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당면 의제가 된 지금 개념을 분명히 하자
[유승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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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소득이 이제 국가적 논의 안건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 |
| ⓒ ryanquintal on Unsplash |
기본소득을 이루는 두 핵심 생각
기본소득에는 애초부터 두 가지 생각이 함께 담겨 있었다. 하나는 복지의 사각지대와 낙인을 줄이면서 재분배를 더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자는 구상이고, 다른 하나는 모두가 함께 가진 자산에서 생기는 수익을 시민에게 배당으로 돌려주자는 구상이다. 전자는 '복지를 약화시키는 우회로'가 아니라 복지국가를 더 매끄럽게 작동시키는 설계 언어이고, 후자는 '공동의 기반'에서 발생하는 몫을 시민의 권리로 환류시키는 설계 언어다. 기본소득의 구현을 준비하려면 이 두 관점을 각각 온전히 이해한 뒤, 현실 과제에 맞게 어떻게 엮을지를 따져봐야 한다.
조세형 기본소득: 재분배를 더 정교하게 만드는 설계
기본소득을 제안하는 첫 번째 유형은 '효과적인 재분배 수단'으로서의 조세형 기본소득이다. 기존 복지제도는 대체로 "부자에게서 세금을 걷어 가난한 사람에게 선별적으로 준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 방식은 자원이 한정된 조건에서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에서 여러 부작용도 낳는다. 누가 수급자인지 가려내는 심사 과정은 행정비용을 키우고, 누락과 사각지대를 만든다. 지원을 받는다는 사실이 낙인이 되기도 하며, 소득이 조금 늘어나면 지원이 끊겨 오히려 손해가 되는 '빈곤의 덫'이 생기기도 한다. 제도의 취지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작동 방식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면 지속 가능성은 약해진다.
조세형 기본소득은 이 지점을 정면으로 개선하고자 한다. 핵심은 "일단 모두에게 동일하게 지급한 뒤, 조세를 누진적으로 거두어서 재분배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왜 부자에게도 주느냐는 반론이 늘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 모델에서 부자에게 지급되는 몫은 결국 세금으로 더 많이 되돌아오도록 설계된다. 즉 지급 단계에서는 보편성을 통해 낙인과 사각지대를 줄이고, 회수 단계에서는 누진성을 통해 재분배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구상이다.
게다가 복지국가 연구에서 말하는 '재분배의 역설'—혜택이 보편적일수록 중산층의 지지가 결집되어 복지 재정의 규모가 커지고, 결과적으로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는 힘이 커진다는 주장—도 이 설계에 정치적 설득력을 보탠다. 과거 일시적으로 지급된 재난기본소득은 대체로 이러한 조세형 기본소득의 원형에 가까운 경험으로 읽힌다.
공유부 배당: 개인의 기여와 공동의 기반을 함께 존중하는 설계
하지만 기본소득론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두 번째 유형은 '공유부 배당'으로서의 기본소득이다. 이 접근에서 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의 한 종류라기보다, 공동으로 가진 자산에서 나오는 수익을 공동체 구성원에게 돌려주는 배당의 성격을 갖는다. 토머스 페인이 토지의 사유화가 낳는 지대 수익을 지적하며 "지구 자체는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는 관점에서 기초지대를 기금화해 배당하자고 제안했던 논리에서 기원한다. 자연이 준 선물에서 나오는 수익을 특정 주체가 독점한다면, 그 수익을 공동체 구성원에게 배당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직관이다. 핵심은 개인이 개간하고 투자하고 노동해 만들어낸 성과의 몫과, 누구도 혼자 만들어낼 수 없는 공동의 기반에서 생기는 몫을 구분해 후자를 시민에게 환류하자는 데 있다.
현실 사례로 이 구상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알래스카의 '영구기금(Permanent Fund)'은 개인의 성취를 평가절하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 정부 소유의 토지에서 나오는 석유 수익처럼 애초에 공동의 자산에서 발생하는 몫을 장기적으로 관리하자는 방식이다. 알래스카는 이 수익의 일부를 기금에 적립해 원금을 가능한 한 보전하고, 그 투자 수익만을 모든 주민에게 매년 배당한다. 이렇게 하면 "지금의 주민"만이 아니라 "미래의 주민"까지 같은 규칙 아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공유부 배당이 단기 현금정책이 아니라 장기 제도라는 점이 여기서 분명해진다.
비슷한 논리로, 최근에는 탄소세를 걷어 그 수입을 모두에게 똑같이 돌려주는 '탄소배당'이 주목받고 있다. 이 또한 개인의 노력의 결실을 문제 삼기보다, 지구 생태계의 흡수·자정 능력(탄소를 받아주는 하늘의 용량)처럼 공동의 기반을 훼손하는 행위에는 사용료를 매기고, 그 사용료의 귀속을 시민에게 돌리자는 구상이다. 배당은 '누군가의 몫을 빼앗는' 형식이 아니라, 공동의 기반에서 생긴 수익이 어디로 귀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제도적 답변이 된다.
자연을 넘어 산업 혁신의 성과까지, 공유부를 확장할 때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공유부의 핵심은, 자연자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금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인공지능(AI) 전환과 기후위기에 대응한 에너지 전환이다. 전력망과 데이터 인프라를 깔고, 산업 생태계를 재배치하며, 기술체계를 바꾸는 일은 1~2년짜리 프로젝트가 아니다.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하고 불확실성이 커서, 단기 수익에 민감한 민간 자본만으로는 완주하기 어렵다. 결국 국가가 공공금융을 동원해 초기에 위험을 떠안는 '인내 자본(PatientCapital)'이자 '앵커 투자자'로 나설 때 비로소 혁신의 마중물이 부어진다.
여기서 오래된 문제가 다시 등장한다. 국가가 R&D와 인프라에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위험을 감수했는데도, 혁신의 과실은 소수 기업—특히 대기업이나 플랫폼 독점 기업—이 독식해 왔다는 불만이다. 이른바 '위험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라는 비판은 산업정책이 확장될수록 더 쉽게 터져 나온다. AI 모델 학습에 사용되는 방대한 데이터, 해상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돌리는 바다와 바람, 전력망과 계통 안정화를 위해 사회가 감수하는 비용과 불편은 본질적으로 공적 성격을 갖는다. 이런 토대 위에서 생긴 초과수익을 오로지 사적 이익으로만 남겨 두면, 산업정책과 전환정책은 정치적 정당성을 잃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유부 배당형 기본소득은 오늘날 '산업정책의 성과'까지 공유부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주도한 혁신의 성과가 공동의 토대에서 나왔다면, 그 성과도 공동체로 환류되어야 한다. 물론 환류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정부가 혁신 산업에 지분투자를 하거나, 공적 자산을 통해 로열티·배당·초과수익을 확보하고, 이를 '배당형 국부펀드'에 적립해 장기 투자한 뒤 시민에게 '시민 배당'의 형태로 직접 돌려주는 구상이 더 제도적이다. 이렇게 되면 기본소득은 복지의 언어를 넘어, "혁신의 성과를 국민의 자산으로 남기는 방식"이 된다.
전환의 정치적 닻: '국민 배당'이 만드는 장기 동력
이 지점에서 에너지 전환의 정치가 선명해진다. 에너지 요금 인상,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일자리 불안, 물가 상승 등 전환의 비용은 국민 모두가 체감한다. 그런데 전환이 낳는 이익이 일부 기업이나 특정 지역, 특정 이해관계자에게 집중된다는 인식이 퍼지는 순간, "왜 우리는 비용만 내고 누군가는 이익을 독점하느냐"는 질문이 커지고, 전환정책은 정권과 여론의 향배에 따라 흔들리다 좌초할 위험이 높아진다.
반대로 전환 과정에서 나오는 수익이 안정적인 '국민 배당'으로 환류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국민은 단지 비용을 감내하는 존재가 아니라, 전환 생태계의 투자자이자 이해당사자가 된다. 전환정책이 단기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장기적 국가 프로젝트로 자리를 잡기 위한 '정치적 닻'이 생기는 셈이다. 기본소득이 여기서 수행하는 역할은 소득보장 그 자체만이 아니라, 전환을 끝까지 밀고 나갈 사회적 연합을 만드는 데 있다.
배당형 국부펀드: 관할 논쟁을 설계로 바꾸는 연결 고리
그렇다면 "관할 부처가 어디여야 하는가"라는 대통령의 질문은, 결국 기본소득을 어떤 구조로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재분배의 기본소득은 복지·조세·재정의 정교한 조정이 중심이 된다. 반면 성과 공유의 기본소득은 산업정책과 에너지 전환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공적 자산으로 묶어 장기 투자하고 환류하는 설계가 핵심이 된다. 이때 국부펀드는 '돈을 굴리는 기술'이라기보다 '성과를 국민의 자산으로 남기는 그릇'이 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단지 "펀드를 만든다"가 아니라 "누가 주인인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특정 국민만 투자하고 그들만 배당을 받는 구조라면 '국민펀드'에 가깝다. 진정한 의미의 배당형 국부펀드는, 국가적 자원과 공공투자가 창출한 부를 전 국민이 공유하는 구조여야 정당성이 선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본소득을 둘러싼 두 논리를 경쟁시키는 일이 아니다. 빈곤과 불평등을 완화하는 재분배의 언어와, 산업 혁신과 전환의 성과를 환류하는 배당의 언어를 각각 명확히 한 뒤, 한국의 현실 과제—AI 전환과 에너지 전환, 산업정책의 확대—에 맞게 결합하는 일이다. 국가가 인내 자본으로 위험을 떠안는다면, 국가는 그에 상응하는 성과의 지분도 확보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성과는 다시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그 환류를 가장 직관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구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정책이 제도화되는 순간, 논쟁은 구호가 아니라 설계의 언어로 바뀐다. 관할 부처를 묻는 질문은, 바로 그 설계의 언어를 시작하자는 신호다. 자연의 선물을 배당하자는 오래된 기본소득론이 이제 산업 혁신의 성과 공유로 진화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혁신과 전환을 성공시키려면, 비용을 감내하는 시민에게 '미래의 몫'이 돌아온다는 확신을 제도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그 확신이 가장 단단한 형태로 자리 잡는 곳이, 배당형 국부펀드와 그 위에 놓인 공유부 배당으로서의 기본소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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