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귀연의 틈, 조은석의 틈, 윤석열의 틈
[박소희 기자]
|
|
| ▲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1심 선고일인 19일 서울 용산 전자랜드 가전 매장에 진열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선고 공판 생중계를 시민이 지켜보고 있다. |
| ⓒ 연합뉴스 |
그럼에도 이 판결은 몇 가지 찜찜함을 남기고 있다. 지귀연 재판부와 조은석 내란특검 그리고 윤석열씨의 '틈'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지귀연의 틈] 요건만 딱 따져... 추가 계엄 시도는 '아쉬움'의 표현?
1년 가까이 이 사건을 심리해 온 지귀연 재판부는 대체로 주요 쟁점과 법리, 사실관계를 나름의 형식 논리를 갖춰서 정리했다. 하지만 이 '말쑥한 판결'을 좀더 들여다 보면, 재판부가 12·3 내란을 바라보는 협소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윤석열씨의 내란죄 성립을 인정하면서 '국헌문란의 목적'을 "국회의 활동을 저지하거나 마비시켜 국회가 사실상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려는 것"으로만 해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한민국 형법은 내란을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 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일로 정의한다(87조). 이때 국헌문란은 ①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과 ②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91조). 지귀연 재판부는 윤씨가 이 가운데 두번째, '국회라는 헌법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키려고 했다'고만 봤다.
그런데 1심 판결은 ▲국회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 등 불분명한 기준을 내세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며 ▲'미복귀 의료인 처단'을 운운하여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포고령 위반자 대상 영장 없는 체포·구금·압수수색을 허용함으로써 영장주의 원칙을 무시한 포고령은 위헌·위법하므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즉 계엄 선포와 포고령 공고는 헌법과 법률의 기능 소멸 시도라는 의미다.
"이 사건 포고령은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공고되었고, 그 내용도 대의민주주의와 지방자치제도, 정당제도를 부인하며, 영장주의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고, 표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단체행동권 등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헌법과 구 계엄법에 위배되어 위헌이고 위법하여 무효이다."(판결문 1023쪽)
하지만 지귀연 재판부는 이를 국헌문란의 목적 자체보다는 '국회를 제압하기 위한 폭동' 중 하나로만 해석했다. 계엄 선포가 필연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지만, 그것이 내란죄에 해당하는지를 따지려면 법이 정한 절차와 요건을 갖췄느냐만이 아니라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수단인지가 중요하다는 이유였다. 재판부가 이때 언급하는 '국헌문란' 또한 국회의 기능 제약에 한정되므로, 법 해석의 범위는 한번 더 좁혀질 수밖에 없다.
"포고령을 피고인 윤석열과 피고인 김용현이 공고한 것은 그들이 국헌문란의 목적(국회의 활동을 저지하거나 마비시켜 국회가 사실상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사정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판결문 1022쪽)
재판부 스스로 12·3 계엄이 절차와 실체 모두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면서도, '그것만으로 사법심사 대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선언한 대목 역시 5·18 판례의 형식적 적용에 그쳐버렸다. 1997년 대법원은 전두환·노태우씨의 내란 유죄 판결을 확정하면서 "이 사건과 같이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고 했다. 지귀연 재판부는 딱 여기까지만 판단했다.
"평상시의 헌법 질서에 따른 권력행사방법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중대한 위기상황이 발생한 경우 이를 수습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행사되는 국가긴급권에 관한 대통령의 결단은 가급적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법치주의의 원칙상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야 하고 그에 위반되어서는 아니 되며, 합헌성·합법성의 판단은 본질적으로 사법의 권능에 속하는 것이다. 내란죄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는 이상,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들에 대해서도 법원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진 것인지와 관련하여 범죄행위가 되는지를 심사할 수 있다."(판결문 161쪽)
"반면 비상계엄 선포의 요건을 갖추었는지에 따라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의 성부를 논할 것이 아니라, 형법상 내란죄의 구성요건으로 돌아가 대통령이 어떠한 목적(의도)을 가지고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실제 어떠한 행위를 하였는지를 따져 내란죄의 성부를 논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즉 대통령이 비상계엄 하에서도 할 수 없는행위를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군을 이용해 의도한 행위를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겉으로만 비상계엄 권한을 내세운 것일 뿐 실제로는 자신이 통수권을 가지는 군을 이용하여 헌법과 법률이 비상계엄 하에서도 허용하지 않은 권한을 사실상 실력으로 행사하는 것이어서 이러한 경우에는 내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이다.이러한 견해가 타당하다는 것이 이 법원의 판단이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비상계엄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의의와 취지가 충분히 존중되면서도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내란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것으로 고도의 정치행위에 관한 사법적 심사 자제, 책임주의와 죄형법정주의 원칙 등과도 균형을 이룬다."(판결문 1007쪽)
재판부는 윤석열씨가 국회의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 의결 직후인 2024년 12월 4일 오전 1시 13분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에게 '(국회) 결의안이 통과되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하면 되니까 너네는 계속 해'라고 말하고, 비슷한 시각 합동참모본부 결심지원실에서 '그걸 핑계라고 대냐' '다시 걸면 된다', '두 번 세 번 하면 된다'며 김용현 전 장관 등에게 역정을 낸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아쉬움 등을 과장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법원이 지켜본 피고인 윤석열의 말할 때의 특징, 화법, 톤, 내용 등 여러 가지를 살펴보면, 어떤 말을 할 때 짧고 간단하게 하기보다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을 섞어가면서 말을 하고 실제 뜻하려는 바보다 다소 장황하고 과장되게 표현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계엄해제요구 의결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나름의 아쉬움과 답답함, 당혹스러움 등 여러 감정이 겹친 피고인 윤석열이 이진우와 통화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이런저런 여러 가지 말을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였을 가능성도 충분하고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표현의 말을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개연성도 적지 않다(피고인 윤석열의 전체적인 변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설령 그와 같이 말했다고 하더라도 본심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보이기도 한다)."(판결문 812쪽)
하지만 재판부는 이른바 '최상목 문건' 또한 "피고인 윤석열과 피고인이 국회를 배제할 목적으로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했음을 뒷받침한다"라고 봤다. 이 문건에 등장하는 '국가비상 입법기구'가 "국회를 대체할 새로운 입법기구를 지칭하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라며 "그 자체로 국회의 핵심적인 권한인 입법권을 배제하려는 목적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윤씨의 추가 계엄 발언을 '화법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그의 본심을 평가절하는 일은 아닐까.
재판부가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유리한 정상'로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군·경은 물리력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언급한 점 역시 항소심에서 다퉈질 가능성이 크다. 국회의 신속한 의결로 윤씨의 내란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임무 수행 덕분(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이었다. 또한 판결문 표현처럼 물리력 사용을 자제한 주체는 군인과 경찰이었다. 곽종근·여인형·이진우 전 사령관은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실탄 사용을 자제하라는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지시는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해 왔다.
|
|
| ▲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했던 내란 특검팀의 조은석 특별검사가 2025년 12월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고등검찰청에서 180일간의 수사를 마치고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 ⓒ 공동취재사진 |
재판부는 이 지점에서 노씨의 손을 들어줬다. 특검이 수첩 내용의 작성 시점을 객관적 증거로 입증하지 못했고, '중요한 자료인데 그렇게 보관했겠나'라는 노씨 주장을 반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주장(노상원 수첩 기재대로 군 장성 인사가 이뤄졌다는 특검 주장 - 기자 주)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주장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2023. 11. 6. 여인형이 국군방첩사령관으로 보직됨과 동시에 곽종근, 이진우도 육군특수전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각 보직되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재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사건 노상원 수첩은 2024. 12. 15. 충남 ○○군에 있는 피고인 노상원의 모친 주거지의 책상 위에서 발견되어 압수되었다. 그런데 만약 피고인 노상원이 이 사건 비상계엄을 2023년 10월경 이전부터 계획하고 그러한 계획을 피고인 김용현에게 그리고 피고인 김용현을 통해 피고인 윤석열에게 전달하였다면, 위 수첩은 자신이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1년 전부터 이를 준비하고 계획하였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를 수사기관에 발견하기 쉬운 위 주거지 책상 위에 그대로 두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판결문 718쪽)
관련자들의 '말'이 핵심 증거인 탓에 특검이 이들의 '변명'을 뒤집을 묘수도 딱히 없었다. 가령 김용현 전 장관이나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은 '그런 얘기가 없었다'라고 했으나 곽종근 전 사령관은 '대통령이 시국이 어렵다고 했다'라고 진술하는 반면,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증언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대통령 또는 국방부 장관과 만났던 이들의 발언이 일치하는 경우나 모임 전후 참석자들의 행보를 보여주는 휴대전화 메모 등 추가 물증이 있을 때만 '사실'로 인정했다.
김용군·윤승영 두 피고인의 무죄 판결 역시 특검에게는 뼈아프다. 재판부는 김용군 전 대령의 경우 2024년 11월 노상원씨로부터 부정선거 수사 인력 추천을 받았고 계엄 선포 당일 '롯데리아 회동'에 참가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를 내란중요임무종사자로 평가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방첩사 체포조를 지원한 혐의를 받아온 윤승영 전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도 '체포대상이 이재명·한동훈 등 주요 정치인임을 알았다'는 공소사실의 입증이 불충분하다고 봤다.
[윤석열의 틈] 모든 주장이 완패... 빠져나갈 수 있을까
윤석열씨의 경우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수사권이 없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다'부터 '곽종근이 요원을 인원으로 말을 바꿨다',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나'라는 궤변과 '체포 시도는 여인형의 무리수다', '구체적인 계획은 김용현이 세웠다' 등 책임 떠넘기기까지 틈이 너무 많았다. 허점투성이 주장들은 패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재판부는 그가 주장한 사실관계와 법리, 어느 것 하나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윤씨가 맹공격했던 '홍장원 메모'는 판결문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다른 증거들만으로도 충분해서다. 재판부의 선고 당일 설명자료 중 법정에서 읽지 않은 부분에는 "메모지 관련 내용은 그 작성 경위 등에 관한 진술이 계속 바뀌어 믿기 어렵지만"이라는 판단이 나온다. 하지만 이 문장의 뒷쪽에는 '다른 증거들을 볼 때 윤석열이 싹 다 잡아들이라고 했고 여인형이 체포명단을 불러줬다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발언을 믿을 수 있다'는 결론이 이어진다.
|
|
| ▲ 2026년 1월 14일 새벽 내란우두머리 사건 결심공판(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에서 윤석열씨가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 |
| ⓒ 서울중앙지방법원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BS의 AI 대전환, 글로벌한 지식콘텐츠 대량 생산"
- 꿈의 숫자 코스피 6000 이후를 묻다... 숫자보다 바뀐 것은 '공기'
- 세상 사람 다 아는데 말하면 안된다? 웃긴 교육감 선거
- 장례는 허례허식? 이런 장례식도 있습니다
-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살아가는 즐거움
- 7년 만에 대통령 직접 참석한 이 회의... 신라호텔 이부진도 왔다
- "첫째 때는 당연했는데..." 두번째 육아휴직 망설이는 이유
- 법정서 "이단 아냐" 설명하려던 한학자 측... 우인성 "교리 강연장 아니다"
- 우인성 판결 뒤집은 이진관의 결정적 한 방... "포괄일죄"
- 첫 지역 일정으로 대구 택한 한동훈 "지금 국힘, 정상적이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