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강원도 영월… 청령포·장릉… 비운의 왕 ‘단종 오빠’의 恨

남호철 2026. 2. 26.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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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여행]
강봉된 노산군 유배지 청령포
‘너구리도 환장·졸도하는 오지 섬’
단종 시신 안장된 동을지산 장릉
조선시대 단종의 유배를 소재로 웃음과 감동을 담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배경인 강원도 영월을 찾는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 단종이 묻힌 장릉.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흥행을 이어가면서 배경이 된 강원도 영월이 여행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조선 단종의 유배라는 소재, 웃음과 감동을 잡은 이야기 등이 흥행 배경으로 꼽히는 가운데 유배지였던 청령포와 어린 단종이 묻힌 장릉 등을 찾는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

장항준 감독이 연출한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 6대 임금 단종이 폐위된 뒤 유배 간 영월에서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인생 마지막 시기를 보내는 이야기를 그렸다. 지난 4일 개봉한 이후 20일 만에 누적 관객 수 600만명을 돌파했다. ‘단종 오빠’ 신드롬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단종은 1441년(세종 23년) 문종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452년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39세의 젊은 나이로 붕어하자 12세에 소년 임금으로 즉위했다. 이후 1453년 수양대군(세조)과 한명회 등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1455년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명목뿐인 상왕으로 물러났다. 1456년 성삼문·박팽년 등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돼 모두 처형되자 이듬해 노산군으로 강봉돼 영월 청령포로 유배됐다.

유배됐던 청령포.


청령포는 서강으로 삼면이 둘러싸여 있고 한쪽 면은 육육봉의 험준한 암벽으로 막혀 있어 배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오갈 수 없는 ‘육지 속의 외딴섬’이나 마찬가지였다. 영화 속에서 청령포는 ‘너구리도 환장해 졸도하는 오지의 섬’으로 묘사된다.

청령포 입구 주차장에 한 쌍의 남녀가 손을 맞대고 선 동상이 있다. 단종과 그의 왕비 정순왕후(1440~1521)를 표현한 작품이다. 안내판에는 이들이 천상에서의 재회를 통해 못다 한 사랑을 이루고 영면에 들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동상을 세웠다고 적혀 있다.

배를 타고 청령포로 들어서면 빽빽한 금강소나무 숲속에 유배 당시 거처인 단종어소가 복원돼 있다. 본채인 기와집과 시종들이 사용하던 초가집을 갖추고 있다. 담장 밖에서 어소를 향해 엎드리다시피 길게 뻗은 소나무는 단종을 향해 고개 숙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울창한 송림 사이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수령 600여년의 관음송(觀音松)이 우뚝하다. 단종의 슬픈 모습을 지켜보고(觀), 단종의 오열하는 울음소리를 들었다(音)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 약 30m, 가슴높이 둘레 약 5m의 크기로 1.6m쯤 되는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위로, 하나는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 한양에 남겨진 부인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은 돌탑인 망향탑, 단종의 유배지임을 알리기 위해 세운 단종유지비각, 일반 백성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1726년(영조 2년)에 세운 금표비 등이 있다.

유배 두 달 만에 청령포가 범람해 물에 잠기자 단종은 영월 관아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옮겨 갔다. 관풍헌은 1392년(태조 1년)에 세워진 영월 객사의 동헌 건물로 동쪽 옆에는 작은 2층 누각이 서 있다. 단종이 이 누각에 올라 밤이면 피를 토하듯 애처롭게 운다는 소쩍새(자규)의 한을 담은 시를 읊은 뒤 매죽루에서 자규루로 이름이 바뀌었다.

같은 해 경상도 영주 순흥에 유배됐던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을 중심으로 한 복위 음모가 발각되면서 금성대군은 처형되고 단종은 노산군에서 서인(평민)으로 강등된 뒤 한 달 만에 사약을 받고 17세로 생을 마감했다.

후환이 두려워 누구도 나서지 않을 때 영월의 호장(향리직의 우두머리)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동을지산에 묻었다. 영화에서 엄흥도(유해진 분)는 유배지를 운영해 마을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겠다는 욕심에 관헌에 나가 “육지 안의 섬 청령포는 여름엔 끈적한 습기가 가득하고 겨울엔 강가의 냉기가 올라오는 최적의 유배지”라고 설명한다.

오랫동안 위치조차 알 수 없던 묘를 1541년(중종 36년) 영월군수 낙촌 박충원이 찾아내 정비했다. 1681년(숙종 7년) 단종은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년) 단종으로 복위됐다. 능호는 장릉(莊陵)으로 정해졌다.

장릉은 다른 왕릉과 달리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향로와 어로가 일직선이 아니라 중간 지점에서 직각으로 꺾였다. 평지에서 능까지의 경사는 가파르다. 능묘가 보이기 시작하면 주위를 둘러싼 울창한 소나무들이 능을 향해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 애틋하다. 봉분 주위에 석호(石虎)와 석양(石羊)이 한 쌍씩 세워져 있고, 능 양쪽에는 망주석과 문인석, 석마(石馬)가 서 있다. 난간석과 병풍석을 두르지 않았고 무인석도 없다. 능 입구 단종역사관에서 단종의 탄생부터 유배, 죽음과 복권에 이르기까지 단종과 관련된 자료를 볼 수 있다.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신하 268명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이 있는 것도 장릉만의 특징이다. 단종의 시신을 거둔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정려각도 있다.

영월=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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