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부담' 호소하면서 대법관 증원 반대하는 대법원의 속내

정연주 2026. 2. 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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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대법관 1명 담당 사건이 수천 건, 70%가 본안 심리 없이 기각돼... 증원과 구성 다양화는 시대적 요청

[정연주 기자]

 안대를 하지 않고 칼 대신 책을 든 '정의의 여신상'.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 자리잡고 있다.
ⓒ 이정민
1. 국민은 사법개혁을 원한다

사법개혁 법안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3법(재판소원·대법관 증원·법왜곡죄)'이 국회 본회에 부의되고 국민의힘과 대법원이 극렬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도 법원장들은 사법개혁이 충분한 숙의 없이 추진되고 있다며 심각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숙의 과정에 사법부의 의견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물론 사법부는 이해당사자로서 나름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고, 정치권이 이를 참고할 수는 있다. 그러나 헌법상 개혁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하는 것이다. 즉 사법부는 개혁의 객체이지 주체가 아니다. 사법부에게 개혁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꼴이다.

또한 사법부는 그럴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수십 년 동안 사법부는 정의의 목소리를 내야 할 때 대체로 침묵했다. 일련의 내란사태와 이어지는 헌정위기 속에서도 사실상 침묵했다. 이는 개혁 및 국민의 권익 보호, 정의 실현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기 충분하다.

사법부에 대한 극도의 국민적 불신이 사법개혁의 불을 당긴 것과 다름없다. 특히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시 이재명 대선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한 것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동안 사법부가 보인 문제점이 너무 크기에 사법개혁의 내용과 방향은 광범위하지만, 이 글에선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2. 대법관 증원의 절대적 필요성과 이에 반대하는 대법원의 궤변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법원조직법 개정안엔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증원되는 12명 중 4명은 법안 공포 뒤 2년 경과 후, 4명은 3년 경과 후, 4명은 4년 경과 후 순차적으로 늘리는 방식이다. 대법관 증원은 재판 지연을 해소하기 위한 것인데, 대법원은 대법관이 증원되면 인적·물적 자원이 대법원에 쏠리면서 오히려 하급심 부실화로 재판 지연을 부추길 수 있다면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하급심 판단의 기준이 되는 판례를 형성하거나 변경하는데, 대법관 수가 늘면 전원합의체 토론 기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일들로 국민들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법부 내부, 특히 대법원의 내부 구성과 심리 과정 등에 대해 알게 되면서 매우 놀랐을 것이다. 연간 수만 건에 달하는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됨에 따라 1명의 대법관이 1년에 담당하는 사건 수가 수천 건에 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대법원의 심리절차에 따르면 모든 사건은 일단 대법관의 업무를 보조하는 재판연구관에게 배정된다. 연구관이 사건을 검토하고 심리불속행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 보고서 표지에 '심리불속행'이라 표기해 주심 대법관에게 보고한다. 이후 이 사건의 처리는 검토 연구관의 의견대로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대법관들이 제대로 사건을 읽어보지도 못하는 구조란 이야기다. 2023년 대법원이 국회 법사위에 낸 자료 등에 따르면, 실제로 민사본안 상고심 사건의 약 70%, 행정본안과 특허본안 사건의 72% 이상이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을 통해 종결되고 있다.

따라서 개별 사건에 대한 충분한 심리와 판단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국민의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침해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에 따라 상고심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이는 결국 사법부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대법관 증원이다. 이를 통해 대법원이 사건을 보다 심도 있고 신속하게 심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대법관으로 진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대법원은 과도한 업무부담에 시달린다고 호소하면서도 수십 년 간 대법관의 증원을 결사반대해 왔다. 이는 대법원의 권위 수호와 전관예우에 대한 고려, 그리고 왜곡된 배타적 엘리트주의와 집단이기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우리 법체계인 대륙법계의 모국인 독일의 경우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사건 관할별로 5개의 전문법원으로 분할되어 있다. 민·형사 사건을 담당하는 연방통상법원, 연방행정법원, 연방재정법원, 연방노동법원, 연방사회법원이 그것이다. 대법관 수는 모두 약 320명 정도다. 마치 종합병원이 질병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개의 전문병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각각의 사건 종류에 따라 관할 전문법원이 하급법원부터 대법원까지 분할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효율적이고 신속한 심리가 가능한 충분한 대법관 수가 확보되어 있다.

역시 대륙법계의 대표적 국가인 프랑스의 경우 우리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법원으로 민·형사 사건을 관할하는 최고법원인 파기원과 행정사건을 관할하는 최고법원인 국사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파기원에만 약 200명의 법관이, 국사원에만 약 230명의 법관이 근무하고 있다. 모두 전문성과 대법관 수에 있어서 우리와 비교 자체가 안된다.

이러한 사실을 대법원은 언급하지 않는다. 설사 필자와 같은 학자들이 외국의 사례를 들어 대법관 증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더라도 외국은 우리와 법체계가 다르다는 지극히 간단하고 무책임한 답변으로 넘어간다. 조희대 대법원장처럼 말이다.

대법관 증원안에 대해 법원행정처장은 지난해 5월 국회 법사위에서 "재판 지연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법관 수만 증원한다면 오히려 모든 사건이 상고화돼 재판 확정이 더더욱 늦어질 것"이고, "결국 전원합의체가 사실상 마비돼 충실한 심리를 통한 권리구제 기능 또한 마비될 수밖에 없다"는 반대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그런데 전원합의체 자체가 대법원에서 자주 개최되는 것도 아니고, 전원합의체로 가는 사건 자체도 극소수다. 예컨대 2023년 전원합의체로 간 사건은 총 9건으로, 전체 상고사건의 0.02%에 불과했다. 따라서 거의 모든 사건을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해결하고 있는 현실에서 전원합의체 기능 마비를 대법관 증원의 반대 사유로 드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진다. 만일 문제가 되면 대법관 증원과 더불어 현재 4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의 각 부를 대폭 증원된 전문 관할별 부(예컨대 민사부, 형사부, 행정부, 조세부, 노동부, 특허부, 군사부 등)로 확대 개편해 부별로 전원합의체를 개최하면 된다.

다른 한편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수가 9인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사법시스템을 간과한 잘못된 견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미국은 연방국가이다 보니 민형사 사건 등 일반 사건은 대부분 주 차원에서, 그리고 하급심에서 해결된다. 아울러 미국에는 헌법재판소가 없다. 따라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사실상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 점에서 우리 대법원을 미국 연방대법원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결국 대법원의 업무과중을 해소하고 대법원의 최고법원으로서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대법관 수의 획기적 증원이 필수적이다. 장기적으로는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를 참고해 인구수에 비례한 대법관 수로 대폭 증원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26명으로의 증원은 대한민국의 인구 수와 위상 그리고 국가경쟁력 및 국민들의 효율적인 권리구제의 측면에서 턱없이 부족하다.

3. 대법관 구성이 다양해져야 한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사법부의 공정성과 중립성 및 독립성을 확보하고 국민과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도록 대법관 구성도 다양해져야 한다. 획일적 배경을 가진 소수 엘리트 출신 대법관만으로 구성된 현재의 대법원은 약자의 어려움 등 사회 정의와 다양한 사회 현실을 반영하기 어렵고, 국민의 상식과 법 감정에 상응하는 재판을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강한 정치적 편향성을 갖는 구조적 취약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급변하고 전문화되는 시대 현실을 따라갈 수 없다.

대법원의 구성이 특정 학벌과 출신 및 특정 직역과 성향에 치우치지 않도록 지역·성별·전공·경력 등의 다양성을 반영한 인선 기준을 제도화해서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관점을 반영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재판을 하는 사법부로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왜곡된 배타적 엘리트 의식과 자기들만의 편협한 세계에 갇힌 채 특정 정권이나 기득권층의 편에 서는 듯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사법부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이자 국민만을 위한 충복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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