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했는데 "몇 시에 올거냐?" 묻는 아내의 속뜻

이종범 2026. 2. 2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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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로 시작되는 부부 갈등... 하루 일상을 다시 맞추는 시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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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기자]

"몇 시에 올 거야?"
"빨리 올라오면 안돼?"

퇴직 후 아내에게서 가장 자주 듣는 호출 멘트다. 특히 카페로 '출근'하는 날이면 더 그렇다. 급한 일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걸 나도 안다. 다만 이런 연락이 반복되면 마음이 눌린다. 어느 순간 그 말은 '시간 확인'이 아니라 "빨리 들어와"라는 재촉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가면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청소기를 돌리고, 노견 두 마리 밥을 챙기고, 뽀돌이에게 수액을 놓아준다. 저녁 준비도 거든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집 밖 베란다 한쪽엔 아내가 길냥이를 위해 1평 남짓한 천막을 만들어 놓았다.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두꺼운 비닐을 여러 겹 둘러 바람을 막아둔, 겨울용 임시 거처다. 그 안에서 겨울을 버티는 길냥이 네 마리의 사료를 채우고 물을 갈아주고, 혹시 무슨 일은 없었는지 흔적을 한 번 더 살핀다. 그래서일까 우리 집에서 "몇 시"는 약속 시간이 아니라 약, 수액, 밥, 돌봄이 맞물려 돌아가는 하루의 시간표에 더 가깝다.

나는 퇴직할 즈음 스스로 다짐했다. 강의가 없는 날도 회사 다니듯 9시쯤 나가고 6시 전에 들어오겠다고. 집에만 있으면 더 흐트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에게는 그 다짐이 아내의 하루를 흔드는 변수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왜 자꾸 몇 시에 오는지 묻는 거냐"고 되묻는 순간, 아내의 답은 짧아지고 목소리 톤은 올라간다. "화난 거야?"라고 물으면 "화난 거 아니야"가 돌아온다. 그 다음부터는 뻔하다. 맞대응하면 판이 커진다. 그래서 내가 멈춘다. 소소한 다툼이지만 해결이 아니라 정지 버튼으로 끝나는 셈이다.

다툼의 불씨는 사소한 데서 촉발된다. 내 칫솔은 유난히 빨리 닳는다. 아내가 하나 쓸 때 나는 두 개를 쓴다. 새 칫솔을 꺼내면 아내가 잊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자기 칫솔질은 너무 전투적이야."

잇몸 걱정하는 말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대꾸가 튀어나온다.

"그렇게까지 세게 하는 건 아니야."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아내는 내 칫솔을 한 번 집어 들고는, 자기 칫솔을 들어 보이며 말한다.

"봐. 내 건 아직 멀쩡하잖아. 근데 자긴 왜 이렇게 금방 벌어져? 살살 하라니까."

말의 핵심은 잇몸인데, 내 귀에는 잔소리로 들린다. 나도 모르게 말끝이 뾰족해진다. 결국 톤이 살짝 올라가듯 "알았어"라고 말을 접지만, 칫솔모보다 마음이 먼저 닳는 느낌이다.

또 하나는 일을 시키는 방식이다. 하나 끝나면 "이거", 또 끝나면 "저거"로 이어진다. 미리 몇 개를 묶어서 말해주면 한 번에 처리하고 내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늘 이런 수순을 밟는다. 나는 '돕는 사람'인데, 어느 순간 '지시받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적지 않다. 인정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다만 우리 집에서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자꾸 헷갈린다.

그러던 어느 날, 노견 패드와 대소변 정리를 하다가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내 서운함의 정체가 아내의 말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집은 "대충 해도 되는 공간"이 아니다. 하루가 무너지지 않게 굴려야 하는 곳이다. 그 굴림에는 해야 할 일이 층층이 쌓여 있다.

예민한 93세 시아버지의 식사 챙김, 노견들의 약 시간과 기저귀·패드 정리, 뽀돌이 수액, 베란다 천막 속 길냥이 네 마리 밥그릇, 그리고 84세·82세 친정 부모의 병원 일정까지. 그 모든 것이 아내 하루 안에 겹겹이 쌓여 있다. 하루에 한 번만 하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매일같이 시간 맞춰 반복해야 하는 일이다.
 같은 말이 서로에게 다르게 꽂힐 수 있다.
ⓒ thwhoai on Unsplash
아내가 왜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이해한다. 오랜 시간 홀 시아버지와 다섯 시누이와 함께 살며 버텨야 했다.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40대에는 눈썹 문신으로 생계를 도왔고, 그 과정에서 공황장애가 와 지금도 약을 복용한다. 그런 시간을 지나온 사람에게 생활 리듬은 취향이 아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붙잡는 방식이다. 그러니 아내가 붙잡는 건 나를 통제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하루가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누고 싶은 결론은 이게 '성격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퇴직은 가정 안에서도 역할이 다시 자리 잡는 시기다. 퇴직 전에는 아내가 혼자 쥐고 있던 집안의 핸들이 있었고, 나는 퇴근 후 들어와 잠깐 거들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퇴직 후에는 내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이제 같이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그래도 집은 내가 굴려야 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존중을 원하고, 아내는 안정이 먼저인 듯하다. 그래서 "몇 시에 올 거야?"는 아내에게는 불안을 줄이기 위한 확인인데, 내 귀에는 나를 점검하는 말처럼 들리는 것 같다. 같은 말이 서로에게 다르게 꽂히는 셈이다.

이런 갈등은 비단 우리 집만의 일은 아닌 듯싶다. TV 토크 프로그램에서 퇴직 부부가 서로 "잔소리"와 "서운함"을 주고받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남의 집도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퇴직 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대화가 늘기보다 부딪힐 구석이 늘어난다.

큰 갈등이 아니라 "몇 시", "이거", "왜 이렇게 해" 같은 생활 문장들이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싸움의 스위치가 된다. 밖에서는 '퇴직'이 끝난 일처럼 보이지만, 집 안에서는 그때부터 부부의 역할이 다시 정해지는 시간이 시작된다.

방법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말투를 조금만 바꾸면 다툴 확률이 내려간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몇 시에 올 거야?" 대신 "저녁을 몇 시쯤 먹고 싶다. 몇 시쯤 들어오면 내가 덜 조급하다"라고 말해주면, 나도 덜 속상할 것 같다. "이거-저거" 대신 "오늘 할 일을 몇 가지로 묶어서 말해주면 좋겠다" 그러면 지시가 아니라 부탁으로 들릴 것 같아서다.

물론 나도 고칠 게 많다. 특히 'FM'의 갑옷을 조금 내려놓고 유연성을 키워야 한다. 아내의 주문을 토 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성도 키워야 한다. 아내도 나도 '내 방식대로'만 고집하는 힘을 조금 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퇴직 후 부부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대화법이 아니라, 서로를 덜 긁는 말투와 덜 다치게 부탁하는 방식이다. 퇴직은 일을 내려놓는 일이 아니다. 부부가 하루 일상에서 서로의 자리를 지혜롭게 다시 맞추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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