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날 배신했다... 월급 깎는데 동의한 그 사람, 어떻게 할까?
[이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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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합원들의 의견을 무시한 노조위원장 이미지 (AI 생성) |
| ⓒ 오마이뉴스 |
2단계는 회유와 설득입니다. "회사가 가뜩이나 경영 상황이 좋지 않은데 직원들 해달라는 거 다 해 주다 보면 회사 거덜 난다"라는 반응이 대표적입니다. 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하는 직원들과 소극적으로 동조하는 직원들을 갈라치기 하여 노조의 힘을 빼놓는 전략을 쓰기도 합니다.
3단계는 탄압입니다. 상대적으로 사장님이 다루기 쉬운 직원들을 상대로 노조 탈퇴를 강요합니다. 노조를 주도한 직원들에 대해서는 비공식적으로 업무 배제나 '갈굼'이 시작됩니다. 다행히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에 따르면 이와 같은 사용자의 행위는 부당노동행위로 처벌을 받습니다.
4단계에 와서야 사업주는 비로소 순응하고 타협합니다. 처음에는 월급 주는 직원인 노조위원장과 마주 앉아 동급으로 노사교섭을 하는 것에 분통이 터지다가도, 노조와 대립해 갈등해 봐야 쟁의행위 등으로 생산에 지장이 발생하고 회사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결국,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노동조건 개선의 요구에 억지로라도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단체교섭에서는 자연스레 회사의 노동환경의 문제점을 노사가 협의하고 개선하는 과정에 이르게 됩니다. 작게는 사업주의 직원에 대한 반말과 폭언이 줄어들고 크게는 불합리한 인사 관행에 제동이 걸리며 임금이 올라갑니다. 제대로 작동한다면 노동조합이 가져오는 직장의 민주주의 효과는 거대합니다.
직장 민주주의 지켜야 할 노동조합의 배신
그런데 직장의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노동조합이 민주적이지 못한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격합니다. 노동조합 대표자가 조합원 의사와 무관하게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협약을 사장님과 체결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최근 경영환경이 어렵다는 이유로 노조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조위원장이 상여금이나 식비 삭감 등 임금 감액에 일방적으로 합의하고 단체협약에 도장 찍는 일로 분쟁이 발생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조합원 다수가 반대하더라도 노조위원장이 독단적으로 회사와 합의한 단체협약은 효력이 인정될까요? 안타깝지만 효력이 인정됩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서는 노동조합의 대표자(위원장)에게 단체교섭권과 그 결과물로 단체협약 체결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조합원 다수가 반대하는데 이를 인정한다면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많습니다.
그래서 노조 대표자가 구성원 의사와 무관하게 단체협약 체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동조합 규약에 단체협약의 효력 발생 요건으로 조합원들의 인준 투표를 거치도록 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인준 투표 조항은 "노조 대표자의 노조법상 단체협약 체결권을 전면적이고 포괄적으로 제한하기에 무효"라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93년에 나온 판결입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노조의 단체협약 체결 효율성을 더 중요시했나 봅니다. 조합원들의 의견은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하나로 합치지 못한다고 노조 대표자가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없다면 노사 간 단체 교섭의 효율성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이해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인준 투표 조항은 구성원들의 요구를 교섭 대표자인 노조 대표자가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조합원의 노조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더욱이 지금은 국민 개개인의 가치와 의견이 소중한 K 민주주의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법원의 판단이 뒤집히기 전까지는 노조 대표자의 결정으로 조합원이 피해를 보더라도 그냥 참고 견딜 수밖에 없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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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노동조합원들 (본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
| ⓒ 연합뉴스 |
실제 노조법 제16조에도 단체협약에 관한 사항은 총회의 의결 사항으로 정하여 조합원들의 의사를 수렴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를 활용하면 노조 대표자가 단체 교섭 개시 전에 총회를 통해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해 교섭안을 마련하게 하거나, 단체 교섭 과정에서 조합원의 의견을 계속 수렴하게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다만 앞선 판례에 따라 인준 투표를 단체협약 효력발생의 전제로 하는 것은 효력 인정이 어렵습니다.
조합원 의견 수렴 절차를 노조 대표자가 무시했다면 불법행위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법원은 2018년 판례(대법 2016다205908)를 통해 노조 대표자가 노조 규약에 따른 총회의 단체협약에 대한 조합원 의견 수렴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고, 회사와 조합원에게 불리한 근로조건을 담은 단체협약을 체결해 효력이 발생하면, 이는 조합원의 단결권과 노동조합의 의사 형성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손해배상의 책임을 진다고 판결했습니다.
해당 판결 이후 조합원의 의견 수렴 없이 임금피크제 시행이나 상여금 삭감 등을 일방적으로 합의한 노조 대표자를 상대로, 조합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노조 규약으로 정해진 내부 의견 수렴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조합원의 중요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 등에 관하여 만연히(주의를 게을리하여) 사용자와 단체협약을 체결한 경우에 한정된다는 점입니다.
즉, 규약에 따라 총회 등을 통해 내부 의견 수렴을 거쳤고 전체적으로 보아 정년 연장 등 합리적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이 많다고 하여 무조건 임금피크제 시행이나 상여금 삭감에 대한 합의가 '주의를 게을리한' 불법행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럽다
이와 같은 상황의 변화로 단체 교섭의 체결 권한을 가진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이제 좀 더 조합원의 의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동안은 조합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경영 상황 등을 고려해 큰 틀에서 근로조건의 불이익에 합의하는 노사 단체협약을 노조 대표자의 '고독한 결정'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노동 현장에 있었습니다.
실제 노동 현장에서 상담하다 보면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조합원의 의견 수렴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젊은 조합원들은 기본급의 인상을 요구하고, 고령의 조합원들은 임금 인상을 양보하더라도 정년 연장의 합의를 요구하는데 노조 대표자가 이를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것에 힘겨워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사용자와 밀실에서 합의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조합원에게 통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러운 겁니다. 끝까지 합의점을 도출해 내고 민주적 의사에 기반해 차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 노조 대표자의 '고독한 결정'보다 더 나을 수 있음을 노동조합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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