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개한 꽃송이로 시간을 알리다... 반클리프 아펠이 만든 남다른 ‘시간’ [더 하이엔드]
보석으로 치장한 꽃밭 위를 한 쌍의 나비가 시곗바늘처럼 회전하거나, 작고 섬세한 꽃봉오리 12개가 열리고 닫히며 시간의 흐름을 알려준다. 자정과 정오, 하루에 단 두 차례 남녀가 다리 위에서 만나 짧은 입맞춤을 나누기도 한다. 보통의 손목시계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홍콩에서 선보인 시간의 독창적 해석
프랑스의 하이 주얼러이자 파인 워치메이커인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은 시계를 단순한 시간 계측 도구로 여기지 않는다. 동전 남짓한 크기의 케이스 안에 자연과 사랑, 우주의 경이, 발레리나와 요정까지 다양한 서사를 담아낸다. 정교한 무브먼트와 장인들의 예술적 기교는 그 이야기를 구현하기 위한 장치다. 기능과 장인 기법을 앞세운 시계는 많지만, 기술과 서사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세계를 일관되게 구축해온 점에서 반클리프 아펠은 뚜렷한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워치메이킹 여정을 조망하는 전시 ‘포에트리 오브 타임(Poetry of Time, 시간의 서정)’이 홍콩에서 열렸다. 1월 13일 개막해 2월 8일 막을 내린 이번 전시는 아카이브 피스와 헤리티지 문서, 현재 전개 중인 주요 컬렉션까지 아우르며 브랜드의 시계 제작 철학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예술품 만들 듯 제작에 공들여
전시는 ‘컴플리케이션의 예술’ ‘예술적 기교(Métiers d’Art, 메티에 다르)’ ‘워치메이킹을 완성하는 주얼리 전문성’ ‘예술과 메커니즘의 만남’ 등 네 가지 큰 틀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반클리프 아펠이 시간을 해석하는 특별한 방식, 즉 시간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다.” 본지와 만난 워치메이킹 연구·개발 디렉터 라이너 베르나르(Rainer Bernard)는 전시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시는 과거 작품을 한데 모은 ‘패트리모니 룸’에서 시작한다. 하이 주얼리부터 회중시계부터 손목시계, 탁상시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품이 나란히 놓였다. 베르나르는 “우리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는 크게 다르지 않다”며 “방식은 진화했지만, 근간이 되는 아이디어는 그대로”라고 말했다. 보석과 시계를 동시에 다뤄온 설립 초기의 정체성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시장 중앙에는 장인의 전문성을 보여주는 ‘워크벤치’가 마련됐다. 에나멜링, 인그레이빙(조각), 스톤 세팅 등 ‘메티에 다르’의 과정을 단계별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정교하고 섬세한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의 작동 원리를 알려주는 코너도 함께 구성됐다. 서로 다른 작업이 모여 하나의 시계를 완성한다는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서사에 중점 준 시계 제작
베르나르는 “우리 작업의 주인공은 늘 ‘스토리’”라고 강조했다. “엔지니어가 먼저 방향을 제시하는 구조가 아니라, 스토리가 존재하고 그 스토리를 엔지니어와 장인이 함께 해석한다.” 이는 완성된 무브먼트에 맞춰 다이얼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무브먼트와 다이얼을 동시에 구상하고 개발한다는 뜻이다. 기계적 구조와 시각적 표현이 처음부터 맞물려 설계되는 셈이다.


그만큼 과정은 복잡해진다. 서로 다른 전문 영역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며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 오히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베르나르가 예로 든 작품은 ‘레이디 아펠 브리즈 데떼(Lady Arpels Brise d’Été)’다. 한여름 정원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시간을 알려준다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다이얼 위 꽃줄기의 움직임을 통해 바람을 표현하고, 다이얼 가장자리를 따라 회전하는 나비로 시간을 표시한다.


이러한 애니메이션과 정밀한 설계는 서사를 구현하기 위한 장치다. 제한된 두께와 무게의 케이스 안에 이를 구현하려면 무브먼트 개발과 장식 공정이 긴밀하게 맞물려야 한다. 그가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것을 구현해야 할 때가 많다”고 설명한 것처럼, 결국 이 시계가 완성되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매혹적인 장면 뒤 숨은 독보적 기술
전시는 앞서 말한 네 가지 틀에 맞춰 구성된 공간으로 이어졌다. ‘포에틱 아스트로노미’에서는 오토마통과 탁상시계를 결합한 ‘엑스트라오디네리 오브제’ 컬렉션과 우주를 주제로 지난해 선보인 ‘플라네타리움 오토마통’ ‘미드나잇 조디악 뤼미뉴 포에틱 컴플리케이션 워치’ 시리즈를 선보였다. ‘시간을 알려주는 주얼리’ 섹션에서는 1934년 탄생한 루도 브레이슬릿 워치와 브랜드의 아이콘인 ‘알함브라’ 워치를 함께 전시해 하이 주얼러로서의 시계 제작 노하우를 강조했다.

‘발레리나와 요정’ 섹션에서는 공간 이름에 맞춰 요정과 발레리나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소개됐다. 사랑 이야기와 자연을 주제로 한 섹션도 있었다. 여기에선 19세기 파리의 밤 풍경을 배경으로 춤추는 남녀를 오토마통으로 구현한 ‘레이디 아펠 발 데 자모르 오토메이트 워치’, 다이얼에 핀 꽃의 개수로 시간을 표시하는 ‘레이디 아펠 에르 플로럴 워치’, 다리 위 연인의 만남을 표현한 ‘레이디 아펠 퐁 데 자모르 워치’ 등이 주요 작품으로 등장했다.


최근 선보인 ‘뻬를리 엑스트라오디네리 프뤼 앙샹떼 미르티유’와 ‘프랑부아즈’ 모델은 ‘메티에 다르’의 정수를 보여준다. 에나멜 파우더를 틀에 넣고 굳힌 뒤 원하는 형태로 조각하는 파소네 에나멜 기법을 사용한 시계다. 이 기법은 2023년 반클리프 아펠이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반클리프 아펠의 시계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 장치인 무브먼트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혁신적이고 독보적인 기술은 존재하지만 이를 절대 과시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베르나르는 “기술은 무대 뒤로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며 “결국 이것은 복잡한 메커니즘을 품고 있으면서도 반클리프 아펠의 시계가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남다른 시선과 해석으로 시간을 표현해온 브랜드의 오랜 철학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홍콩=이현상 기자 lee.hyunsa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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