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서 함께 찍은 쉼표, 제주 올레길에서 마침표
손민호의 레저터치 -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20년 인연
#2006년 10월 13일
![2006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찍은 사진. [사진 제주올레]](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7/joongang/20260227001644461mxuq.jpg)
“우리는 여기서 참 행복했고 많은 것을 얻었어. 그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주자. 우리,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각자의 길을 만들자.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어때?”
수키는 카미노를 걷는 내내 카미노 같은 트레일이 우리나라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길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날 수키는 결심했다. 내 고향 제주도로 내려가 나만의 카미노를 만들겠다고.
20년 전의 수키가 서명숙, 그러니까 한국에 걷기여행 열풍을 몰고 온 제주올레의 이사장이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서명숙은 이듬해 고향으로 내려가 올레길을 내기 시작했다.
#2026년 2월 20일

스페인의 카미노를 함께 걸었던 헤니와 수키가 한국의 올레길을 걸었다. 20년 만의 만남이다. 둘은 제주올레 6코스를 함께 걸으며 20년 전처럼 나무에 기대 사진을 찍었다. 헤니가 말했다.
“수키가 이 길을 냈다고? 믿어지지 않는다. 정말 위대한 일을 했다. 올레길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걸 보고 수키가 ‘인간의 길(Human Trail)’을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엄청나게 놀랐고 감동했다.”
카미노를 걷기 전 헤니는 영국의 잘나가는 오페라 연출자였다. 2004년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훈장도 받았다. 그러나 그도 지쳤다. 2006년 스페인으로 날아가 생전 처음 장거리 트레일에 도전했고, 끝내 완주했다.
카미노는 그의 인생도 바꿨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작은 마을에 들어가 공동체 운동을 시작했다. 특히 이민자와 집시 아이들의 인권 보호와 교육 활동에 매진했다.

지난 18일 헤니는 제주올레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옛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손수 티셔츠를 만들었고, 카미노를 걸을 때 신었던 신발도 갖고 왔다.

#위대한 오해
올레길을 만든 수키는 헤니를 다시 보고 싶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헤니가 건네준 연락처를 잃어버렸다. 수키가 기억하는 건 ‘헤니’라는 이름뿐이었다. 사방팔방 수소문했으나 헤니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반전이 일어났다. 멜리데에서 촬영한 사진을 얼굴 인식 인공지능에 돌렸더니 스페인의 한 지역 잡지에 실린 사진이 검색됐다. 그 사진으로 헤니를 찾아냈다. 알고 보니 수키가 기억하는 헤니는 이름이 아니라 성(姓)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잔느 캐서린 헤니다.
수키가 물었다. “나는 네 말대로 내 고향에서 길을 만들었는데, 너는 왜 고향으로 안 돌아갔니?” 그러자 헤니, 아니 잔느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너에게 길을 만들라고 한 적이 없어. 너의 길을 찾아서 가라고 했을 뿐이야. 그래도 좋아. 나는 스페인에서 새 길을 찾았어. 수키, 너도 너의 길을 찾았잖아.”
수키는 잔느가 말한 “길(way)”을 ‘걷기여행길(Trail)’로 오해했었던 것 같다. 카미노가 준 축복에 빠져있을 때였으니까. 오해였어도 괜찮다. 그 덕분에 제주올레가 만들어졌으니.

제주올레는 지난해 기준 완주자 3만1169명을 기록했다. 누적 탐방객은 1300만 명이 넘고, 제주올레로 연간 6630억원의 지출이 발생한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28일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두 사람의 토크 콘서트가 열린다.
손민호 레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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