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에 존재하지 않을 듯한 순애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성태 기자]
역시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해야 할 당신을 위해
- 영화 <파반느>의 오프닝 자막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 오해의 폭은 넓고 유통기한은 영원할지 모를 일이다. 인간 개개인은 그 오해를 안고 살아간다. 인간 개개인이 지닌 개별 언어를 품은 사랑이야말로 인류가 풀어나가는 미스터리다. 그 사랑을 담은 작품들이야말로 대중예술을 지탱하는 원천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랑은 오해다.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가 조심스럽게 되뇌는 테제다. 그 오해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사람들이 평가하는 외모인가, 자본의 크기인가. 그도 아니면 가족이 준 상처나 관계의 우위에서 오는가. 혹은 그의 총합이 좌우하는 마음의 문제인가.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 >, <탈주>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은 <파반느>를 통해 물오른 연출력을 자랑한다. 원작은 2000년대를 풍미했던 소설가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다. <파반느>는 원작이 제시한 외모지상주의와 자본주의를 향한 문제 제기와 이를 바탕으로 누군가의 심금을 울릴 만한 곱지만 야심 차고 예술로서의 자의식이 충만한 청춘멜로다.
한 중년 영화감독은 <파반느> 공개 직후 배창호 감독이 최인호 작가의 동명 소설을 1986년 영화화한 <겨울 나그네>에 비유하기도 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건 아마 2026년엔 존재하기 쉽지 않을 법한 순애보여서 일 것이다.
또 경록(문상민)과 미정(고아성) 커플 사이를 유영하며 큐피트 역할을 하는 청춘 요한(변요한)과의 역학 관계가 돋보여서, <겨울 나그네>와 마찬가지로 원작소설이 다 줄 수 없는 영상미와 음악의 힘을 통한 영화만의 고유한 미학을 자랑해서이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 사랑에 대한 탐구에 나서는 자세에 있어 "배려"가 넘친다. 일차로 요한이 무수히 되뇌는 독백에 그 답이 있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 사람은 남들과 다르다는 오해. 그 사람은 지금 외로울 거라는 오해. 내가 전부일 거라는 오해. 그리고 영원할 거라는 오해."
"모든 사랑은 오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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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파반느> 스틸컷 |
| ⓒ 넷플릭스 |
그런 미정에게 경록이 다가간다. 경록은 잘 나가는 배우가 된 아버지가 못생긴 어머니를 버렸던 가족사에 상처받은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백화점 알바를 하며 마주친 미정의 외모에 대한 편견이 없다. 있는 그대로 미정의 진심을 알아채고 느끼고 보듬는다. 백화점 동료들이, 명품관 여직원들이 미정을 멸시하고 하대하는 것에도 아랑 곳 않는다. 그렇게 사랑이 찾아온다.
"영화는 사랑 영화"라고 강조하는 요한은 "모든 사랑은 오해다"라는 지론의 설파자다. 데이비비드 보위와 핑크 플로이드, 들국화를 애호하는 그는 이 시대 쉽지 않은 보헤미안이다. 백화점 경영주 아들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분방한 그였지만 사실 실제 오너의 아들이었다. 다만 첩의 아들이었을 뿐. 요한은 미정을 알아본 경록에게 친구로서 힘을 실어 준다.
이것은 사랑의 빛에 관한 절절한 편지다. 이름을 불러줬을 때 꽃이 되는 관계는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맞지 않다는 선언이다. <파반느>는 외모가 돈이 되는 세상에서 상대방의 못생긴 외모조차 가릴 수 없는 내면을 빛을 받을 수 있겠느냐 묻고 또 답한다.
경록과 미정이 만나고 다가서고 좋아하고 떠나가고 다시 만나는 과정이야말로 상대방이 발산하는 빛을 발견하고 받아들이고 그에 또 영향받는 사랑의 상상력에 관한 순도 높은 드라마다. <파반느>는 인디언의 이야기를 빌려 사랑의 시작이야말로 "걸음이 늦은 영혼이 따라오지 못 할까 봐 기다리는 배려"로부터 완성된다고 역설한다. 이에 공감하지 못할 이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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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파반느> 스틸컷 |
| ⓒ 넷플릭스 |
이종필 감독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 보리라 작정한 듯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인용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박민규 작가가 소설 표지로 인용했던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17세기 작품 <시녀들>은 그림과 실재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종필 감독은 영화 속 '미술관 옆 클래식' 전시 포스터로 <시녀들>을 가져와 외모와 미추의 경계를 뛰어넘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직접적인 은유로 활용한다.
<시녀들>에 이어 사진에 시간개념을 도입했다는 사진작가 듀안 마이클의 'this photograph is my proof'란 작품도 직접 등장한다. 해당 사진 속 남녀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 변해가는 애정을 상징하는데, 경록과 미정이 만나고 떠나고 또 다시 만날 거라는 사랑과 상상력에 대한 함축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런 레퍼런스는 또 있다. <파반느>는 <아비정전>을 필두로 왕가위 감독의 유명한 명장면 속 미장센들을 오마주한다. 요한은 "결국 사랑은 상상하는 일이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기를 꿈꾸며 살아가는 그 무엇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상상력이 사랑을 망치기도, 헤어짐을 불러오기도 한다. 대학에 입학한 경록의 생활을 마주한 미정이 딱 그랬다. 버림받기 싫어 이별을 택하는 슬픈 연애담의 대가가 바로 왕가위 감독 아니던가.
<파반느>의 정서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건 클래식 음악들이다.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곡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과 발퇴펠의 '스케이터스 왈츠'를 위시해 엔딩 크레디트에서 재확인할 수 있는 다수의 클래식 넘버들이 미정과 경록의 아련하고도 순수한 사랑이 청각적, 정서적 BGM이 되어준다. 예술로서의 자의식 운운한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도, 사랑하는 순간에 하늘에 펼쳐지는 무지개도, 운명적인 순간에 내리는 폭설 모두 경록과 미정의 순애보와 함께하는 영화적인 동반자들이다. 무엇보다 말을 타고 달리다 잠시 말에서 내리는 인디언들의 배려, 즉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배려야말로 <파반느>가 북돋우는 '사랑의 상상력'의 요체일 것이다.
일본과 대만의 청춘멜로가 극장가를 지배하는 시대다. 그 리메이크 버전이 또 젊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는 시절이다. 바로 이때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클래식을 경유해 어쩌면 멀게는 8090과 2000년대 정서에 가까운 순애보를 설파하는 <파반느>는 분명 스크린을 통해 다시 보고프게 만드는, 중층적인 순백의 멜로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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