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헌으로 본 헬라어, 복음 더 선명해져
김선용 지음/복있는사람

신약성경 본문의 헬라어 단어를 단순한 사전적 정의로만 접해온 독자라면 이 책은 가뭄 끝의 단비처럼 반갑겠다. 전체 200쪽이 안 되는 비교적 짧은 분량이지만 그 내용은 깊고 풍성하며 강력하다. 저자는 문헌학과 역사비평을 공부하고 초기 기독교 역사와 문헌을 탐구해온 학자다.
고대 문서를 폭넓게 섭렵한 저자의 내공은 당시 문화와 철학, 건축과 의료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헌 속에 나타났던 성경 속 헬라어 단어들의 사용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신약성경이 전하려 했던 원래의 메시지를 밝힌다. 서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책은 사회사(社會史)와 감정사(感情史), 당시 사람들의 집단적 사고방식을 추적하는 심성사(心性史)의 시선으로 고대 텍스트에 다가간다.
신약 시대와 오늘날 함께 쓰이는 단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의미와 뉘앙스에 적잖은 간극이 존재한다.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그 뜻을 안다고 생각해 지나칠 때가 많다. 그러나 책은 이런 구절을 보여주면서 그 속에 담긴 더 풍성한 목소리와 이미지를 복원한다.
마가복음 12장 10절에 나오는 ‘케팔레 고니아스’가 그렇다. 직역하면 ‘모서리의 머리’라는 뜻인데 우리말 성경에는 ‘모퉁이의 머릿돌’로, 영어성경은 코너스톤(cornerstone)으로 번역했다. 저자는 고대 건축술에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건물 기초의 모퉁이돌로 쓰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해석학적 난제를 해결할 단서를 고대 유대 문헌에서 찾는다. 그 이유는 이 헬라어가 시편의 히브리어 표현을 직역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케팔레 고니아스는 건물의 하단에 사용되는 돌이 아니라 아치형 건축에서 핵심이 되는 ‘이맛돌(keystone)’을 가리킨다. 키스톤은 아치의 중앙 정점에 위치해 전체 구조의 무게를 분산시키고 균형을 유지하는 중추적 돌이다.

반듯하지 않아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아치의 이맛돌로 사용된다는 의미다. 모퉁이돌에서 이맛돌로 올려진 이미지는 예수의 부활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을 통해 가장 높은 자리로 올려지셨다는 신학적 상징이 이 돌의 위치 변화에 투영됐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이 단어는 우리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 타인의 잣대로 자존감이나 효능감이 흔들리는데 그럴 때마다 가치판단의 중심인 하나님을 생각하라고.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들이셨고 우리가 가치 있다고 선언하셨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반전의 신학’이라 명명하면서 이 신학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설명한다.
단어의 재발견은 개인의 자존감을 넘어 사회적 약자를 향한 시선으로 확장된다. 어린이라는 뜻의 ‘파이디온’을 보자. 고대의 어린이는 오늘날의 어린이와 같지 않았다. 당시 어린이는 거의 사람이 아니었다. 사회 계층 사다리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존재로 생존 자체가 투쟁인 취약계층이었다. 로마제국에서 파이디온의 삶은 극도로 위태로워 신생아 30%는 첫돌을 넘기지 못했고 절반은 10살이 되기 전 사망했다.
당시엔 영아 유기와 영아 살해도 만연했는데 너무 가난해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기형 혹은 원하는 성별이 아닐 경우 유기됐다. 강한 남아선호 탓에 여아는 유기되기 일쑤였다. 남편 없이 홀로 사는 여성이나 이혼 여성의 아이 역시 유기 대상이었다.
이런 현실에서 예수님은 어린이를 데려다 껴안아 주시고 그들을 축복하셨다. 이는 단순히 어린이를 사랑하라는 어린이 주일의 도덕적 교훈 그 이상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예수께서 의도적으로 어린이를 ‘데려다가’ ‘팔에 안으신’ 행동을 헬라어 ‘엔앙칼리사메노스’라는 말로 사용했는데 신약에서는 오직 마가복음 9장 36절과 10장 16절에만 등장한다. 예수께서 아이를 포옹한 것은 입양의 포옹, 곧 부모 역할을 자처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파이디온이 누구냐고 묻는다. 빈곤한 어린이, 여자 어린이, 장애아, 이주민 어린이, 학대받는 어린이 등이며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어린이들이 전쟁과 가난, 착취와 학대 속에 살고 있다고 독자를 상기시킨다.
책은 존재의 전복, 관계와 윤리, 하나님과 예수의 감정, 종말과 시간이라는 주제 아래 18가지 헬라어를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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