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34년 출근이 끝났다... 내 마음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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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림 기자]
"아빠 희망 퇴직 신청한대. 올 3월까지 근무한다네."
엄마의 전화에 가만히 핸드폰을 내려놨다. 회사를 그만 두는 건 아빤데 왜 내 마음이 무너지는 걸까. 영원할 것 같던 아빠의 출근이, 34년 만에 비로소 끝이 났다.
문득 아빠의 흔적을 떠올려본다. 손 때가 탄 검은 노트북 가방, 생신 때 선물로 드린 닥스 넥타이, 작은 구멍이 뚫린 회색 발목 양말. 푸르던 청춘은 미숙한 신입 사원이 됐고, 엄마를 만나 두 자녀를 두었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어느덧 60대가 되었다. 송수종(가명), 나의 아빠이기 전에 한 시대를 살아간 직장인이자, 세상을 견뎌낸 여린 청년이었다.
순천 낙안의 깡시골에서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아빠는 막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홀로 서울에 상경했다. 부모 품이 그리울 법했 건만. 어린 소년은 작은 단칸방에서 라면이나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외로움을 이겼다. 몇 해가 흐르고 타고나길 총명했던 소년은 스무 살이 되자마자 서울 명문대의 공과 대학에 당당히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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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 시절의 아빠 순한 눈매와 파마 머리, 금테 안경과 꾹 다문 입.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똑같은 모습이다. |
| ⓒ 송혜림 |
"아빠는 시인이 되고 싶었어?"
언젠가 내가 건넨 질문에 마흔 무렵의 아빠는 골똘히 생각하곤 웃으며 말했다.
"그랬지, 하지만 돈을 벌어야 하니까."
아빠는 만년필을 서랍 깊은 곳에 넣어 놓고, 대학 졸업 후 한 기업의 연구원이 됐다. 가끔 기업 사보 끝장에 실린 아빠의 시를 읽으며, 젊은 날에 머물러 있는 그의 감성을 읽었다. 아빠는 시인이 되었어도 분명 크고 작은 성공을 거뒀으리라 생각했다.
직장인으로서 아빠를 기억하는 첫 순간은 언제였을까. 내가 유치원생이고 아빠는 신입 사원이던 초 겨울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던, 임직원 가족의 회사 공장 투어가 열렸던 날. 회사 로고가 크게 박힌 바람막이를 입고 성큼 성큼 걸어가던 아빠의 등이 기억난다. 어린 내겐 어찌나 거인처럼 커 보이던지, 새끼 강아지 마냥 그 뒤를 졸졸 쫓았다.
그날 엄마와 나, 아빠는 그의 한 칸 짜리 기숙사에서 옹기종기 붙어 추운 밤을 보냈다. 온통 회색으로 물들었던 칙칙한 기숙사를 나서며, 처음으로 아빠가 외롭겠단 생각을 했다.
그 날의 아빠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20대 후반이었다. 이 맘 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직사각형 뿔테 안경을 쓰고 체크 무늬 남방을 아무렇게나 통바지에 쑤셔 넣은 한 남자가 있다. 순박한 눈매에 풋풋함이 가득했던 젊은 날의 아빠는 누가 봐도 딱 공부만 한 모범생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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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와 아빠의 결혼기념일은 1월 1일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늘 새해를 축하함과 동시에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기념 외식을 한다. |
| ⓒ 송혜림 |
"출장 갈 때 아빠 캐리어에 나 좀 숨겨주면 안 돼? 정말 조용히 있을게."
내 칭얼거림에 그는 늘 너털웃음 지으며 "아빠는 놀러 가는 게 아니야"라고 말했다. 매번 출장을 다녀온 뒤 잔뜩 지쳐있던 아빠의 등을 나는 미처 보지 못했다.
내가 스무 살이 될 무렵 아빠가 있던 회사가 물적 분할 되어 다른 그룹사에 인수됐다. 당시 우리 가족은 내가 어른 된 기념으로 함께 캄보디아 여행을 떠났는데, 아빠는 작은 나룻배 끝에 쪼그리고 앉아 한 시간 넘게 말 없이 강가를 응시했다. 모든 청춘을 보낸 회사를 자의가 아닌 이유로 떠나야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갑작스레 새 부서, 새 사람들과 일하게 된다는 건 내향적인 아빠한테 꽤나 힘겨운 일이었을 테다.
"아빠는 잘 해낼 거야."
엄마의 말을 들으며 그의 등을 바라봤다. 신입 사원 시절 봤던 등보단 조금 작아져 있었다. 아빠는 다행히 새 회사에서도 잘 적응했고 진급도 척척 해내었다. 어쩌면 가족이란 존재가 곁에 있었기에, 그는 강해져야 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빠를 외면했던 날들
나는 대학 졸업 후 서울에 올라 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아빠와 연락이 드문 드문 해졌다. 나도 애초에 살가운 딸이 아녔고, 아빠도 다정한 성격은 아니었다. 이따금 저녁에 전화하면, 아빠는 항상 동료들과 한 잔 걸치고 잔뜩 취기 오른 투로 전화를 받았다. "우리 딸, 웬일이야?" 그럼 나는 맹한 목소리로 할 말만 툭툭 건네곤 전화를 끊곤 했다. 괜히 통화가 길어져 이직이나 연봉 얘기가 나오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벽으로 1분 채 넘어가지 못했던 수 년 간의 통화들이 이제 서야 아쉽고 원망스럽다. 먼저 좀 전화 좀 하지, 그냥 출근 잘 하셨냐는 뻔한 안부 인사라도 하지. 아빠의 퇴근 후 삶을 달래는 존재가 막걸리 한 잔이 되는 동안, 난 내 삶이 벅차단 이유로 외면해왔던 건 아닌지.
아빠는 몇 해 전부터 꾸준히 퇴직 이후의 삶을 이야기해왔다. 할아버지네 감 밭에 작은 집 짓기, 바닷가에 살며 배 몰기, 엄마랑 캠핑카 사서 전국 여행하기, 리트리버 한 마리 키우기.
일을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아빠의 삶에 처음 찍히는 긴 쉼표. 그는 두려움보단 그간 꿈꿔왔던 다양한 일들을 시도해볼 수 있단 사실에 어린 소년처럼 설레했다. 도시 고향 집도 내년에 부동산 새 매물로 내놓게 됐다. 이왕이면 뭐든 게 편한 도시에서 계속 사셨으면 했지만, 도시에서 평생을 치열하게 사셨던 아빠가 하고 싶은 일은 더 이상 없었다.
한 시대를 무사히 살아 낸 아빠,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천천히 사무실 짐도 정리하고 인수인계 해야겠네."
올해 설, 아빠를 만나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못 본 새에 늘어난 눈가 주름을 둥그렇게 지으며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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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 이제 아침 알람 없이 눈을 뜨고 마당에 핀 감나무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셔도 돼요. 낡은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고, 만년필을 꺼내 묵혀두었던 시들을 마음껏 쓰셔도 되고요. |
| ⓒ neffaa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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