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 해장국이 그리워 해 뜨기 전 양양으로
김선아 2026. 2. 24. 14:02
서피비치와 낙산사까지 당일치기 가족여행
[김선아 기자]
긴 겨울방학을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의미 있게 시작하고 싶었다. 연휴의 끝자락, 우리는 즉흥적으로 온 가족이 다음날 새벽에 양양으로 향하기로 했다. 방학과 새해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그곳의 황태해장국 한 그릇이 몹시 그리웠기 때문이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6시 몇 번이나 오간 길이지만 밤길은 낯설고 긴장됐다.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떠오르자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같은 길이라도 '해가 있음'과 '없음'의 차이는 이렇게 컸다.
오전 8시쯤 도착한 식당 앞에는 벌써 열 팀 정도 대기가 있었다. 30분을 기다리고서야 황태해장국을 마주했다. 예전 주방과 홀을 오가던 아주머니들 대신 외국인 노동자들이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작은 시골 식당 안에서도 시대의 변화를 실감했다. 그래도 맛은 여전했다.
어린 시절엔 공깃밥을 추가해 반찬으로 나온 가자미 구이만 먹던 아이가, 이제는 제 몫 한 그릇을 너끈히 비워냈다. 그 모습이 새삼 대견했다. 다만 반찬 수가 예전보다 줄어든 건 조금 아쉬웠다. 물가 탓이겠거니 이해하면서도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
|
| ▲ 양양 황태해장국 |
| ⓒ 김선아 |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서피비치로 향했다. 여름이면 젊음이 들끓는 그곳은 올해 여름을 준비를 위해 공사 중이었다. 다행히 바닷가 산책은 가능했다. 아이는 파도를 따라다니며 장난을 치다 결국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준비해간 여벌 옷으로 갈아입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여행은 이렇게 즉흥적인 순간이 추억이 되고 있었다.
|
|
| ▲ 서피비치 |
| ⓒ 김선아 |
새해에 찾은 동해를 품은 천년 고찰, 낙산사
그리고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지, 낙산사로 향했다. 강원도를 여러 번 왔으면서도 늘 다음번으로 미루어졌던 곳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산의 오르막길과 계단들이 부담스러웠고, 여름엔 물놀이에 눈이 먼저 갔다. 드디어 일주문을 들어서 조금 걸으니 울창한 소나무 숲이 맞이해 줬다. 솔향이 코끝에 번지는 순간,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그동안 마음 한구석 쌓였던 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
|
| ▲ 낙산사의 소나무 숲 |
| ⓒ 김선아 |
사적 제495호이자 명승 제27호인 낙산사는 671년(신라 문무왕 1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의상대사가 기도를 하다 관세음보살이 가르쳐 준 곳에 법당을 지은 후 낙산사라 이름을 붙였다는 창건 설화가 전해진다.
원통보전의 건칠관세음보살상(보물 제1362호)과 칠층석탑(보물 제499호), 그리고 바다를 내려다보는 의상대(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제48호)와 홍련암(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제36호) 까지, 곳곳이 문화유산으로 가득했다.
|
|
| ▲ 낙산사 홍련암을 바라본 모습 |
| ⓒ 김선아 |
특히 바다를 마주한 의상대와 홍련암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의상대를 지나 홍련암으로 오르는 계단 옆 연하당 처마 끝의 풍경이 유독 눈길을 사로잡았다. 바닷가 사찰답게 물고기 모양이었다. 파도 소리와 풍경 소리가 어우러지며 절로 마음이 고요해졌다.
|
|
| ▲ 낙산사 연하당의 물고기모양 풍경 |
| ⓒ 김선아 |
홍련암에는 용왕을 모신 전각이 따로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안고 절을 올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앞날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나 역시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소원을 빌었다.
|
|
| ▲ 낙산사의 해수관음상 |
| ⓒ 김선아 |
산 정상에 우뚝 선 해수관음상은 자비롭고도 단단한 표정으로 동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날따라 바람이 거셌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더 굳건해 보였다. '나도 저렇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 절을 올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사천왕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다
내려오는 길, 사천왕상 앞에서 발이 멈췄다. 안내문에는 낙산사 사천왕이 6·25 전쟁과 2005년 대화재를 모두 이겨내고 도량수호의 원력을 지켜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동쪽의 지국천왕은 학업과 시험 합격을, 서쪽의 광목천왕은 사업 번창과 재수 대통을, 남쪽의 증장천왕은 직장 안정과 부동산 안녕을, 북쪽의 다문천왕은 건강과 가정화목을 관장한다 했다. 처음엔 한 분께만 빌려 했으나, 내려놓지 못할 소원이 너무 많았다. 결국 네 분 모두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
|
| ▲ 낙산사의 사천왕 |
| ⓒ 김선아 |
길 곳곳에는 돌탑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작은 돌을 하나씩 올려 쌓은 탑들, 누군가의 소원을 담아 정성것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었지만 그 앞에 왠지 숙연해졌다. 저 돌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 모두 잘 살고 싶어서 이렇게 애쓰는 거구나.
|
|
| ▲ 낙산사의 돌탑들 |
| ⓒ 김선아 |
우리도 돌탑을 쌓으며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새해 소원, 가족 이야기,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가족 모두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절이 가진 힘이란 게 이런 것인가 싶었다. 양양의 바다와 낙산사의 바람 속에서 우리는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해장국 한 그릇으로 시작한 하루가 이렇게 깊어질 줄은 몰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마이뉴스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이러다 진짜 미국 내전? 한국에도 퍼져있는 무서운 사람들
- '쇼핑백 속 1억 몰랐다'는 강선우, 경찰이 거짓이라고 본 근거는?
- 사법개혁 3법 국회 통과 목전... 조희대, 전국법원장회의 긴급 소집
- 어린 아이들에게 가혹한 기다림 고문.... 대통령은 아는가?
- 강용흘의 초당은 왜 미국 문단의 '금세기의 책'이 되었나
- 이 대통령 "권력이 사욕 버리면 부동산 정상화 쉽다, 국민이 원하니까"
- 얼어버린 텍사스...한국 반도체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 법사위, 전남광주 통합법 여당 주도 통과... 충남대전·대구경북 보류
- '투기용 농지' 겨냥한 이 대통령, '매각명령'도 거론
- 고 백기완 선생 배우자 김정숙 여사 별세... 향년 93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