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와 함께 오른 산길,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홍미식 기자]
설 연휴 중 남편은 상갓집으로, 나는 둘째 오빠네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연세도 많으신데다 병마와 싸우느라 허약해진 오빠를 생각하면 아려오는 마음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뵈러 갈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며 애써 추스른다.
큰오빠가 돌아가시고 논의 끝에 셋째오빠에게 옮겨간 부모님의 제사. 아버지는 설날 다음날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친구 분들은 자손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가족들이 모이는 설날에 맞춰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셨다. 제사를 가장 중요한 가족 행사로 여기는 둘째오빠가 병환으로 함께하시지 못한 것이 3년째, 부모님께 술 한잔 따라드리지 못하고 멀리서 마음으로만 잔을 올리는 오빠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면 또 울컥해진다.
외출도 어려우신 편이라 사람이 그리우실 텐데, 연세 드실수록 형제가 보고 싶지 않겠나 싶어 막내오빠네 가족까지 모두 모여 제사를 지내는 셋째오빠네 대신 둘째오빠를 뵈러 갔다. 하나 밖에 없는 막내여동생을 맞이하는 오빠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돈다. 오빠 앞에서만 서면 어린시절로 돌아간다. 어린아이처럼 몇번이고 지난 시절의 추억을 들추어내며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으신가보다.
|
|
| ▲ 엄마, 아버지의 집 |
| ⓒ 홍미식 |
하지만 부모님이 납골당이나 공원묘지에 계신 것도 아니고, 차가 들어가지 않는 산 속에 산소가 있으니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다.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몸으로 산소에 가고 싶어하는 오빠의 간절한 마음을, 세대와 가치관이 다른 조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건 너무도 당연하다. 벌써 몇 년째 집에서 간병하는 것만으로도 넘치게 애쓰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온전히 그 모든 걸 감당해야 하니 새언니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오빠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나이 차는 많지만 한 공간에서 같은 감성을 느끼며 자란, 한때는 매일 아버지의 산소를 산책 삼아 오르던, 마음의 위안이 필요할 때마다 찾아가 용기를 얻었던 경험을 공유한 나밖에 없는데... 이행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모른 척하기도 어려웠다. 한참의 망설임과 논의 끝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일단 나서기로 했다. 가다가 포기하더라도 한번은 최대한 하는 데까지 노력해 봐야 한다는 게 결론이었다.
끝까지 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더 이상은 갈 수 없으니 돌아가자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느끼고 당신 스스로 포기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담요까지 두툼하게 챙겨 들고 조카 둘과 함께 집을 나섰다. 얼마나 갔을까, 한걸음 뒤에서 따라오던 조카가 우리를 불렀다. 마침 누나집을 방문하러 오던 새언니의 동생이 이 모습을 보고 따라오신 것이다. 오빠를 차에 태우고, 휠체어를 실었다. 어디까지 가든 지원군이 한 분 늘었으니 마음이 든든했다.
산으로 접어들었다.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낙엽이 쌓인 산길로 오빠를 모시고 가기는 쉽지 않았다. 슬며시 포기하시길 종용하며 더 가실 수 있겠냐고 여쭈니 가시겠단다. 하긴 여기서 말 거였으면 나서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오빠는 지팡이를 잡았다. 양쪽에서 오빠의 팔을 끼고 산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얼었다 살짝 녹아 푹신하게 낙엽이 쌓인, 그래도 나뭇잎들이 무성하지 않아 다행인 길을 내가 앞장서 터주었다.
지척이 천리인 듯,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이 얼마나 힘들까. 몇번이고 쉬시면서도 그만 가자는 말에 대답 대신 힘겹게 걸음을 옮기신다. 간절하면 통한다던가? 그 시점에 사돈을 만난 것도 그렇고, 오로지 산소를 향한 간절한 마음이 오빠의 몸 안에 남아있는 한 방울의 체력까지 끌어올렸나보다.
가까스로 산소에 도착했다. 우리 산소는 2단으로 되어있다. 아랫단에 큰오빠가 모셔져있고 윗단에 엄마, 아버지를 합장으로 모신 합장묘가 있다. 작은오빠가 큰오빠 산소 옆에서 마지막 힘을 끌어냈지만 경사로를 오르는 게 불가능하다.
오빠 대신 잔을 올리며
"오빠 대신 제가. 오빠 거 한잔, 제 거 한잔해서 두번을 올릴 테니 오빠는 여기서 보고 계세요."
바로 아래에서 바라다보여선지 다행히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신다. 돗자리를 깔고, 담요까지 덮어드린 후 부모님 산소를 둘러보던 참에 오빠를 보니 추운지 몸을 바달바들 떨고 계셨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모두에게 먼저 내려가 집으로 돌아 가시라고 했다. 내려보내고 나니 공포가 엄습해왔다.
'잘 내려가실 수 있으려나? 응급실도 자주 가시는 분인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괜한 짓 한 것은 아닐까.'
|
|
| ▲ 사랑과 추억이 머무는 공간 |
| ⓒ 홍미식 |
두번째로 내가 드리는 잔을 올리면서도 그렇게 빌었다. 큰오빠께 잔을 올린 후 서둘러 정리하고 내려오는 마음이 조급했다. 주차된 곳까지 내려와보니 차는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다행히 오빠는 안정을 되찾고 앉아 계셨다. '성묘 대장정'을 마치고 무사히 집에 도착한 것에 무한히 감사하며 오빠에게 물었다.
"오빠, 산소에 다녀오셔서 좋으셨어요?"
화색이 돌아온 오빠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행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런데 오빠,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이제 다녀오셨으니 정말로 또 가자 하면 안돼요."
이렇게 무사히 마치고 나니 오빠는 기뻐하셨다. 시댁을 거쳐 합류한 조카들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새언니는 늘 산소를 가고 싶어하셨는데 이렇게 다녀와서 좋다고, 숙제였는데 큰일했다고, 고모가 고생 많았다고 말해줬다. 결과가 행복하게 마무리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집에 돌아와 잠시 생각해봤다. 과연 이 과감한 시도가 잘한 것인지, 무리한 도전은 아니었는지, 당신 몸도 불편하신데 그렇게 어렵게 부모님 산소를 가시려는 의미는 무엇인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하루였다. 오빠가 조금 더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그래서 집안의 어른으로 오래오래 버텨주시기를 새해 소망으로 적어본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얼어버린 텍사스...한국 반도체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 지하철 표지 바꿨더니 환승 8분 줄었다...이 디자인의 마법
- 어린 아이들에게 가혹한 기다림 고문.... 대통령은 아는가?
- 정치공작 일삼던 국정원이 윤석열 내란 때 조용했던 이유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국민을 위해
- 이 대통령 "처음부터 친구 같았다"... 룰라 "형제처럼 느껴진다"
- 국힘은 왜 부동산 정책이 없을까
- 부산시장여론조사 전재수 43.3% 또 앞서, 박형준은 34.6%
- '열매'가 더는 필요하지 않은 미래 위해, '열매'를 만듭니다
- 이 대통령 "권력이 사욕 버리면 부동산 정상화 쉽다, 국민이 원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