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도 못 참는 '배드파파'... 양육비 미지급을 대하는 미국의 자세

김성호 2026. 2. 2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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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1281] 쇼타임 <덱스터> 시즌6

[김성호 평론가]

예술은 문화를 반영한다. 영화와 드라마 같은 대중예술이라면 더욱 그렇다. 서사와 주제의식, 때로는 단순한 소재며 짤막한 에피소드까지도 동시대 문화와 도덕, 집단지성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단일한 세계처럼 느껴지는 현대 국제사회 가운데서도 국가와 문화의 장벽은 굳건히 존재한다. 우리에겐 자연스러운 일이 다른 누구에겐 그렇지 않은 광경을 때로 때때로 마주하는 건 그래서다.

영화와 드라마 안에서 그 같은 차이를 발견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귀한 계기를 얻는다. 우리의 오늘은 당연한 것일까. 어쩌면 우리와 다른 표준이 존재할 수 있는 건 아닐까.

미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따금 마주하는 설정이 있다. 요즈음 즐겨보는 드라마 <덱스터> 여섯 번째 시즌 가운데서도 꼭 그와 같은 순간이 지나가, 나는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한국 작품에선 한 차례도 마주한 적 없는 양육비에 대한 이야기다.
▲ 덱스터 스틸컷
ⓒ 쇼타임
갈수록 고달파지는 연쇄살인마의 삶

<덱스터> 시즌6는 마이애미 경찰청 혈흔분석관이자 오직 범죄자만 처단하는 연쇄살인마 덱스터 모건(마이클 C. 홀 분)이 소위 '종말론 살인마(Doomsday Killer)'라 불리는 악당과 벌이는 맞대결을 다룬다. 지난 여러 시즌에서 그러했듯, 덱스터는 낮에는 경찰조직의 일원으로 일하면서 밤이면 살인자를 살인하기 위해 추적하는 이중적 삶을 살아간다. 경찰로부터 정보를 구하고 경찰보다 한발 앞서 범죄자를 낚아채려는 그의 수고로움이 웬만한 투잡 직장인의 삶보다 숨 가쁘고 고달프다.

앞선 시즌들에서 주인공 덱스터 모건의 삶은 중차대한 변화와 마주했다. 개과천선의 여지가 없는 사이코패스로, 유능한 형사였던 아버지 해리(제이스 레마 분)에 의해 정체를 감춘 채 오로지 살인자만을 상대로 욕구를 풀게 길러졌다. 변치 않을 것만 같던 그의 성격도, 또 철저한 행동수칙과 통제된 삶의 양식에 따라 자연스레 변화했다.

시리즈 중 명작으로 손꼽히는 네 번째 시즌의 상대는 삼위일체 살인마 아서 미첼(존 리스고 분)이다. 덱스터는 저와 같은 살인마이면서도 가정생활을 훌륭히 영위하는 듯한 아서를 일종의 롤모델로 삼으려 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는 답답한 상황에 부담을 느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좌절되고 덱스터는 아버지가 남긴 수칙을 어겨 아내 리타(줄리 벤즈 분)까지 잃는다. 이후 갓 태어난 아들을 홀로 책임지며 혈흔 분석가 일에다 살인까지 해야 하는 덱스터의 상황은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 덱스터 스틸컷
ⓒ 쇼타임
변화하는 캐릭터, 고뇌하는 주인공

덱스터는 시즌3에서 검사 미구엘 프라도(지미 스미츠 분)에게, 시즌4에선 아서에게 기대려 했다. 비밀을 지고 버거운 삶을 지탱할 수 없다는 걸 무의식적으로나마 느껴서다. 시즌6가 종말론 살인마라는 상대에게만 집중하는 대신, 저와 같이 살인충동에 잠식되는 이들에게 마음을 쓰는 덱스터의 심리적 갈등을 비추는 것도 그 때문일 테다. 시즌을 거듭하며 덱스터는 그저 냉혈한 살인마이기만 할 수는 없었다.

이 과정에서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한 인물이 있다. 전과자 출신인 샘(모스 데프 분)이다. 충동을 이기지 못해 처단할 살인마를 찾아 헤매던 덱스터의 눈앞에 나타난 그를 덱스터는 차기 목표물로 점찍는다. 사람을 잔혹하게 살인한 범죄자가 감옥에서 신앙을 얻은 뒤 개과천선했다는 걸 덱스터는 믿지 않는다. 샘은 출소 후 여러 전과자를 고용해 자동차 정비소를 꾸려가며 신앙을 전파하는데 덱스터는 그가 틀림없이 살인이나 다른 범죄를 끊지 못하고 있으리라 여긴다.

시즌6의 전반부는 주요 악당인 둠스데이 킬러가 전면에 드러나기 전, 기독교 신앙을 가진 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샘을 조사하면 할수록 그가 정말로 개과천선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덱스터다. 덱스터는 심지어 모든 사람에게 개과천선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샘의 태도에 감명받기까지 한다. 정말 모든 사람이 변할 수 있다면, 출발부터 다른 연쇄살인마인 저 자신에게도 다른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샘을 위협하는 이들이 있다. 인근에서 범죄조직을 운영하는 이들로, 샘이 자꾸만 조직원들을 빼가 갱생시키는 통에 범죄행각에 차질을 겪게 된 무리다.
▲ 덱스터 스틸컷
ⓒ 쇼타임
양육비 미지급을 대하는 남다른 태도

갈등은 폭력 사태로 비화된다. 일단의 무리가 샘을 찾아 실제적인 위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총을 겨누고 당장이라도 죽일 것처럼 위협하는 이들에게 비폭력적으로 대응하는 샘의 모습이 덱스터가 보기에도 위험하게 느껴질 정도다. 결국 덱스터가 남몰래 샘을 위한 행동에 나서니, 살인마가 선한 이를 구하려 악한 이를 처단하는 당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덱스터는 범죄조직을 이끄는 리오 에르난데스를 경찰청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조회해 그의 과거 범죄이력들을 확인한다. 리오에 대해 얻은 주요한 정보 가운데, 덱스터가 특별히 유의미하게 받아들이는 건 소위 강력범죄 이력이 아니다. '양육비 미지급', 범죄조직을 이끄는 범죄자의 여러 범죄이력 가운데서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고 버티다 체포된 기록이 덱스터에겐 상당히 의미 있는 자료가 된다.

비단 <덱스터>만은 아니다. 종종 할리우드 작품군에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사례가 주요하게 다뤄지는 경우를 마주한다. 능력이 있음에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무책임한 이들에게 미국 법은 단순한 민사채권의 효력이 발생하는 수준을 넘어 형사책임까지도 부여한다. 지불능력이 있음에도 지급하지 않는 경우 법원 명령 불이행에 따른 범죄로 다루는 주가 대부분이며, 특정된 액수와 기간이 초과할 경우 징역형이 가능한 연방범죄로 취급하기도 한다. 미국 드라마, 특히 형사물 가운데서 운전 중 단속에 걸렸다가 양육비 미지급 이력이 확인돼 즉각 수갑이 채워지는 사례가 등장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 덱스터 포스터
ⓒ 쇼타임
작은 설정 하나가 보여주는 큰 차이

<덱스터>에서 능력이 있음에도 양육비를 미지급한 사실로 리오 에르난데스의 성품을 미루어 짐작하는 설정은 한국과 다른 미국 법의 특수성이자 같은 문제를 다루는 두 사회의 온도차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의 드라마에서 양육비 미지급이 문제로 등장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만약 등장한대도 가벼운 문제 정도로 지나갈 확률이 높지는 않은가 싶다. 지난 2024년에야 한국에선 무려 10년 동안 능력이 있는 아버지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사례에 대하여 실형을 선고하는 첫 사례가 나와 화제가 된 바 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느껴지는 온도차, 그는 문제를 대하는 사회적 시선, 또 통념을 말한다. 작은 설정이 때로는 많은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강력범죄보다도 양육비 미지급에서 인간의 성품을 읽어내는 <덱스터> 시즌6 속 한 장면이 내게 남다르게 와 닿은 건 그래서다. 친부와 친모가 자식에 대해 지는 책임, 한국사회는 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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