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1세의 최후, '윤 어게인'의 미망 [장세정의 시시각각]

장세정 2026. 2. 2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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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

1649년 1월 30일 잉글랜드 국왕 찰스 1세가 단두대에서 참수됐다. 찰스 1세를 지지하던 왕당파가 의회 주권을 앞세운 의회파에 두 차례 내전에서 패하자 특별재판소는 폭정과 내전 유발 책임을 물어 찰스 1세에게 반역죄를 선고했다. 찰스 1세는 신이 부여한 왕권은 의회나 백성보다 위에 있다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처형 직전 최후 연설에서도 고수했다. "국민의 순교자"를 자처한 그는 서양사에서 암살이 아니라 공개 처형된 최초의 군주다.

안토니 반 다이크가 그린 찰스 1세 초상화. 찰스 1세는 48세에 반란죄로 참수됐다. [위키피디아]

11년 뒤 장남(찰스 2세)이 왕위에 오르자 찰스 1세의 반역죄는 무죄로 번복된다. 찰스 1세 처형을 주도했던 올리버 크롬웰은 부관참시 당했고, 판사들은 사지절단 형을 받았다. 하지만 절대왕정은 또다시 역풍을 맞는다. 찰스 2세를 뒤이은 동생 제임스 2세는 가톨릭 신봉자였는데 개신교 중심의 의회파에 밀리자 1688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제임스 2세 축출 이듬해 의회 권한을 명시한 권리장전이 제정되면서 영국은 국왕의 전제정치를 견제하는 의회 주권이 확립됐다.

「 의회에 군 투입해 몰락한 공통점
목적 옳아도 계엄 정당성 못 얻어
헌정사에 오점, 통렬하게 참회를

영국사에서 극적인 장면을 소환한 것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재판에서 불쑥 찰스 1세 이름이 등장해서다. 지귀연 부장판사는 1133쪽 분량의 방대한 판결문 속에 '내란죄의 연원'을 이례적으로 17쪽이나 할애했다. 로마법·게르만법·교회법뿐 아니라 프로이센과 독일제국 형법은 물론, 일본·독일·대만·스위스·프랑스·미국 형법까지 꼼꼼히 검토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1심에서 내란 우두머리죄를 적용해 무기징역 형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부장판사. [연합뉴스]


현직 대통령이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발동해 내란 혐의로 기소된 충격적 사건의 유무죄를 판단하면서 재판부가 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내란으로 볼 수 있느냐를 놓고 헌법 학자들의 견해가 엇갈린 상황에서 중압감이 엄청났을 것이다.

재판부는 17세기 잉글랜드에서 벌어진 찰스 1세와 의회 세력의 유혈 충돌 역사에서 내란죄 적용의 영감과 논리를 찾은 듯하다. '(당시 영국은) 반역이 국왕에 대한 범죄라는 생각이 퍼져 있던 시대였음에도 국왕이 국가에 대해 반역을 행했다고 결정한 찰스 1세 사형 판결은 국왕도 국가, 즉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의회를 공격함으로써 주권을 침해해 반역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인식을 퍼뜨린 판결로 이해된다.' 판결문 1003~1004쪽에 담긴 내용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오른쪽 아래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서울중앙지법 제공]

실제로 찰스 1세는 종교 정책과 세금 징수 문제 등으로 극한 갈등을 빚던 의회에 군대를 투입해 해산했다. 지귀연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 당시 헌법기관인 국회와 선관위에 무장한 군 병력을 투입한 행위가 형법 87조 내란죄 구성 요건(국헌 문란이라는 목적과 폭동)을 충족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비상계엄을 대통령의 권한으로 보면서도 "12·3 계엄은 폭동을 수반한 내란"이라고 판단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을 놓고 좌우 진영 모두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보면 솔로몬 판결은 아니더라도 편파 판결로 매도하기 어렵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 선포 이유에 대해 "거대 야당의 국회 독재로 인한 국가 비상사태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호소였다"며 계몽령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지귀연 부장판사는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며 일축했다. 설령 국가적 위기 타개라는 동기와 목적이 옳았더라도 불법 계엄엔 정당성이 없다는 취지다.

지난해 11월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지도부. [연합뉴스]

무기징역 선고 이튿날 윤 전 대통령은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많은 좌절과 고난을 겪게 해드려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지만, 합법적 위기 해법을 찾지 않고 불법 계엄을 발동한 책임에 대한 진솔한 사과는 아니었다. "계엄이 구국의 결단"이란 변명은 찰스 1세의 순교자 주장만큼이나 생뚱맞다. 헌정사에 남긴 오점을 통렬하게 참회해도 부족한데, 계엄의 망상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것인가. 그런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의 '윤 어게인 미망(迷妄)'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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