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강제 소각에 재계 "경영권 방패 상실" 우려(종합)
KT&G 등 자사주 전량 소각 발표
재계 "R&D 투자 대신 단기 환원 치중"
전문가 "포이즌필 등 방어 수단 도입 필요"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의 소각을 의무화하는 이른바 '3차 상법 개정안'이 25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적절한 조치라는 평가와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맞서는 가운데, 재계는 향후 발생할 부작용을 최소화할 보완 입법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를 1년 이내에 소각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기존에 보유 중인 자사주는 1년 6개월의 유예기간 내에 처분하거나 없애야 한다. 다만, 임직원 보상이나 우리사주제도 실시,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및 합병 등의 경우나, 회사의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해 정관에 그 사유를 규정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보유 및 처분이 가능하다.

부작용 경고…"주가에 역풍 불 수도"
법안 통과 직후 주요 상장사를 중심으로 즉각적인 대응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KT&G는 이날 오후 이사회를 열고 발행주식총수의 9.5%에 해당하는 기존 보유 자사주 전량(1086만6189주)을 소각하기로 결의했다. 이는 상법 개정안 통과 이후 법안의 취지를 경영에 즉각 반영한 첫 주요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대기업은 이번 개정안 통과로 기업의 핵심 경영권 방어 수단 중 하나인 자사주 활용이 사실상 봉쇄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인적분할 과정에서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자사주 마법'이 불가능해지면서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 중인 기업들은 시나리오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한 업계 고위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은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른 최적의 경영 판단 영역이어야 하는데 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너무 물리적인 수단"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어 "필요에 따라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보유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방어 수단이 약해지는 것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인수합병(M&A) 등 미래 지향적인 경영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자사주는 백기사 역할뿐 아니라 필요할 때 시장에 매각해 인수합병 자금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경영 활동에 쓰인다"며 "소각이 의무화되면 연구개발(R&D) 투자나 신규 사업에 써야 할 자금이 일회성 밸류업인 소각에 강제로 투입돼 기업의 중장기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방어 수단 없이 규제만…"보완 입법 시급"
경제계는 주주환원이라는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기업 경영의 활력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의 세부적인 제도 보완을 주문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본부장은 "이번 개정이 주주가치 제고와 자본시장 선진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M&A 등의 과정에서 취득한 특정 목적 자사주 문제는 향후 추가 논의를 통해 보완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주주환원을 위해 기업 실적 확대가 긴요한 만큼, 국회는 경영활력 제고를 위한 규제 개선에도 속도를 내주기 바란다"며 "경제계도 주주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시장 신뢰 제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계에서도 이번 개정안이 가져올 부작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자사주 소각으로 주식수가 줄어 주가가 오를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자본 감소로 인한 부채비율 상승이 주가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 교수는 "우리나라는 IMF 체제 당시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경영권 방어 수단을 대부분 해제했다"며 "후속 입법이 논의될 경우 포이즌필이나 일본의 신주예약권 등 적절한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이 고려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사주가 기업들의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었던 만큼,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장기적 R&D 투자보다는 주주 관계 개선 등 단기적 이익 환원에만 치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이런 우려와 달리 이번 개정을 기업 체질 개선과 자본정책 재설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상장사들이 이번 개정을 '주주 중심주의'로의 구조적 전환점으로 인식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율촌 기업지배구조센터는 "기보유 자기주식을 활용 목적별로 분류해 소각·처분·보유의 최적 로드맵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특히 경영상 목적의 보유가 필요한 경우,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을 통해 예외 사유를 선제적으로 반영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배당정책과 성장투자 계획을 포함한 종합적인 자본배분 정책을 수립하고 시장과 소통함으로써 기업가치 제고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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