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렬의 과학산책] 공명

2026. 2. 2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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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렬 KAIST 교수

화학공학자의 길을 직접 걷지는 않았지만, 유기화학 시간에서 얻은 깨달음은 여전히 삶의 이정표로 남아 있다. 그것은 자연 현상과 사회 현상의 절묘한 유사성이다.

19세기 독일의 화학자 케쿨레는 꿈속에서 자신의 꼬리를 문 뱀의 형상을 보고 벤젠의 육각형 구조를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여섯 개의 탄소가 결합한 벤젠의 고리는 단일결합과 이중결합이 경쟁하지 않는 독특한 질서를 가진다. ‘다름이 함께’하며 훨씬 견고한 구조를 만드는 화학적 현상, 이를 ‘공명’이라 부른다.

벤젠 화학식


공명이 주는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는 안정성이다. 전자들이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고리 전체를 자유롭게 흐르기에 에너지는 낮아지고 구조는 안정화된다. 둘째는 다양성이다. 안정한 고리를 바탕으로 그래핀·아스피린 등 수많은 화합물을 탄생시킨 출발점이 되었다. 견고한 질서가 오히려 무한한 변주의 토대가 된 셈이다.

우리 사회 역시 이 원리를 닮았다. 공명은 단순히 상태를 오가는 탈바꿈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가능성’의 미학이다. 서로 다른 삶의 양식들이 각자의 고유성을 지키면서도 경계를 허물어 함께 연결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생각과 힘이 특정 위치에 고착되지 않고 사회 전체로 흐를 때, 그 사회는 외부의 충격에도 쉽게 깨지지 않는 견고한 회복력을 지니게 된다.

병오년(丙午年)을 맞으며 우리에겐 대결하는 세계와 파편화된 개인을 다시 잇는 과학적 상상력이 절실하다. 공명이라는 자연의 섭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연대의 소중함을 역설한다. 다름을 오류로 취급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억겁의 시간을 버텨온 벤젠의 육각형 고리처럼, 단단한 ‘공명(共鳴)’으로 급변하는 사회적 진통을 이겨낼 수 있다. 우리는 각자 홀로 서되 함께 흐름으로써 비로소 안정한 상태에 도달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박경렬 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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