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군인의 양심, 3성 장군의 몰락

박소희 2026. 2. 2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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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2024년 12월 3일 밤, 유일하게 계엄군 투입 현장에 출동한 지휘관이다.

출동 상황 파악이 어렵고, 현장 자체도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이 전 사령관은 이들과 함께 여의도진지로 이동했고, 차 안에서 대기했다.

오 대위는 2024년 12월 18일 군 검찰에서 처음 조사를 받을 때는 대통령과 사령관의 통화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계엄 당일에서야 선포 계획을 알았다'던 이 전 사령관의 주장은 사실상 배척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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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내란 1심 판결 분석③] 그날 같은 차량을 탔던 이진우와 부하들의 엇갈린 운명

[박소희 기자]

▲ 발언대에 선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2025년 2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국조특위)' 3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2024년 12월 3일 밤, 유일하게 계엄군 투입 현장에 출동한 지휘관이다. 혼자는 아니었다. 그의 옆에는 부관 오상배 대위, 그리고 차량을 운전하는 이민수 중사가 함께했다. 세 사람은 그날 오후 11시경 이 중사가 운전하는 카니발을 타고 수방사에서 출발하여 11시 30분쯤 국회 인근에 도착했다. 출동 상황 파악이 어렵고, 현장 자체도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이 전 사령관은 이들과 함께 여의도진지로 이동했고, 차 안에서 대기했다.
"이진우는 여의도진지로 이동하고 있던 2024. 12. 4. 00:32, 00:34, 00:36경 세 차례에 걸쳐 피고인 윤석열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는데, 피고인 윤석열은 이진우에게 '아직도 못 들어갔어?'라고 물었고 이에 이진우가 '국회의사당 본관 앞까지는 병력이 갔는데 그 앞에서 더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라는 취지로 보고하자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서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고 해', '야, 4명이 1명씩 데리고 나올 수 있지 않냐'라고 지시하였다."(판결문 604쪽)

"피고인 윤석열은 01:06경 통화에서 이진우에게 '아직도 못 갔냐?, 뭐하고 있냐?'라는 취지로 말하였고, 이에 이진우는 '지금 본회의장 앞까지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에 접근을 못 합니다. 문을 부수기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라는 취지로 말하였다. 이에 피고인 윤석열은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라는 취지로 이야기한 후 '어? 어?'라며 확인하였는데, 이에 이진우는 '예'라고 대답하였다.

피고인 윤석열은 01:13:24경 통화에서 이진우에게 '지금 190명이 들어와서 의결을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190명이 있는지는 확인도 안 되는 것이니까 계속해라'라는 취지로 국회의원들을 본회의장에서 끌어낼 것을 지시하면서 '그러니까 내가 선포하기 전에 병력을 미리 움직여야 한다고 했는데 다들 반대를 해가지고 일이 뜻대로 안 풀렸다', '결의안이 통과되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하면 되니까 너네는 계속해라'라는 취지로 말하기도 하였다."(판결문 655-656쪽)

재판부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 근거로 오상배 대위의 진술을 들었다. 오 대위는 지난해 5월 12일 3차 공판에 출석해 대통령과 사령관 간의 통화를 상세하게 진술했다. 특히 여의도진지에 도착할 즈음 이뤄진 통화에서 "피고인은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다음 통화에서는 윤석열씨가 "결의안이 통과됐다고 해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하면 되니까 너네는 계속 해라"고 얘기했다고 증언했다.

오 대위는 2024년 12월 18일 군 검찰에서 처음 조사를 받을 때는 대통령과 사령관의 통화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웠다"고 토로했다. "대통령께서 책임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도 있었다. 하지만 조사 다음날 윤씨 쪽에서 '대통령은 체포의 체자도 꺼낸 적 없다'고 주장하다 "진실을 밝히는 데에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오 대위는 법정에서 "일종의 배신감 같은 걸 느꼈다"고 했다.

"대통령은 군인이 아니지만, 군 통수권자로서 지휘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부하를 버렸다고 느꼈다."

또 다른 목격자, 이민수 중사도 처음에는 입을 닫았다. 그는 2025년 8월 18일 14차 공판에 나와 수사기관에서는 '대통령과 사령관의 통화가 기억 안난다'고 진술한 이유를 "그때 당시에는, 너무 긴장하고 떨렸었고, 저한테 피해가 올까봐 그렇게 얘기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이 내용을 알면서도 자꾸 침묵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다며 대통령이 총을 언급했고, '계엄을 다시 하면 된다'는 얘기를 했다고 증언했다. 그 순간 "믿음이 깨진 것 같다"는 말도 남겼다.

재판부는 이들의 양심에 믿음으로 답했다.

"오상배의 진술은 이진우 및 이민수의 진술과 전체적으로 부합하고, 그 진술이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진술할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며, 수사기관에서부터 일관된다. 특히 당시 차량 안에 이진우, 오상배 등이 함께 있는 상황이어서 이진우가 전화로 피고인 윤석열과 통화를 나누는 내용을 오상배가 충분히 들을 수 있던 상황으로 보인다(게다가 피고인 윤석열은 당시 화를 내듯 큰 소리로 말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상배가 피고인 윤석열에게 특별히 불리한 진술을 할 동기도 찾아볼 수 없어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판결문 805쪽)

"이민수는 이 법정에서 "피고인 윤석열과 이진우 사이의 전화통화는 몇 차례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제가 기억나는 것은 두 번이다. 첫 번째 통화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고, 두 번째 통화 때에는 피고인 윤석열이 '총을 쏴서라도'라고 말한 것과 '결의안이 통과되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하면 되니까 너네는 계속해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 기억난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위와 같은 오상배의 진술은 이민수의 진술에도 부합하고, 수사기관에서부터 일관되며,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진술할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오상배가 위증의 벌을 감수하면서까지 피고인 윤석열에게 특별히 불리하게 진술할 이유도 없으므로, 믿을 만하다."(판결문 808쪽)

"두려웠다" 그렇지만 "부끄러웠다"... 양심고백한 부하들
'피해자' 주장했지만... '내란중요임무종사자'로 전락한 사령관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이 2024년 12월 12일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이날 오전부터 수도방위사령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오후 수도방위사령부 입구.
ⓒ 연합뉴스
사령관과 이들의 희비는 교차했다. 재판부는 윤석열씨와 김용현 전 장관 지시로 군이 계엄을 준비한 정황을 인정하면서 약 14쪽을 '이진우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서술하는 데에 할애했다. '계엄 당일에서야 선포 계획을 알았다'던 이 전 사령관의 주장은 사실상 배척됐다.
"비록 피고인 김용현이 이진우에게 국회 진입 및 내부 봉쇄 임무를 명시적·직접적으로 부여한 것은 아니라고 보이나, 피고인 김용현은 2024. 12. 1. 이진우와 수 회 통화하면서 '비상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대비태세를 잘 갖춰라', '국회에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지시 및 질문 등을 함으로써 사실상 '비상계엄 가능성'을 암시하고 '(명령 시) 국회 진입 및 내부 봉쇄 임무'를 부여하면서 이에 대비·준비할 것을 지시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아울러 2024. 12. 3. 21:46경 이진우에게 직접적으로 위 임무 실행을 준비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또한 이진우 역시 12. 1.경 피고인 김용현으로부터 위와 같은 명시적 지시를 받으면서 그 즉시 또는 차차 '비상계엄 가능성' 및 '(명령 시) 국회 진입 및 내부 봉쇄 임무'를 부여받은 것으로 이해한 후(다만 이진우는 곽종근, 여인형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일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는 생각과 기대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2024. 12. 3. 21:46경 피고인 김용현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위 임무 수행을 구체적으로 실행해야 한다는 사정을 인식하고, 이를 준비하기 위해 2024. 12. 3. 21:48경부터 병력 소집을 시작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판결문 787쪽)

"이진우는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전에 주요지휘관 일부를 소집하거나 병력 출동 준비를 시작하였다. 이진우는 2024. 12. 3. 21:46경 피고인 김용현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그 직후인 2024. 12. 3. 21:48경 조성현에게 전화하여 '상황이 있는 것 같다. 수호신TF를 소집하고, 너는 사령부로 들어와라'라고 지시하였고, 이에 조성현 역시 대대장과 주요직위자들 및 수호신TF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이진우는 같은 날 21:53경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 김창학 및 수도방위사령부 참모장을 각 소집하였다. 이진우가 2024. 12. 3. 21:46경과 그 이전에 피고인 김용현으로부터 임무에 관한 지시를 받고 이를 구상하지 않았다면 피고인 김용현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시나 설명을 듣지 않고 곧바로 수호신TF나 주요 직위자들을 곧바로 소집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판결문 791쪽)

"이진우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에도 그다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국회로 병력을 출동시키고 관련 사항들을 지시하였으며, 이후 본인도 실제 국회로 바로 출동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계엄이 선포될 경우 수도방위사령부 병력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을 부하 등에게 확인하거나 군이 국회로 출동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부에 문의하거나 검토하는 등의 행동을 일체 하지 않았다. 사전에 비상계엄 가능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판결문 792쪽)

"앞서 살펴본 여러 사정들 및 다음과 같은 사정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진우는 피고인 김용현의 대비태세 준비, 국회 비상상황 발생 시 대책 계획 수립 등 지시를 받고 적어도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을 가정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국회 비상상황 발생 시 국회 진입 및 내부 봉쇄 임무를 부여받았다.', '위 비상상황은 비상계엄일 수도 있다.'는 인식을 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판결문 794-795쪽)

"이진우는 정확한 임무에 대해서 듣지도 못한 채 위와 같은 짧은 지시만으로 즉시 국회로 출동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지휘관이 어떤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동원할 병력의 숫자나 물자의 양도 미리 판단해야 한다. 이진우는 그 주장에 의하면 어떤 임무가 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위와 같은 짧은 지시만으로 직접 국회로 출동하고 대테러부대를 움직였다는 것인데, 그 주장은 국회의 정치적 민감성 및 지휘관의 통상적인 임무 수행에 비추어 보면 납득하기 어렵다."(판결문 800쪽)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별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 이 전 사령관에게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다. 그의 변호인은 군사법원에서 "(이 전 사령관은) 피고인이 아니라 피해자"라고 주장했지만, 12.3 계엄 당시 3성 장군의 행보는 그가 '책임자'임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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