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민수의 고대이집트] 문명의 탄생과 문화적 내구성

고대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3100년경에 시작된다. 도시, 문자, 사회 계층화, 공공건축물, 장거리 교역 등 일반적인 문명의 요소들은 이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에 등장했지만 이집트 문명의 경우 나르메르(사진)가 이집트를 최초로 통일하는 시점을 그 시작으로 삼는다. 이때부터 이집트 문명은 3000년가량 지속되어 클레오파트라 7세와 안토니우스의 연합함대가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의 로마 함대에게 패배하고 이집트가 로마 제국의 속주로 전락하는 기원전 30년 무렵에야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집트에서 독립 왕국이 사라진 이후에도 고대 이집트 문화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재생산됐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문화적 재생산이 끝나게 되는 것은 대략 4세기 말~5세기 초의 일이다. 그 계기는 로마 제국에 의한 기독교 국교화였다. 요컨대 고대 이집트 문명은 문화적으로는 4000년 이상 지속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오랜 기간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문화의 핵심적인 요소들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을 잘 유지하면서 이집트인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사용됐다. 이를테면 기원전 3000년경에 사용되던 모티프들이 이집트 문명이 종말을 고한 기원전 30년 무렵에는 물론이고, 서기가 시작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거의 같은 모양새와 의미로 사용된 예들이 무척 많다.
이와 같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문화적 내구성은 안정적인 자연조건과 그를 바탕으로 한 충분한 식량 생산, 생계의 안정성, 그리고 ‘세계가 창조될 때 이집트만큼은 완벽하게 창조되었다’고 믿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자신감과 이 모든 조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한 정치체계의 탁월성 덕분에 가능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은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꾼다. 이들에게 고대 이집트 문명은 중요한 참고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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