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휴민트'가 묻는다

김동근 2026. 2. 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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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액션보다 강력한 감정 보여주는 영화 <휴민트>

[김동근 기자]

 <휴민트> 포스터
ⓒ NEW
누군가를 사랑해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사람마다 그 한계는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니까 끝까지 붙잡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랑하니까 먼저 놓아준다. 사랑은 언제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때로는 집착처럼 보이고, 때로는 무심함처럼 보이고, 때로는 차라리 떠나는 선택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사랑은 단순하지 않다. 감정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결을 가지고 있다.

영화 <휴민트>에도 그런 사랑이 있다. 한 사람은 사랑해서 떠났고, 한 사람은 사랑해서 다시 찾아왔다. 블라디보스톡이라는 낯선 도시를 배경으로, 첩보 액션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이 영화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총이 아니라 감정이다. 서로를 향한 마음, 지키고 싶다는 의지, 그리고 그 마음을 감추려는 선택.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제3자의 위치에서, 그 사랑이 망가지지 않도록 애쓰는 사람. 임무와 감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려는 존재가 바로 그 인물이다. 그렇게 세 사람의 감정은 충돌하고, 엇갈리고, 또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영화는 결국 첩보가 아니라, 사랑과 보호에 관한 이야기다.

[첫 번째 감정] 박건의 사랑
 <휴민트> 스틸컷
ⓒ NEW
이 영화를 가장 강하게 끌고 가는 감정은 박건(박정민)의 사랑이다. 그는 북한에 자신을 두고 말없이 떠난 채선화(신세경)를 찾기 위해 블라디보스톡까지 온다. 표면적으로는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임무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 또 하나의 목적이 있다. 바로 선화를 찾는 것이다.

처음 식당에서 마주친 두 사람의 시선은 말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박건은 눈을 피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선화를 바라본다. 그 눈빛에는 미안함과 원망,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사랑이 동시에 담겨 있다. 선화는 당황하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는다. 마치 이미 마음을 정리한 사람처럼. 하지만 그 평정심은 완전하지 않다. 그들이 식당에서 다시 만나는 그 장면에서 두 사람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죽하면 그 두 사람을 보고 황치성도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챘으니까.

선화가 국정원 조 과장과의 은밀한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다시 마주친 박건의 눈빛은 더 깊어진다. 말은 없지만, 감정은 선명하다. 떠난 이유를 묻지 못하는 사람의 눈,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의 눈. 그 복잡한 감정이 박건의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관계가 이미 강을 건너버렸다는 걸 알면서도, 그 강을 다시 건너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 감정] 채선화의 무심함
 <휴민트> 스틸컷
ⓒ NEW
채선화의 태도는 영화 내내 무심하게 보인다. 박건을 향한 반응은 차갑고, 거리를 둔다. 마치 이미 과거를 정리한 사람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무심함이 꼭 무관심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 가장 쉬운 선택이 무심한 척하는 것이니까. 어쩌면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숨김으로써 스스로와 가족을 보호하려 했던 것일지도 몰겠다.

그녀가 떠난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아픈 엄마, 치료비,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사랑보다 앞서는 책임이 그녀에게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화는 자신의 감정을 저 밑으로 밀어두고, 현실을 선택한다. 하지만 영화 중반 그녀의 핸드폰에 남아 있는 박건과 선화의 사진은 그 선택이 완전한 이별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지우지 못한 기억, 지우지 못한 감정이 여전히 선화의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선화의 마음이 조금씩 드러난다. 무심함 아래 감춰져 있던 사랑과 애틋함이 서서히 올라온다. 박건을 향한 눈빛이 달라지고, 행동이 바뀐다. 사랑을 포기한 게 아니라, 잠시 눌러두었기 때문에 툭툭 튀어나오는 그녀의 행동이 오직 박건을 향한다. 그녀의 무심함은 방어였고, 그 방어는 결국 박건 앞에서 조금씩 풀린다.

[세 번째 감정] 조 과장의 안타까움
 <휴민트> 스틸컷
ⓒ NEW
조 과장은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해, 다시 침대에 눕는 장면으로 끝난다. 어쩌면 영화는 그의 하루, 아니 국정원 요원의 반복되는 일상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휴민트'라는 말처럼 사람에게서 정보를 얻지만, 동시에 그 사람을 지켜야 하는 임무, 사소한 듯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게 대할 수 없는 그의 일상이 영화 내내 보여진다.

그는 특히 보호에 진심인 인물이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첫 번째 휴민트를 지키지 못한 기억이 마음 깊이 남아 있다. 휴민트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그의 마음에 자리한 슬픔과 안타까움이 그가 받은 다음 미션의 동력이 된다. 두 번째 휴민트인 채선화를 만나면서 그는 이번에는 꼭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그 결심이 영화 중반 이후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절박함을 느끼게 해준다.

조 과장의 일상은 어쩌면 계속된 안타까움 속에서 굴러가는지도 모른다. . 지키고 싶지만, 상황은 늘 완벽하지 않고, 최악의 상황으로만 달려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자신의 정보원을 보호하려 애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박건의 사랑과 조 과장의 안타까움이 결국 채선화를 지켜낸 건 아닐까. 감정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았던 셈이다.

총성과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

영화의 후반부 액션은 에너지가 넘친다. 남북 요원들과 러시아 갱단, 그리고 북한 영사 요원들이 얽히며 벌어지는 총격전은 처절하고 긴장감이 높다.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각 인물이 끝까지 붙잡고 있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총성이 울릴 때마다, 그 안에는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함께 터진다.

류승완 감독은 자신이 잘하는 액션 연출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총격 장면의 동선과 호흡, 공간 활용은 꽤 완성도가 높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액션 장르로서의 밀도는 충분하다. 첩보 액션의 외피 안에 감정을 심어두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후반부 액션 장면이 꽤 길게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선화와 박건의 감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영화적 긴장감을 폭발시키는데 탁월하게 작용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조인성이 등장할 때마다 시선이 가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박정민이다. 차갑게 절제된 표정 속에 담긴 애틋함, 특히 눈빛이 절절하다. 신세경은 후반부 분량이 크진 않지만, 선화라는 인물의 현실성과 균형을 잘 살려냈다.

<휴민트>는 현재 <왕과 사는 남자>에 비해 흥행 면에서는 다소 밀리고 있지만, 액션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영화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묻는다. 사랑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그리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총성과 감정이 뒤섞인 자리에서, 결국 남는 건 사람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첩보물이면서도, 끝내 사랑 이야기로 기억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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