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카르텔’ 저승사자 나희석 부장검사 “담합에 자비란 없다”

박재현,구자창,이서현 2026. 2. 26. 15:3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희석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인터뷰 진행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웅 기자


“‘공선생’(공정거래위원회를 칭하는 업계 은어)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연락을 자제하자.”

검찰의 밀가루 가격 담합 수사 과정에서 적발된 제분업체 관계자들의 대화 중 일부다. 이들은 공정위의 눈을 피하려다 예상치 못했던 검찰의 대대적 담합 수사에 덜미를 잡혔다. ‘빵플레이션(빵+인플레이션)’ ‘슈가플레이션’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배경에 기업들의 ‘짬짜미’가 있었던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검찰개혁을 추진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큰 성과를 냈다”며 이례적으로 검찰을 격려했다.

국민의 일상과 직결된 생필품 담합 수사를 진두지휘한 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를 이끄는 나희석(45·사법연수원 37기) 부장검사다. 나 부장검사는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물가교란 행위, 중소상공인에 대한 갑질 범죄, 외국기업의 국내 기업에 대한 약탈 성격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자비란 없다”며 “기업들은 시장경제 질서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부장검사는 광주과학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2005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육군 법무관을 거쳐 16년째 검찰에 몸담고 있다. 그는 법무부 검찰과, 법령제도개선 TF팀장 등 주요 기획부서를 역임했고,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 부장검사, 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부장을 거치며 경제범죄 수사의 베테랑으로 꼽힌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대적 담합수사에 나선 배경은.

“담합이 발생하면 그 피해는 연쇄적으로 확산되어 전 국민의 장바구니 물가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정부는 물가 불안정 문제를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강조했는데, 검찰은 이러한 기조를 이행하고 민생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재수 없게 걸린 것뿐”이라는 업계 관계자 발언이 공개됐다.

“담합을 통해 기업은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지만, 기업에 부과되는 과징금이나 형사처벌은 담합으로 벌어들인 이익보다 훨씬 적다. 한전 입찰 담합의 경우 1위 업체의 담합 규모는 1477억원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 전에 이루어진 공정위 행정처분 단계에서의 과징금은 7.5% 수준인 112억원만 부과됐고, 아무도 고발되지 않았다. 기업으로서는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과거 검찰 역시 개인에 대한 형사 처벌에 대해서 미온적인 부분이 있었다.”

나희석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윤웅 기자


-구체적으로 기업 간 담합 행위가 만연한 이유는 무엇인가.

“공정거래법상 법정형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으로 터무니없이 낮다. 민간인들끼리는 소액의 사기를 저질러도 10년의 징역형까지 부과가 가능하다. 주요국들이 개인에 대한 법정형을 상향시켜 온 이유는 그것이 담합을 뿌리뽑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법정형을 10년 이하로 두고 하한까지 함께 두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범죄 수익 환수 역시 법령상 요건이 까다로워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담합 등 경쟁질서 교란 행위에 유혹을 느끼는 기업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시장 경제 질서에 맞는 행동을 했으면 한다. 대규모 담합 범죄, 거대 기업의 갑질로 인한 소상공인의 피해, 외국 기업의 국내 기업에 대한 경제적 약탈 성격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 자비란 없다. 국정가치 구현을 위해서 이 세가지 행위에 대해서는 면밀하게 살펴볼 것이다. 이미 담합 범행을 저질렀다면 검찰의 자진 신고 제도를 적극 활용했으면 한다.”

-검찰의 자진 신고 제도가 공정위의 자진 신고 제도에 비해서 어떤 장점이 있나.

“첫번째로 기소 면제 효과와 구형 감경 효과가 있다. 두번째로 사건 해결의 속도다. 설탕·밀가루 사건처럼 검찰이 공정위보다 수사에 늦게 착수했지만, 더 빨리 사건을 종결짓는 경우가 많다. 기업 입장에서는 공정위의 행정조사나 검찰의 수사 모두 사법리스크인데, 최대한 빨리 털어내야 기업활동이 부당히 위축되는 일이 없다. 검찰에 자진 신고를 해야 기본적인 혜택을 부여받고 더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검찰 수사가 공정위 조사보다 선행돼야 하나.

“행정조사와 수사 중 반드시 어떤 것이 선행해야 된다고 접근할 필요는 없다. 담합 규모가 크고 다른 장바구니 물가에 연쇄적인 파급 효과를 주거나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 등은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검찰 수사가 먼저 진행되는 것이 효율적이다. 반면 파급효과가 작은 형태의 담합이라면 행정조사가 먼저 선행되는 것도 충분하다.”

-공정위 행정조사와 검찰 수사 간 간극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공정위는 행정처분과 과징금 등을 부과하는 데 주안점을 두다 보니 기업 내 은밀한 의사결정 과정을 복원하고 고위층의 개입을 규명하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검찰은 2015년 공정거래조사부를 창설한 이래 수십 년간 축적된 기업 수사 역량을 이 분야에 특화해왔다. 행정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치명적 범죄 사실들이 검찰 수사에서 밝혀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대통령이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언급했는데.

“기업 활동 위축 우려 등 긍정적인 취지로 도입된 전속고발권이 다소 취지에 어긋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24년 기준 공정위가 2496건의 사건을 처리했는데, 그중 고발에 이르는 사건은 30건밖에 안 된다. 심지어 기업들에게 수천억원 과징금이 부여됐음에도 형사 고발은 아예 이루어지지 않은 건도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 논의에 앞서 최소한 이런 부작용은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전속고발권의 부작용을 완화할 방법은.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은 사건은 검찰에서 어떤 사건인지 파악 자체가 안 된다.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사안임에도 고발되지 않는 사례가 실제로 있다. 이것을 막으려면 형사처벌 조항이 있는 공정거래 사건은 고발 여부와 무관하게 공정위의 ‘심사 보고서’와 관련 자료가 조사 대상 기업들에게 발송되는 시점엔 최소한 검찰에도 공유가 되어야 한다. 검찰이 심사 보고서를 통해 사안의 내용을 적시에 확인해야 고발요청권 행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사건 암장을 막을 수 있다.”

-공정위에 특별사법경찰과 범칙조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특사경이나 범칙 조사를 도입하면 현재 공정위의 행정조사 특성인 임의 조사 성격을 좀 더 정확하고 강력한 기능으로 바꿀 수 있다. 민간 쪽에서는 임의 조사 특성상 공정위가 혐의를 특정하지 않고 광범위한 자료를 확보한다는 불만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런 단점도 해소할 수 있다. 노골적인 경성 담합 범행에 대해 우선적으로 특사경이나 범칙 조사 도입을 검토하고, 이후 다른 유형의 공정거래 사건에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검찰은 수사권 폐지 국면에 놓였는데.

“공정거래 분야에서 검찰의 보완수사 기능이 사라진다면 치명적인 비효율이 발생할 것이다. 전문성이 없는 기관이 공정위 고발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리뷰하게 되면 사건 처리는 무한정 지연되고 공소시효 도과 사건이 속출할 것이다. 공정위가 공들여 조사한 사건을 비전문 기관의 판단으로 뒤엎는 구조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는 국가적인 수사 역량의 낭비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나희석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서민경제 교란사범 집중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정치권에서는 검찰의 보완수사에 부정적인데.

“과거 일부 정치적 사건에서 검찰권 행사가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을 통해 과감하게 개선하고 관련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공정거래 사건은 그동안 편향성 논란은 없었다. 오히려 형사 처벌이 미흡했고, 담합을 방치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공정거래 사건에 대해서는 국격에 맞는 전문적 대응 역량 차원을 유지하기 위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공정거래조사 이외에 검찰이 어떤 부분에서 역량이 있나.

“산업기술탈취, 금융, 조세 영역을 들 수 있다. 모두 정치적 논란과 무관하고 상당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다. 검찰이 잘못한 부분은 과감히 고쳐나가고, 잘해왔고 더 잘 해내야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채찍질을 해주셨으면 한다. 해당 분야에서 압도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검찰의 기능을 사장시키지 말고 잘 활용할 수 있는 균형감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향후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로서 계획은.

“물가 교란 사범에 대한 계속 수사는 물론, 국내 기업을 상대로 한 해외기업들의 범죄나, 스타트업이나 소상공인들의 경쟁력을 해치는 갑질 유형의 범죄도 엄단할 예정이다.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수 있는 수사 사례를 만들고 또 선순환의 사회적 효능감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박재현 구자창 이서현 기자 jhyu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