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숏폼에 흔들리는 법정

논란 계속되는 재판 촬영·중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에도
악의적인 편집 영상 폐해 심각
尹 재판에 확대 기회 얻었지만
'사법 희화화' 극복이 우선돼야
유튜브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차고 넘친다. 방송사 뉴스, 법률가의 해설, 정치평론가의 비평 등 상식적인 콘텐츠가 대부분이지만 법정에서의 특정 장면을 악의적으로 편집한 영상도 적지 않다. 그중 생중계된 재판 영상에서 판사의 표정과 말투, 피고인과 변호인의 행동 등을 포착해 짧게 편집한 숏폼은 정도가 심하다. 재미 삼아 한번 보는 동영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지나치다. 개그를 다큐로 받지 말라고 반박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극단적인 진영 논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숏폼은 정치 선동과 다를 게 없다. 재판 희화화와 극단적인 논리의 합리화를 위해 법정 촬영을 허용하고, 선고공판을 생중계 하는 것인지 회의감이 들 정도다.
형사재판을 TV로 중계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논란거리였고, 그 논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유는 ‘국민의 알 권리’와 ‘재판의 독립성’이라는 서로 다른 헌법적 가치의 충돌에 있다. 공개재판은 나폴레옹 법전에 담겼을 만큼 오래 전에 확립된 기본권이다. 중세 비밀재판의 폐해를 딛고 근대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디딤돌이 됐다. 물론 계몽주의 시대에는 법정에서 소란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런데 카메라의 발명 이후 법정 촬영 및 중계는 공개재판 논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1935년 첫 대서양 횡단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의 아들을 유괴한 살해범이 법정 내 카메라 때문에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문제가 불거졌다. 1965년에는 결국 법정 촬영이 재판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하급심의 유죄 판결을 뒤집는 연방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커다란 영화제작용 릴카메라와 눈부신 조명, 바닥에 널린 전깃줄을 찍은 당시 법정의 사진을 보면 재판 방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기술의 발전으로 극복됐다. 릴카메라가 소형 비디오카메라로 대체되자 연방대법원은 1981년 “카메라의 존재가 배심원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위험만으로 중계를 전면금지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후 법정 촬영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확대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재판부가 금지하지 않으면 사전에 허가받지 않아도 법정을 촬영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갖춰진 나라도 많다.
우리나라 헌법도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109조)고 규정하고 있다. 제헌헌법부터 이어진 원칙이다. 하지만 사법부의 보수성 때문에 재판 중계의 역사는 짧다.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공판 시작 전 30초 동안 촬영토록 허용한 게 처음이다. 2009년 강호순 사건에서는 빈 법정을, 2011년 삼호주얼리호 납치 사건에서는 피고인 입정 장면을 촬영하는 게 허가됐다. 본격적인 하급심 법정의 촬영과 생중계는 2018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사건 선고공판에서야 이뤄졌다. 재판의 독립이라는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은 더디게 진행됐다.
지난해 제정된 특검법은 사법부의 거북이 걸음을 확 바꿨다. 특검법에는 재판부가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재판 중계 요청을 허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 결과 지난해 9월 이후 4건의 생중계를 포함해 100건이 넘는 재판 중계가 이뤄졌다. 지방선거에 대비한 정략적 의도라는 비난과는 별개로 지지부진했던 법정 촬영과 중계가 획기적으로 확대된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벌써 폐해가 쏟아진다. 8시간 가까이 진행된 공판 중 판사의 특이한 말과 표정만 골라 편집한 30초짜리 숏폼에서는 조롱을 제외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 중계된 영상을 제멋대로 짜깁기하고 요란한 배경음악을 삽입한 동영상은 조회수가 폭발하고, 좋아요가 쏟아진다. 이런 현실이 공개재판 원칙 확대를 위해 노력한 많은 사람들의 수고를 비웃고 있다.
법정의 모든 사법 절차가 오락거리로 변질되고, 법정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사생활이 돈벌이에 악용되는 건 이제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보다 법정 중계에 훨씬 적극적인 유럽 국가에서는 법정모독죄를 폭넓게 적용해 사법의 희화화를 막고 있다. 우리도 당장 조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런 저질 영상 때문에 재판 중계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까 걱정이다. 그러나 입법부인 국회가 이를 해결하고 사법의 신뢰회복을 위한 노력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숏폼 정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여야 정치인들의 숏폼 중독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듯하다.
고승욱 대기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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