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방치된 장비 건드렸다가 사망... 한국도 위험하다

최경숙 2026. 2. 26. 07:1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후의 시간] 반복되는 분실 사고와 한국 방사선 안전관리의 한계

[최경숙 기자]

지난 2월, 경기 화성시의 한 병원에서 치료용 선형가속기를 해체하는 과정 중 방사성폐기물 일부가 분실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20일 조사에 착수했고, 분실된 물질의 표면선량률이 시간당 0.2~0.9μSv 수준으로 자연방사선과 큰 차이가 없어 영향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발표만 보면 안심해도 될 사건처럼 보인다. 실제로 수치만 놓고 보면 급성 건강 피해를 우려할 상황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고를 단순히 '저선량 물질의 관리 실수'로 치부한다면, 우리는 더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왜 방사성 물질은 반복적으로 관리망 밖으로 사라지는가. 그리고 왜 그때마다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이 되풀이되는가.

이번 사건은 우연한 일탈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의료기관, 연구시설, 산업체, 원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되풀이되어 온 방사성 물질 관리 실패의 연장선에 있다. 문제의 본질은 방사선량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방사성 물질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회적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사선이나 방사성 물질 관련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와 규제기관의 논리는 비슷하다. "선량이 낮아 안전하다", "기준치 이하라 문제 없다"는 설명이다. 과학적 수치로 보면 일정 부분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방사선 안전관리의 핵심은 단순한 피폭량 평가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방사성 물질이 관리 체계 안에 있는가, 즉 통제 가능성이 유지되고 있는가이다.

방사성 물질은 한 번 관리망을 벗어나면 추적이 매우 어렵다. 특히 의료기관처럼 방사선이 주된 업무가 아닌 조직에서는 장비의 사용 단계보다 폐기·해체 단계에서 관리 공백이 발생하기 쉽다. 사용 중에는 규제가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작동하지만, 장비 수명이 끝난 뒤 해체와 폐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책임 주체가 분산되고 긴장감이 느슨해진다. 외주 인력이 투입되거나 규정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방사성 부품이 일반 고철처럼 취급되는 순간, 사고 가능성은 급격히 커진다.

이번 화성 병원 사례가 바로 그런 유형이다. 장비가 작동하는 동안이 아니라 폐기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국내외 사례를 보더라도 방사성 물질 사고의 상당수는 이 단계에서 벌어진다. 관리의 사각지대가 구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복되어 온 대형 관리 실패
 2020년 10월 30일 '대한민국 방방곡곡 가져가라 핵폐기물 캠페인단'이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앞에서 대전지역 환경·탈핵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보관 핵폐기물 조기 이송과 원자력시설 법·제도개선,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 해체' 등을 촉구하며 '다잉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화성 병원의 방사성 폐기물 분실 사고는 결코 개별적인 사건으로 볼 수 없다. 과거 사례들이 이미 분명한 경고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의 방사성폐기물 분실 사건이다. 연구원은 무려 71.8톤에 달하는 방사성폐기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자력 이용시설 해체 과정에서 해체 폐기물 관리가 부실하게 이루어지면서 납 폐기물과 금 등 금속류, 토양, 콘크리트 등 다양한 원전 폐기물이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유실된 것이다.

당시에도 당국은 연간 피폭선량이 기준치 이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가 최고 수준의 원자력 연구기관에서 수십 톤 규모의 폐기물이 관리망을 벗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었다. 이는 단순한 현장 실수가 아니라 이력관리 체계, 추적 시스템, 감독 구조 전반에 구조적 결함이 존재한다는 신호였다.

원자력발전소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2025년 원안위가 실시한 특별점검에서는 원전 내 방사선관리구역에서 사용된 수천 개 물품이 승인 절차 없이 처분된 사실이 확인됐다. '자체처분' 제도가 사실상 관리 소홀의 통로로 작동한 것이다. 절차를 지키지 않은 처분이 반복된다는 것은, 언젠가 고위험 물질 역시 같은 경로를 통해 외부로 흘러 나갈 수 있음을 뜻한다.

자체처분 제도는 방사능 농도가 기준 이하인 경우 일반폐기물처럼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취지 자체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저선량이니 괜찮다"는 인식을 강화해 관리의 긴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기준값 자체보다 절차의 신뢰성이다. 실제 점검 과정에서는 농도 확인이나 승인 절차 없이 물품이 처리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당국은 대부분 기준 이내였다고 설명하지만, 절차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그 판단을 검증할 방법도 함께 사라진다. 기준을 초과한 물질이 섞여 있었다면 누가, 어떤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까. 안전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절차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안전 기준 역시 의미를 잃는다.

드러나지 않는 사고
 2012~2023년 7월 방사선원 관련 사고 발생 현황
ⓒ 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공개되지 않는 사고들이다. 최근 10여 년간 발생한 방사선원 분실 사고는 160건이 넘지만, 실제로 회수된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기업과 대학, 공공기관을 가리지 않고 발생한 사고 중 상당수는 '경미하다'는 이유로 대중에게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사례에서는 근거리에서 측정 시 시간당 100μSv를 넘는 수준도 보고된 바 있다. 이는 장시간 노출 시 일반인 연간 피폭 한도를 초과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런 물질이 일반폐기물이나 고철 유통망에 섞여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고가 공개되지 않으면 사회는 학습할 기회를 잃는다. 규제기관 내부의 관리 문제는 반복되고, 시민들은 전체 위험 규모를 파악할 수 없다. 정보 비공개는 결국 안전 문화의 약화를 뜻한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방사성 물질이 고철 유통망으로 유입되는 경우다. 실제로 국내 제철소에서는 고철 반입 과정에서 방사선 감지기 경보가 반복적으로 발생해 왔다. 의료·산업용 장비 해체 과정에서 방사성 부품이 일반 금속과 섞여 들어가는 사례도 꾸준히 보고된다.

이 단계가 위험한 이유는 발견 시점이 너무 늦다는 데 있다. 감지기를 통과해 용해로에 투입된다면 방사성 물질은 공장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 지금까지 대형 사고가 없었던 이유는 체계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 단계에서 우연히 걸러졌기 때문일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1987년 브라질 고이아니아 사고는 이 위험이 결코 가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폐쇄된 병원에 방치된 세슘-137 치료 장비를 고철 수집상이 분해하면서 방사성 물질이 확산했고 수백 명이 피폭되어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사고의 출발점은 단순했다. 관리 책임의 공백, 장비 방치, 그리고 방사성 물질에 대한 무지였다. 오늘날 한국에서 반복되는 소규모 사고들과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작은 관리 실패가 누적될 때, 대형 재난은 어느 날 현실이 된다.

앞서 살핀 사례들을 종합하면 공통된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첫째, 방사선 이용 기관은 빠르게 늘었지만 관리 역량은 균등하지 않다. 특히 의료기관과 중소 사업장은 전문 인력과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둘째, '저선량' 중심의 설명이 문제의식을 약화시킨다. 위험이 낮다는 메시지는 관리 실패에 대한 경각심까지 낮추는 효과를 낳는다. 셋째, 사고 정보 공개가 제한적이다. 공개되지 않는 사고는 사회적 학습과 감시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넷째, 폐기·해체 단계에 대한 감독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사용 단계보다 규제의 관심이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묻지 않을 수 없다. 생활방사선을 포함해 방사성 물질 전반의 안전 규제를 담당하는 원안위는 과연 이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기준치 이내", "영향 미미"라는 설명이 반복되지만, 그 말이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규제의 한계를 드러낸다. 관리 실패가 계속되는 현실에서 "안전하다"는 결론만 되풀이하는 규제는 신뢰를 축적하기보다 소진시킨다.

반복되는 사고를 끊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 첫째, 방사성 물질의 전 생애주기 이력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구매부터 사용, 보관, 해체, 최종 폐기까지 실시간 추적 가능한 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자체처분 제도에 대한 독립적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 기준치 이하라는 결과만이 아니라 절차 준수 여부를 핵심 평가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셋째, 사고 정보 공개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 '경미한 사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규제기관이 아니라 정보를 제공받은 시민이어야 한다. 넷째, 현장 인력에 대한 실무 교육과 감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특히 의료기관과 중소 사업장에 대한 맞춤형 기술 지원과 책임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

방사선 사고는 대형 원전 사고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자주 발생하는 것은 작은 관리 실패들이다. 그리고 그 실패가 반복될수록 사회 전체의 안전망은 조금씩 약해진다. 이번 화성 병원 사건은 "저선량이라 안전하다"는 말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방사성 물질이 관리망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이며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운 좋게 큰 사고를 피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안전은 운에 기대어 유지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도감이 아니라 질문이다. 왜 또 관리망이 뚫렸는가.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가. 그리고 무엇을 바꿔야 다음 사고를 막을 수 있는가. 안전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다. 원칙과 시스템, 그리고 책임의 문제다. 이제는 "이번에도 괜찮다"는 말 대신 "다음에는 반복되지 않도록 무엇을 바꿀 것인가", 특히 "규제기관인 원안위는 무엇을 책임질 것인가"를 묻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