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34년 출근이 끝났다... 내 마음이 무너졌다

송혜림 2026. 2. 2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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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년의 삶으로 돌아가는 이 시대 아빠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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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림 기자]

"아빠 희망 퇴직 신청한대. 올 3월까지 근무한다네."

엄마의 전화에 가만히 핸드폰을 내려놨다. 회사를 그만 두는 건 아빤데 왜 내 마음이 무너지는 걸까. 영원할 것 같던 아빠의 출근이, 34년 만에 비로소 끝이 났다.

문득 아빠의 흔적을 떠올려본다. 손 때가 탄 검은 노트북 가방, 생신 때 선물로 드린 닥스 넥타이, 작은 구멍이 뚫린 회색 발목 양말. 푸르던 청춘은 미숙한 신입 사원이 됐고, 엄마를 만나 두 자녀를 두었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어느덧 60대가 되었다. 송수종(가명), 나의 아빠이기 전에 한 시대를 살아간 직장인이자, 세상을 견뎌낸 여린 청년이었다.

순천 낙안의 깡시골에서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아빠는 막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홀로 서울에 상경했다. 부모 품이 그리울 법했 건만. 어린 소년은 작은 단칸방에서 라면이나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외로움을 이겼다. 몇 해가 흐르고 타고나길 총명했던 소년은 스무 살이 되자마자 서울 명문대의 공과 대학에 당당히 합격했다.

시를 사랑했던 청년
▲ 20대 시절의 아빠 순한 눈매와 파마 머리, 금테 안경과 꾹 다문 입.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똑같은 모습이다.
ⓒ 송혜림
평소 책을 끼고 살았던 그는 방학이 되면 늘 시를 썼다. 자신이 나고 자란 낙안 읍성을 배경으로 쓴 시는 문학 대회에서 상도 탈 만큼 서정이 깊고 수려했다. 노트북도 없던 시절, 젊은 아빠가 만년필로 끄적인 시들은 사랑을 말했고 청춘을 노래했다.

"아빠는 시인이 되고 싶었어?"

언젠가 내가 건넨 질문에 마흔 무렵의 아빠는 골똘히 생각하곤 웃으며 말했다.

"그랬지, 하지만 돈을 벌어야 하니까."

아빠는 만년필을 서랍 깊은 곳에 넣어 놓고, 대학 졸업 후 한 기업의 연구원이 됐다. 가끔 기업 사보 끝장에 실린 아빠의 시를 읽으며, 젊은 날에 머물러 있는 그의 감성을 읽었다. 아빠는 시인이 되었어도 분명 크고 작은 성공을 거뒀으리라 생각했다.

직장인으로서 아빠를 기억하는 첫 순간은 언제였을까. 내가 유치원생이고 아빠는 신입 사원이던 초 겨울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던, 임직원 가족의 회사 공장 투어가 열렸던 날. 회사 로고가 크게 박힌 바람막이를 입고 성큼 성큼 걸어가던 아빠의 등이 기억난다. 어린 내겐 어찌나 거인처럼 커 보이던지, 새끼 강아지 마냥 그 뒤를 졸졸 쫓았다.

그날 엄마와 나, 아빠는 그의 한 칸 짜리 기숙사에서 옹기종기 붙어 추운 밤을 보냈다. 온통 회색으로 물들었던 칙칙한 기숙사를 나서며, 처음으로 아빠가 외롭겠단 생각을 했다.

그 날의 아빠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20대 후반이었다. 이 맘 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직사각형 뿔테 안경을 쓰고 체크 무늬 남방을 아무렇게나 통바지에 쑤셔 넣은 한 남자가 있다. 순박한 눈매에 풋풋함이 가득했던 젊은 날의 아빠는 누가 봐도 딱 공부만 한 모범생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이런 모범생이 말괄량이 엄마를 어떻게 만났나 늘 궁금했다. 엄마는 아빠가 말 수가 적어 재미는 없었지만, 눈빛 만큼은 엄마를 향한 애정이 가득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골 자락에서 올라 온 서른의 아빠는, 스물 아홉의 도시 여자인 엄마를 만나 1월 1월 정월 초하루에 식을 올렸다. 아빠는 여전히 그 날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 꼽는다.
 엄마와 아빠의 결혼기념일은 1월 1일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늘 새해를 축하함과 동시에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기념 외식을 한다.
ⓒ 송혜림
아빠는 회사 재직 기간 동안 해외 출장이 잦았다. 거실 한 편의 책장은 그가 사 온 기념품들로 무려 네 칸을 채웠다. 어린 나는 기념품들을 만지작거리며 해외 여행을 대신했다. 싱가포르에서 온 머라이언 석상, 베트남에서 온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 마그넷. 기념품마다 얽힌 역사를 물으면, 그는 막힘없이 술술 풀어놓곤 했다.

"출장 갈 때 아빠 캐리어에 나 좀 숨겨주면 안 돼? 정말 조용히 있을게."

내 칭얼거림에 그는 늘 너털웃음 지으며 "아빠는 놀러 가는 게 아니야"라고 말했다. 매번 출장을 다녀온 뒤 잔뜩 지쳐있던 아빠의 등을 나는 미처 보지 못했다.

내가 스무 살이 될 무렵 아빠가 있던 회사가 물적 분할 되어 다른 그룹사에 인수됐다. 당시 우리 가족은 내가 어른 된 기념으로 함께 캄보디아 여행을 떠났는데, 아빠는 작은 나룻배 끝에 쪼그리고 앉아 한 시간 넘게 말 없이 강가를 응시했다. 모든 청춘을 보낸 회사를 자의가 아닌 이유로 떠나야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갑작스레 새 부서, 새 사람들과 일하게 된다는 건 내향적인 아빠한테 꽤나 힘겨운 일이었을 테다.

"아빠는 잘 해낼 거야."

엄마의 말을 들으며 그의 등을 바라봤다. 신입 사원 시절 봤던 등보단 조금 작아져 있었다. 아빠는 다행히 새 회사에서도 잘 적응했고 진급도 척척 해내었다. 어쩌면 가족이란 존재가 곁에 있었기에, 그는 강해져야 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빠를 외면했던 날들

나는 대학 졸업 후 서울에 올라 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아빠와 연락이 드문 드문 해졌다. 나도 애초에 살가운 딸이 아녔고, 아빠도 다정한 성격은 아니었다. 이따금 저녁에 전화하면, 아빠는 항상 동료들과 한 잔 걸치고 잔뜩 취기 오른 투로 전화를 받았다. "우리 딸, 웬일이야?" 그럼 나는 맹한 목소리로 할 말만 툭툭 건네곤 전화를 끊곤 했다. 괜히 통화가 길어져 이직이나 연봉 얘기가 나오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벽으로 1분 채 넘어가지 못했던 수 년 간의 통화들이 이제 서야 아쉽고 원망스럽다. 먼저 좀 전화 좀 하지, 그냥 출근 잘 하셨냐는 뻔한 안부 인사라도 하지. 아빠의 퇴근 후 삶을 달래는 존재가 막걸리 한 잔이 되는 동안, 난 내 삶이 벅차단 이유로 외면해왔던 건 아닌지.

아빠는 몇 해 전부터 꾸준히 퇴직 이후의 삶을 이야기해왔다. 할아버지네 감 밭에 작은 집 짓기, 바닷가에 살며 배 몰기, 엄마랑 캠핑카 사서 전국 여행하기, 리트리버 한 마리 키우기.

일을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아빠의 삶에 처음 찍히는 긴 쉼표. 그는 두려움보단 그간 꿈꿔왔던 다양한 일들을 시도해볼 수 있단 사실에 어린 소년처럼 설레했다. 도시 고향 집도 내년에 부동산 새 매물로 내놓게 됐다. 이왕이면 뭐든 게 편한 도시에서 계속 사셨으면 했지만, 도시에서 평생을 치열하게 사셨던 아빠가 하고 싶은 일은 더 이상 없었다.

한 시대를 무사히 살아 낸 아빠,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천천히 사무실 짐도 정리하고 인수인계 해야겠네."

올해 설, 아빠를 만나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못 본 새에 늘어난 눈가 주름을 둥그렇게 지으며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아빠의 사무실 책상이 생각났다. 그의 책상 위에는 수십 년 간 똑같은 가족 사진이 걸려있었다. 집 근처 대학교에서 찍은 나와 활짝 웃는 젊은 엄마와 아빠. 그 사진을 앞에 두고 울고 웃으며 길고 긴 34년의 회사 생활을 견디어냈을 그. 누군가의 아빠이자 남편이기 전에, 송수종이란 이름으로 한 시대를 무사히 살아 낸 그에게 무한한 자랑스러움과 애틋함을 느낀다.
 아빠, 이제 아침 알람 없이 눈을 뜨고 마당에 핀 감나무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셔도 돼요. 낡은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고, 만년필을 꺼내 묵혀두었던 시들을 마음껏 쓰셔도 되고요.
ⓒ neffaa on Unsplash
아빠, 이제 아침 알람 없이 눈을 뜨고 마당에 핀 감나무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셔도 돼요. 낡은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고, 만년필을 꺼내 묵혀두었던 시들을 마음껏 쓰셔도 되고요. 34년 동안 한결같이 가족이란 섬을 지키기 위해 파도를 막아내셨으니, 이제는 그 섬에 핀 꽃도 보고 파도 소리도 들으며 소년 송수종으로 새로운 삶을 기록해가시길 바라요. 꼭,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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