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오픈런의 효시… 시대를 읽는 전시로 살아남다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더라.”
류승완 감독의 영화 ‘짝패’에서 악역 장필호(이범수 분)이 던진 이 대사가 히트를 치며 ‘생존의 미학’을 대변하는 한국 사회의 유행어가 된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올해 30주년을 맞은 사비나미술관 이명옥(71) 관장은 ‘강한 자’ 혹은 그 변주인 ‘이긴 자’라 할 수 있다. 갈수록 상업화, 대형화되는 한국 미술계에서 리움이나 아모레퍼시픽미술관처럼 기업문화재단이 뒷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오직 개인의 힘으로 30년을 버텨 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관장은 화려한 두건을 쓰고 공식 석상에 등장해 애칭 ‘두건의 여인’으로 캐릭터화됐지만, 생존력이야말로 그 이면의 캐릭터 이미지라 할 수 있다. 그는 30주년 기념전 ‘1만일의 시간, 미술이 묻고 사비나가 답하다’가 열리는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지난 12일 국민일보와 인터뷰할 때도 빨간 모자를 쓰고 나왔다.

먼저 30년을 지내오며 가장 힘든 때가 언제였는지 물었다. “매일매일이 힘들었다. 2018년 은평구 진관동에 건물을 신축해 재개관한 이후부터는 정말 도전이었다. 공간은 훨씬 커졌고, 그만큼 예산은 많이 들어갔다. 교통이 편한 것도 아니고 MZ세대를 끌 만한 다른 문화 공간도 없이 은평구에 덜렁 우리 미술관만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 은평구 구립미술관 역할까지 감당해야 했다.”
북한산 자락 삼각형 형태의 독특한 외관이라 건물은 단박에 눈에 띈다. 하지만 미술관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엄청난 숙제였다. 사립미술관이면서도 은평구립미술관 역할을 자처한 것은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은평구 최초이자 유일 미술관으로서 지역 주민과 문화 소외 계층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꾸렸다고 했다. 은평구청·은평문화재단과 협력해 마련한 ‘옥상공연 프로그램’ ‘은평구민 대상 미술공모전’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기획한 특별전 ‘생태의 집-한옥’은 은평한옥마을이 위치한 지역 문화 자산과 현대 미술이 어우러진 좋은 모델로 평가받았다.
출발은 갤러리였다. 원래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부친의 뜻을 따라 학부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조금 늦었을 뿐 결국 미술과 인연을 맺었다. 불가리아 소피아국립미술아카데미 회화 석사를 마친 뒤 1996년 갤러리가 밀집해 있던 서울 인사동에 60평 규모 ‘갤러리 사비나’를 낸 것이다. 갤러리 이름은 세례명을 땄다.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예술기획 석사를 했다.
2002년에는 안국동으로 이전해 규모를 키우고 사비나미술관으로 개칭하며 업태도 바꿨다. 작품을 사고파는 상업적 성격의 갤러리에서 공공적 성격이 강한 미술관으로 바꾼 것이다.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은 병원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라 전시 용도로는 아쉬움이 컸다. 번듯한 전시를 하기에는 성에 차지 않았다. 주차장 공간도 없었다. 결국 안국동 금싸라기 땅 미술관 건물을 팔고 진관동에 건물을 신축해 재개관했다. 모두가 반신반의한 모험이었다. 결과적으로 재테크에는 실패했지만, 미술관으로서 날개를 펴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규모가 클 줄 몰랐다”는 게 진관동 미술관 재개관전에 모인 미술계 인사들의 첫마디였다. 2·3층 전시장 연면적은 이전 공간의 4배. 일부 구간은 2층과 3층 사이를 터서 작가들의 공간 해석에 도전이 됐다. 사비나미술관은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인 50~60대 중견 작가들의 개인전을 해주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강홍구, 안창홍, 유근택, 이길래, 홍순명 등 예술 성격이 뚜렷한 중견 작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시대성을 반영한 기획전이 트레이드마크다. 1996년 갤러리 사비나 개관 기념전으로 ‘인간의 해석’전을 여는 등 출발부터 그랬다.
“당시만 해도 원로, 중견, 청년 등 연령대별로 전시를 하던 시절이었다. 저는 큐레이션 개념을 도입해 관객의 취향을 겨냥하는 주제전을 하고 싶었다. 이 주제라면 꼭 가고 싶은 전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전시를 하고 싶었다. 작품을 팔아야 하는 갤러리라면 주제전을 해서는 인기 작가를 끌어오기 힘들다. 미술관으로 업태를 바꾼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

‘교과서 미술전’(1997), ‘우리 들꽃’(1998), ‘기상청과 함께하는 일기예보전’(2000), ‘더 독(The Dog)전’(2002), ‘미술과 수학의 교감 Ⅰ·Ⅱ’(2005·2006), ‘3D프린팅&아트’(2014), ‘#셀피-나를 찍는 사람들’(2017), ‘윤동주가 사랑한 한글’(2020) 등 전시의 궤적은 사비나가 시대와 사회 흐름에 예민하게 반응했음을 보여준다.

“‘#셀피-나를 찍는 사람들’은 미술관에 길게 줄 서는 풍경을 처음 맛본 전시였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셀카 문화가 막 나와 조명한 건데 MZ세대가 그렇게 폭발적으로 반응할 줄은 기획자인 저도 몰랐다.”

‘반려견’보다 ‘애견’이라는 단어가 일반적이던 시절, 개를 데리고 입장하게 한 ‘더 독’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같은 콘셉트의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을 한 것보다 8년 앞섰다. 그는 “이 시대가 뭘 요구하는지 캐치를 해서 전시를 하니 대중이 재미있어 하고 언론도 적극적으로 반응을 해줬다”고 회상했다.
사비나미술관으로 바꾼 2002년만 해도 지역 공립미술관이 거의 없었다. 서울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정도였다. 이후 대구에 2011년 대구미술관이 들어서는 등 지자체마다 공립미술관을 개관하고 있다. 군 단위까지 공립미술관이 생겨나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사립미술관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2020년 무렵 용인의 이영미술관이 매물로 나오는 등 사립미술관들이 존립의 기로에 섰다.
그 무렵 사비나미술관이 주목한 것은 K-콘텐츠였다. 방탄소년단(BTS) 열풍으로 전 세계적으로 K-컬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한글, 한복, 한옥 등 우리 전통을 현대 미술로 풀어낸 전시를 기획했다. 해외에서도 수요가 있었다. 전통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영감의 원천’(2018), ‘윤동주가 사랑한 한글’(2020)전은 일본 캐나다 폴란드 헝가리 중국 등지의 순회전으로 이어졌다. ‘예술 입은 한복’(2023)은 말레이시아 필리핀 중국 나이지리아 카자흐스탄으로 수출됐다. 그는 “‘생태의 집-한옥’ 전시도 해외 수출을 타진 중”이라고 했다.
다독가인 그는 사립미술관의 생존 전략을 묻자 책 이야기로 답을 대신했다. 류승완 감독의 신간 ‘재미의 조건’을 읽는 중이라는 그는 “문화 지형이 바뀌면 그걸 연구해야 된다. 넷플릭스의 출현으로 영화관이 직격탄을 맞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영화관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경험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류 감독의 자세에서 많이 배운다”고 했다. 전시는 4월 19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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