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은 사법심사 대상 아니다? 지귀연 재판부의 '위험한 궤변'
[정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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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전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서 지귀연 부장판사가 선고 요지를 설명하고 있다. |
| ⓒ 서울중앙지법 |
여기서는 무기징역이라는 형량의 적정성과는 별개로 계엄 자체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판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재판부는 계엄선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통치행위로서 대통령의 재량행위이고, 따라서 그 자체로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고전적 통치행위이론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는 1997년 전두환 신군부의 내란 사건에서 대법원이 판시한 법리를 차용한 것이다. 당시 신군부 측은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통치행위론'을 주장했는데, 이에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계엄선포 요건 구비나 부당성 여부를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지만,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 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진 경우 심사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런데 1997년의 대법원 판례와 이번 지귀연 재판부의 판시는 그 전제가 잘못된 것이다. 2심 내란전담재판부에서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판시가 시정되지 않고 확립된다면 앞으로 헌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다양한 통치행위에 대하여 사법심사를 면제해 주는 아주 잘못된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통치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 어떤 국가작용도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고, 따라서 사법적 통제를 벗어날 수 없다.
통치행위에 관한 판례와 학설
전통적으로 통치행위란 대통령의 계엄선포, 긴급명령이나 긴급재정경제명령, 사면행위, 조약체결 등 고도의 정치적·외교적 행위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국가작용을 의미했다. 이러한 행위는 대통령의 정치적인 재량행위이므로 법원은 사법심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고전적 통치행위 이론은 거의 폐기되어 통치행위라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국내외의 대체적인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법원은 1997. 4. 17. 96도3376 판결에서 "계엄선포의 요건 구비 여부나 선포의 당·부당을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고 할 것이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여 원칙적으로 계엄선포 등 통치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는 "… 계엄에 대하여서는 그 계엄의 선포가 옳고 그른 것은 국회에서 판단하는 것이고 법원에서 판단할 수 없다"고 판시한 그 이전 대법원 판례(대판 1964. 7. 21. 64초6)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그 이후 변경된다. 2004. 3. 26. 2003도7878 판결이 그것이다. 대법원은 이 판례에서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
"통치행위의 개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과도한 사법심사의 자제가 기본권을 보장하고 법치주의 이념을 구현하여야 할 법원의 책무를 태만히 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그 인정을 지극히 신중하게 하여야 하며, 그 판단은 오로지 사법부만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즉 대법원은 통치행위의 개념을 인정하더라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법치주의를 위반할 경우에는 당연히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입장으로 상당부분 변경된 것이다. 여기서 '법치주의를 위반할 경우'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할 경우'를 뜻하기 때문에 통치행위라도 그 자체만으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다면 당연히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이다.
헌법재판소가 설치되기 이전에는 통치행위에 대하여 대법원이 심사할 수밖에 없었으나, 헌재의 설립 이후에는 정치적 성격을 띠고 헌법위반이 문제되는 통치행위는 대부분 헌재의 관할이 되었다. 헌재는 설립 이후 통치행위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 예컨대 통치행위에 관한 표준적인 판례인 대통령의 긴급재정명령 등 위헌확인사건(1996. 2. 29. 93헌마186)에서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은 국가긴급권의 일종으로서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발동되는 행위이고 그 결단을 존중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는 행위라는 의미에서 이른바 통치행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나, 통치행위를 포함하여 모든 국가작용은 국민의 기본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한계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고,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사명으로 하는 국가기관이므로 비록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행해지는 국가작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된다."
지당한 판례이다. 모든 국가권력은 자기목적적인 것이 아니고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아무리 고도의 정치성을 띤 통치행위라도 그것이 헌법에 부합되고 기본권을 실현할 때에만 정당화된다. 따라서 그것이 헌법에 위반되어 기본권을 침해한다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어 통제되고 침해된 기본권을 구제해야 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또한 이러한 공권력 통제와 헌법수호 및 기본권구제가 사법제도의 본질적 임무라는 점을 상기할 때 만일 통치행위라는 미명하에 이를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이는 바로 사법부의 직무유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우리 사법제도의 모델인 독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통치행위를 비롯한 모든 국가작용을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보고 통제해 오고 있다. 심지어 가장 전형적인 통치행위이자 국가원수의 대표적 재량행위라고 분류되는 사면권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라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과거 고도의 정치성을 띤 외교에 관한 행위가 문제가 된 이른바 동·서독 기본조약 사건에서 문제 된 동·서독 기본조약에 대하여 사법심사를 했다. 아울러 지금까지도 국내 상당수 학자들이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통치행위인 사면행위에 대한 사법심사의 가능성 여부에 대하여 연방헌법재판소(제2부)는 4 : 4의 가부동수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연방헌법재판소법에 따라 가부동수인 경우에는 위헌임을 확인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 사면행위가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4명의 재판관은 사면행위가 순수한 정치행위라는 이유로 사법심사를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면행위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다른 4명의 재판관은 비록 사면행위가 국가원수의 재량행위라고 할지라도 자의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안되고, 당연히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따라서 평등원칙 등의 위반 여부를 심사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 후 사면행위가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재판관 4명의 의견은 학계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오늘날 독일의 통설은 사면행위나 그의 취소는 당연히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고, 평등원칙 등의 위반 여부가 심사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독일의 학설과 판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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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촛불행동, 사법부 규탄 촛불행동 주최로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윤석열 사형선고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를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 ⓒ 이정민 |
어떠한 국가작용도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헌법과 국가권력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의 기본권 등 헌법의 핵심적 가치를 보호하고 실현시킨다는 점, 그리고 사법부의 임무가 이러한 가치의 실현을 감시하고 보장하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통치행위를 비롯한 모든 국가작용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국가권력의 권위와 신뢰가 구축되고, 국민으로부터의 사법권에 대한 신뢰와 권위 및 독립성이 확립될 수 있는 것이다.
통치행위에 대해 사법심사를 하자는 것은 통치행위의 헌법과 법률위반 여부라는 법적인 심사를 하자는 것이지 정치적 심사를 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재량행위라는 이유로 통치행위 자체에 대한 사법심사를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법치주의와 헌법을 유린하고 사법제도의 근간을 파괴하는 것이다.
결국 계엄선포 자체는 원칙적으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1심 법원의 판시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판시가 미래의 헌정 과정에서 있을 수도 있는 또 다른 통치행위에 대한 면죄부로 굳어질까 우려된다. 2심 내란전담재판부에서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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