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숙청한 수양, 결국 벌받은 걸까?
[최경식 기자]
오랜만에 국내 극장가를 달구는 영화가 등장했다.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다. 명절을 거치며 400만 관객을 끌어들였고, 앞으로도 더 많은 관객이 볼 것으로 전망된다. 영화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의 이야기를 담았다. 대체로 '웃기고 슬펐다'는 반응이다. 초중반에는 유해진 배우 등의 익살스러운 연기로 재미가 넘쳤지만, 후반에는 단종의 비극적인 최후가 그려지면서 눈물을 쏟게 했다는 것이다.
사실 단종의 전반적인 삶 자체가 기구하고 슬프다. 단종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씨를 잃었다. 이후 할아버지(세종), 할머니(소헌왕후), 아버지(문종)를 잇달아 잃었다. 완벽에 가까운 정통성을 갖고 태어났지만, 든든한 후견인들이 하나둘 떠나가면서 매우 불안정한 존재가 됐다. 결국 숙부인 수양대군의 쿠데타로 왕위를 빼앗겼고, 저 멀리 강원도 영월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나마 영화 개봉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단종의 삶과 죽음에 대해 알게 돼 기쁘다. 유배지였던 영월 청령포에는 그 어느 때보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고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단종을 애도하고 수양에 대해 원망을 쏟아 놓는다. 단종은 애정과 동정의 대상이지만, 수양은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다. 비록 당대에는 역사가 뒤틀렸지만, 후대에는 역사의 정의가 바로잡힌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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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장면 |
| ⓒ ㈜쇼박스 |
수양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으며, 스트레스가 격화돼 피부병은 더욱 심해졌다. 수양은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전국에 있는 온천과 사찰을 찾아다녔다. 말년에 이르러 한없이 나약해진 초라한 인간의 모습이 여실히 나타났다.
<왕과 사는 남자>에서 유지태가 연기한 한명회는 관객들의 분노를 유발하는 빌런의 모습을 보여줬다. 한명회는 계유정난의 설계자이자 수양의 최측근이었다. 수양의 치세는 물론 그 이후에도 상당 기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군왕 두 명의 장인이기도 했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천수까지 누리다 갔으니, 당대에는 사마천이 말한 '하늘의 도'라는 게 과연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한명회는 죽은 뒤에 목이 잘렸다. 이른바 '부관참시'를 당했다.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 사사사건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사후에 시신이 크게 훼손됐다는 측면에서 매우 가혹한 형벌이었다. 더욱이 시신은 현재 소재를 파악할 수조차 없으며, 가묘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한명회는 그 뒤로 간신이자 역적의 대명사로 낙인찍혀 지속적으로 손가락질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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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장면 |
| ⓒ ㈜쇼박스 |
숙종은 나름대로 유교적 도덕 질서를 재정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동기도 있었다. 당시 정치권의 주류 세력이었던 서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서인의 본류는 사림으로, 이들은 세조의 친위 세력이었던 훈구파와 대립하며 성장했다. 일찍이 세조 집권의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했으며, 단종의 복권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중종 등 이전 군왕들의 시대에는 완수될 수 없었던 숙원 사업이 숙종을 만나서야 비로소 완수될 수 있었다. 다만 한계점도 있었다. 숙종은 세조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세조를 부정할 경우, (세조의 혈통인) 이후 군왕들의 정통성이 모두 부정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숙종 대에서 시작된 단종 복권 운동은 영정조 시대 등에도 계속됐다. 그러면서 단종은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완전히 되살아났다. 현재 전국 각지에서는 단종을 기리는 문화제가 많이 열리고 있고, 각종 매체에서 단종 관련한 프로그램들을 내보내고 있다. 반면 수양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기억한다. 수양의 정치적 업적이 결코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은 망각할 따름이다. 사람들은 업적보다 정의의 가치를 훨씬 중시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단종은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그렇기에 단종은 더 이상 불행하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최경식 기자의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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