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시장 흔드는 ‘소버 큐리어스’…술잔 엎은 MZ세대 [스페셜 리포트]
# 홍대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요즘 주류 매출이 급감해서 울상이다. 당초 매출의 절반 가까이 주류 매출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상은 목표 매출의 3분의 1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유통기한이 짧은 생맥주는 재고를 감당 못해 단종하고 병맥주만 팔고 있다. A씨는 “메뉴를 소개하며 어떤 술과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다고 설명해도 술을 별로 주문하지 않는다. 술이 생각나도록 안주 요리의 간을 더 세게 레시피를 조정했는데도 안주만 맛있다고 먹더라”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술을 안 마시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잠깐용어 참조)’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자기 관리와 건강을 중시하는 웰니스(wellness) 문화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주류 소비 감소로 인해 관련 업계가 직격탄을 맞는 가운데, 논알코올 음료 개발, 안주 대신 반주(飯酒) 등 생존 전략 찾기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20~30대 주점 소비 15~21%↓
소버 큐리어스 현상은 숫자로 증명된다. 국세청이 발표한 ‘2025년 12월 100대 생활업종 통계’에 따르면 간이 주점 사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0.4% 감소했다. 호프 주점은 9.5%, 기타 음식점도 5.2% 줄었다. 주류를 취급하는 외식업 현장의 프랜차이즈 대표, 다점포 점주를 대상으로 매경이코노미가 설문한 결과는 더욱 심각하다. 11명 중 8명이 ‘주류 매출이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이 중 3명은 30% 이상, 1명은 50% 이상 주류 매출이 급감했다고 밝혔다.
주요 변인은 MZ세대의 주류 기피 문화가 지목된다. NH농협은행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20대의 주점 소비 금액은 전년 대비 20.9% 급감했다. 30대 역시 15.5% 감소했다. 고깃집, 샤브샤브 등 다점포와 함께 자영업자 2000여명이 활동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이호영 자연샤브 대표는 “2030세대 고객들의 주류 주문 건수 자체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전체 매출에서 주류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는 넘었는데 지금은 5%도 채 되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방 산업인 골목상권의 타격은 후방 산업인 주류 제조 업계에도 직격탄이 됐다.
롯데칠성음료의 지난해 4분기 주류 사업은 매출 1773억원으로 7.8% 감소하고 영업손실 28억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통상 4분기는 송년회 등 각종 연말 모임이 몰리는 대목이어서 적자는 이례적이다. 최근 음주를 기피하는 ‘절주(節酒)’ 문화가 확산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주종별로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같은 기간 소주 매출은 857억원으로 4.3% 감소했다. 맥주와 스피리츠는 31.1%, 32.7% 급감했다. 와인 10.8%, 청주도 1.1% 줄었다. 유일하게 성장한 품목은 캔 하이볼 등 RTD(즉석음용) 제품이다. 매출이 41억원에서 49억원으로 20% 늘었다.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저도주 위주로 선방했지만, 전반적인 매출 감소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흐름 탓에 롯데칠성음료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7527억원, 282억원으로 전년 대비 7.5%, 18.7% 감소했다. 하이트진로도 비슷하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이 3.9%, 17.3% 감소한 2조4986억원, 1721억원을 기록했다. 주류 업체들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동시에 흔들리는 모습이다.

음주는 유흥 아닌, 관리의 대상
기성 세대에겐 ‘피보다 귀하다’던 술, MZ세대가 기피하는 이유는 뭘까. 건강, 시간, 집중력, 감정 관리까지 포괄하는 ‘웰니스’ 문화 확산이 원인으로 꼽힌다.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에 건강과 신체는 유일하게 통제 가능한 자산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며 음주가 유흥의 대상에서 ‘관리의 대상’이 됐다는 것.
전미영 트렌드코리아컴퍼니 대표는 “소버 큐리어스 현상은 건강에 대한 인식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인공지능(AI) 확산과 산업 구조 재편으로 앞으로 어떤 직업이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준비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고 평가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도 비슷한 생각이다. “과거에는 술을 잘 마시는 것이 사회적 여유의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태도가 더 높은 가치를 갖는다.”
소버 큐리어스가 자기 주도적 삶을 추구하는 MZ세대 특성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회식 자리에서 상사의 요청이나 친구의 권유도 스스로 판단해 거절할 수 있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거절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조직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저출생과 코로나19 팬데믹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2000년대 초반까지 연간 50만명 안팎이던 신생아 수는 2000년대 중반 들어 40만명 안팎으로 20%가량 감소했다. 이도원 로지컬F&B 대표는 “이때 태어난 세대가 성인이 되자 매년 10만여명의 새로운 주류 소비층이 이전보다 사라졌다”고 짚었다. 여기에 3년간 이어진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들이 ‘술 없는 사회’를 경험하고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특히, 대학교 신입생 때 동아리 활동을 하며 술을 처음 접하는 문화가 끊기며 주류 시장의 새로운 고객층 수십만명의 진입이 가로막혔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회식 문화가 약해지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음주가 사라지고 있다. 노래방이나 2차, 3차로 이어지는 회식이 감소하며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도수 낮추고 논알코올 음료 개발
술 안 마시는 신인류의 등장에 주류 관련 업계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제조사들은 제품 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 과거에는 알코올 도수가 높고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인기 제품이 주력이었다. 요즘은 부드러움과 저당, 저도주를 강조한다. 특히 2000년대 초만 해도 25도를 넘나들었던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16도 이하가 ‘뉴노멀’이 됐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7월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를 16.5도에서 16도로 낮춘 데 이어, 최근 제로 슈거 소주 ‘새로’도 16도에서 15.7도로 조정했다. 하이트진로 역시 2024년 ‘참이슬 후레쉬’를 16도까지 낮췄다.
맥주 시장도 변신 중이다. 무알코올과 비알코올 제품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하이트제로 0.00’과 ‘하이트 논알콜릭 0.7%’를 판매 중이다. 롯데칠성음료는 ‘클라우드 논알콜릭’을 내놨다. 오비맥주는 카스 0.0, 호가든 제로, 버드와이저 제로 등 6종을 운영한다. 음식점용 ‘카스 0.0’과 ‘카스 레몬 스퀴즈 0.0’은 판매 점포만 5만5000여곳에 달한다. 1년 전보다 70% 이상 증가한 수치다.
국내 주류 매출이 침체되자 기업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는 모양새다. 하이트진로는 베트남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롯데칠성음료 주류 부문도 지난해 수출 매출 80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3.4% 성장한 수치다. 사업 다각화도 시도한다. 2024년 10월 계열사인 하이트진로음료와 진로소주는 신기술사업투자조합 ‘티피-에스비피 뷰티 제1호’ 지분 95.2%를 함께 인수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하이트진로그룹 총수 일가 회사인 서영이앤티가 화장품 제조 전문기업(ODM) 비앤비코리아를 인수했다. 업계는 하이트진로가 ‘더 이상 술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평가한다.
소버 큐리어스에 맞춘 새로운 공간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서울 연남동의 아티스트보틀클럽은 ‘논알코올 편집숍’이다. 전 세계 70~80종의 논알코올 맥주와 와인, 칵테일을 판매한다. 충무로에 위치한 논알코올 칵테일 바 ‘마심’도 눈에 띈다. 먼데이 진 토닉, 정산소종 밀크셰이크 등 총 7종의 논알코올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소버 큐리어스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에서도 주류 기업들이 논알코올 시장을 적극 탐색하는 모습이다. 시장조사기관 IWSR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글로벌 무알코올 및 저알코올 시장 규모는 130억달러(약 17조5000억원)를 넘어섰다. 특히 미국 내 ‘제로 알코올’ 스피릿(증류주) 시장은 최근 1년간 매출이 전년 대비 27.2% 급증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단순히 마트 진열대만 바뀐 것이 아니다. 오프라인에서도 술을 팔지 않는 바인 ‘소버 스페이스(Sober Space)’가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뉴욕의 ‘헤카테(Hekate)’, 오스틴의 ‘산스 바(Sans Bar)’ 등 논알코올 전문 바들은 예약 전쟁을 치를 정도로 인기다. 이들은 기존 바와 동일한 수준의 인테리어와 분위기를 제공하되, 잔당 15~20달러에 달하는 고부가가치 논알코올 칵테일을 판매하며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주요 도시 펍의 50% 이상이 논알코올 전용 메뉴판을 별도로 비치할 만큼 대중화됐다.
글로벌 주류 대기업들도 ‘비(非)주류’ 시장에 명운을 걸고 있다. 하이네켄은 전체 R&D 예산의 상당 부분을 논알코올 라인업인 ‘하이네켄 0.0’에 투입하고 있다. 디아지오(Diageo)는 ‘기네스 0.0’ 생산시설 확충을 위해 약 2500만유로(360억원)를 투자했다. 건강을 중시하는 젊은 층을 잡지 못하면 미래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전략적 판단에서다.
전문가들은 소버 큐리어스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시대적 대세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철주 장사만세 대표는 “술을 적게 마시고 일찍 귀가하는 트렌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비싸더라도 브랜딩이 확실하고 음식 품질이 높은 매장에 수요가 집중될 것이다. 빨리 먹고 빨리 귀가하는 대신, 짧은 시간 동안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자 하는 마음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술을 식사와 함께 가볍게 곁들이는 반주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가맹점 20여개를 운영 중인 임성식 부대옥 대표는 “매출을 분석해보면 저녁 회식이 줄고 점심 회식이 늘었다. 점심에 가볍게 반주를 즐기는 회식 문화가 자리 잡은 것 같다. 술을 팔기 위해 본격적인 안주 메뉴를 개발하기보다, 술과 식사를 한 번에 해결하는 반주 콘셉트의 매장이 생존에 유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술 마시면 다음 날 컨디션 난조 “숙취 대신 성취”
패널들은 “ ‘마실 사람만 마신다’는 분위기를 체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지윤 패널은 “인턴 시절 회식이 잦았지만 술을 강요받은 적은 없다. 사수가 마시고 싶으면 마시라고 배려해줘 술 없이도 자리를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은샘 패널은 “대학 MT나 동아리 회식에서도 사전에 술을 못 마신다고 말하면 모두 존중해준다. 친한 친구들과는 방탈출 카페나 보드게임 카페 등 다른 활동을 더 선호한다”고 들려줬다.
술 없는 모임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윤성재 패널은 “술 없는 모임을 해보니 대화가 또렷하게 기억에 남고 다음 날 피로가 없어 좋았다”고 말했다. 물론 이견도 있다. 백종호 패널은 “음주는 인간관계의 긴장을 완화하는 기능이 있다. 소버 큐리어스 현상은 한정적일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술을 멀리하는 주된 이유로는 건강과 자기관리를 꼽았다. ‘저속노화’ ‘오운완’ 등 건강 트렌드가 확산하며 음주가 컨디션을 해치는 요소로 인식된다는 것. 서민주 패널은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자기관리에 집중하는 청년들에게 술은 다음 날 컨디션에 영향을 준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전했다. 비싼 술값이 부담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제기됐다. 윤시영 패널은 “외식 물가 상승으로 술값 부담이 커졌고, 의미 없는 술자리에 대한 회의감도 있다”고 말했다.
“저녁 8시면 손님 뚝…반주·슬러시 냉장고가 열쇠”

A. 식당에서 주류는 전체 메뉴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는 핵심 품목이어서 타격이 크다. 특히 소주와 맥주는 대중성이 높고 회전율이 높아, 수익성 확보에 효자 노릇을 한다. 고기나 음식과 달리 보관이 용이하고 손질과 조리가 필요 없어 인건비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주류 매출의 감소는 외식업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주류 매출 감소는 영업시간도 단축시킨다. 고깃집 대부분은 저녁 8시만 넘으면 손님이 뚝 끊겨 주력 메뉴 매출의 동반 하락을 야기한다.
한국의 주류 소비 억제 현상은 일본보다도 심각해 보인다. 일본 야키니쿠 식당은 많은 손님이 음식 주문 전 맥주나 하이볼을 기본적으로 주문한다. 문화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한국 맥주와 일본 맥주의 맛 차이도 일부 작용하는 것 같다.
주류 매출 하락은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현상을 근원적으로 극복하기란 사실 어렵다. 점심 영업을 더욱 활성화하고 일부 매장은 배달, 포장 판매를 늘리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주류 판매 전략을 찾아야 한다.
Q. 자영업자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다. 생존 전략을 조언해달라.
A. 분당의 한 작은 식당은 건강식인 두부(순두부)가 주메뉴인데도 주류 매출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술안주에 적합한 보쌈을 구비한 데다 주류를 별도 진열대에 배치해 주류 소비를 촉진하는 전략이 주효했다. 덕분에 중장년층 남성 고객이 반주 또는 가벼운 술자리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강남의 한 식당은 콘셉트가 ‘밥집&주점’이다. 점심 반주와 저녁 술 판매 등으로 현재 주류 매출이 15%인데 20%까지 견인하는 것이 목표다. 식당 입구에 프리미엄 막걸리 쇼케이스를 눈에 띄게 전면 배치했다. 식당 벽면에는 대형 디스플레이로 홍보 영상을 압도적으로 보여준다. 30여종의 막걸리와 고도주를 잘 보이는 공간에 배치했다. 주류와 어울리는 안주 메뉴 개발, 주류에 대한 직원들의 기본 지식 교육도 효과를 보고 있다.
인천의 한 고깃집은 ‘복합형 주점’이기도 하다. C급 상권에 위치했음에도 주류 매출 비중이 20%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비결은 테이블 사이사이에 배치된 테이블 높이의 주류 냉장고 역할이 크다. 냉동실 온도에 가까워 슬러시처럼 차갑고 시원한 맥주가 입맛을 돋운다. 음식을 주문하기도 전에 주류 냉장고에서 맥주를 셀프로 꺼내 마시는 손님도 있다. 주류 판매를 활성화하려면 이처럼 유기적이고 복합적인 식당 콘셉트와 더불어 젊은 감각의 ‘메뉴 기획력’이 중요하다.
[노승욱 기자 noh.seungwook2@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8호(2026.02.25~03.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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