이 사람들의 거짓말이 사실이 된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다 대중 앞에서 모든 것을 공개해 그들의 거짓말을 깨부수고 자신이 느끼는 부당한 수치심을 그들에게 안기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그 사실을 모르고 왔더라도, 그녀가 약에 취해 의식을 잃은 상태임을 알게 된 남자 중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여성을 물건 취급하는 가부장제의 관성에 제대로 충격타를 가해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사죄의 말을 건넨 사람은 단 한 명
자신이 익명 뒤에 숨으면 그저 한 가정의 비극으로 끝나겠지만, 공개 재판을 통해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를 공론화하면 다음 세대를 위해 세상에 커다란 경종을 울릴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녀의 판단은 적중했다.
이러한 그녀의 결정은 가해자들을 당황시켰고 그들은 더 이상 피해자를 주눅 들게 할 수 없었다. 법정에서 그녀를 마주친 가해 남성들은 일부러 그녀를 제압하기 위해 위협적으로 그녀를 바라보곤 했지만 지젤은 한 번도 그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똑바로 바라보자 매번 그들이 먼저 고개 숙이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수치심을 가져야 할 사람은 바로 그들임을 알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그녀의 평정심을 깨려 했고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부부의 계산된 모함에 자신들이 걸려들었으며 지젤이 공범이라고까지 주장하며 그녀를 자극했다. 그러나 지젤은 한 번도 무너진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공개된 비디오 앞에서 그들의 주장은 명백히 거짓임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고 그녀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져 갔다.
재판 중 그녀의 차분하고 존엄한 태도도 언론에 회자되었다. 그녀는 공개된 장소에서 단정하고 우아한 옷차림을 하기 위해 신경 썼다. 성폭력 희생자에게 흔히 세상이 부여하는 위축되고, 우울하고, 자살 시도를 반복하는 파괴된 이미지를 거부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것이 바로 가해자들이 원하는 바였기 때문이다.
공개 재판이 시작되면서, 이 사건은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지젤은 지구촌 곳곳으로부터 수천 통의 지지 편지를 받았다. 아비뇽 법정의 지젤 펠리코라고만 적힌 편지들이 법정으로 직접 배달되었다. 법정 안팎에선 그녀를 응원하는 여성들이 매번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었고 그녀는 자신만의 재판이 아님을 자각할 수 있었다. 노년에 비로소 만난 여성 연대는 지젤을 다시 일으키는 절대적인 힘이 되어주었다.
'지젤 펠리코의 동의하에 성행위를 했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그들은 모두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녀를 성폭행했느냐'는 질문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아니요'라고 답했다.
이 재판을 통해 프랑스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성행위에 있어 '동의'에 대한 법적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공론의 장이 열렸다. 남녀가 각기 달리 해석하고 있던 동의의 개념이 좀 더 선명해졌다. 4개월 간의 재판 끝에 도미니크 펠리코는 징역 20년형을, 나머지 남자들은 3년형을 선고받았다. 50명의 남자 중 그녀에게 사죄의 말을 건넨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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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호 영국 <보그> 표지를 장식한 지젤 펠리코 |
| ⓒ 보그 |
어떤 상황에서건 '삶의 기쁨'을 되찾는 힘은 그녀 집안의 여성들이 그녀에게 물려준 유산이었다. 그들은 모두 비극을 겪었고, 한때 고통에 울부짖었으나, 바닥을 딛고 일어서 삶의 기쁨을 향해 달려갔다. 고통 속에서 다시 기쁨을 만들어 가는 DNA를 물려받은 지젤은 언제나 그 가치를 가슴에 지니고 살았다. 9살에 엄마를 잃었을 때도, 믿었던 남편의 배신으로 희대의 성범죄 희생자가 됐을 때도. 법정에서 드러난 모습만으론 알 수 없었던 그녀의 삶을 조망하는 이야기에서 그녀가 보여준 용기와 회복력의 원천을 찾을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남편과는 첫눈에 반한 격렬한 사랑이었다. 두 사람은 어린 나이에 결혼해 서로에게 '연인이자 구원자'인,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부부로 살아왔다. 남편과 함께한 50년의 삶 모두를 부정하고 쓰레기통에 처넣을 순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었기에, 지젤은 부부가 함께했던 50년의 세월과 사건을 분리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고 했다. 자신이 겪은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약물로 인해)은 공포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 덕에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었고, 생존할 수 있었다고 솔직히 증언한다. 또한 이 일로 모든 남성을 야만적 범죄자로 단죄하는 성급함도 거부했다.
"여성과 남성은 함께 살며 생을 가꾸도록 만들어졌다. 당연히 이 사건으로 남성 모두에 대한 신뢰를 잃지는 않았다. 이런 일을 내가 겪었다고 해서, 여성과 남성을 적대적 관계로 대립시키는 우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사랑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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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24일(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지젤 펠리코가 자신의 회고록 <그리고 삶의 기쁨> 독일어판 출간 기념회에 참석해 있다. |
| ⓒ AP 연합뉴스 |
"저는 경이로운 남자를 만났고, 우린 마치 10대들처럼 사랑에 빠졌습니다. 네, 가능합니다. 73살에도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녀는 확실히 2년 전 대중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보다 밝고 고운 얼굴로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오늘 그녀가 누리는 평온과 사랑의 기쁨은 그동안 축적되어 온 가부장제의 모순들이 그녀의 발 아래까지 밀려왔을 때, 자신과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워 쟁취한 값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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