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역사상 가장 성공작 된 이 영화, 불온하다 여기는 까닭
김성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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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웃 오브 네스트 스틸컷 |
|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
이야기는 이렇다. 한때 사악한 마법사의 위협으로 존망의 위기에 놓였던 카스틸리아 왕국이 있다. 다행히 일곱 마리(카스틸리아 왕국은 동물들의 나라이므로)의 용사가 일어나 마법사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일곱 용사는 어떻게 됐을까? 그를 아는 이는 세상에 몇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이들의 수장이었던 수탉 '자오'가 카스틸리아의 황제가 돼 나라를 통치했다는 사실만이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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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웃 오브 네스트 스틸컷 |
|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
주인공 아서는 견습 이발사이자 배달부인 염소다. 왕실 이발사였던 두꺼비 토드의 수제자인 그는 사부에게 무예와 이발을 전수받는 한편으로, 동네 가게에서 디저트를 배달하는 일로 생계를 꾸려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서의 앞에 웬 여우가 나타나 토드를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일곱 개의 알을 가방에 담고 있는 여우는 토드의 오랜 친구로, '검은발톱단'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단체에게 쫓기고 있다. 여우를 만난 토드는 곧장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다. 알들은 왕자 데미안의 아직 부화하지 못한 자식들로, 여우는 모종의 음모를 피해 전대의 은둔고수인 토드를 찾아온 것. 그로부터 아서의 모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Out of nest', 직역해 '둥지 바깥'이란 제목은 중의적이다. 왕실의 둥지에서 사라진 일곱 개의 알인 동시에 토드의 보호에서 벗어나 모험에 나서게 된 아서의 이야기인 것이다. 아서는 토드와 여우 캐니스가 추적해온 검은발톱단을 저지하는 동안 알들을 떠맡아 도망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사부의 당부에 따라 도망치는 아서의 뒤를 무시무시한 검은발톱단이 숨 가쁘게 뒤쫓는다. 왕국의 존망이 어쩌면 동네 견습 이발사 아서의 어깨에 달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웃 오브 네스트>는 전형적인 동화적 애니메이션이다. 위기에 빠진 왕국이 있고, 악당의 음모가 있으며, 그에 맞서 질서를 복원하는 용사들이 있다. 선과 악의 대립과 권선징악의 결말 또한 있다. 갈등을 극복하고 일어나는 용기와, 간신히 이뤄지는 성취, 그리고 성장 또한 있다. 다분히 교훈적이고 안온하여 아름답기까지 하다. 세상은 평화와 질서를 되찾는다. 선한 모두가 행복하다.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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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웃 오브 네스트 스틸컷 |
|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
무수히 많은 디즈니 영화에서 영웅들은 어려움과 위험에 직면하지만 결국에는 진정한 자신을 찾고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을 따름으로써 승리한다. 하지만 <인사이드 아웃>은 이런 신화를 무참히 해체한다. 인간에 관한 최신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라일리의 뇌 속을 탐험하는 여정으로 관객을 이끄는데, 라일리에게는 진정한 자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라일리는 사실상 서로 갈등하는 생화학적 기제의 합산으로 운영되는 대형 로봇이다.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375p
작품이 '생화학적 기제를 귀여운 만화주인공으로 인격화'한 탓으로 관객들은 이 영화의 불편한 이면을 무리 없이, 심지어 친근하게까지 받아들인다. 영혼, 자아, 자유의지 등 이전 시대의 인간의 존재와 밀접히 붙어 있던 인격적 개념들이 이 작품 가운데선 배제된다. 신경생물학이며 철학적 관점에서, 또 AI시대의 인간성을 고려할 때 대단히 논란이 될 만한 설정임에도 관객, 심지어 당대 평론가들 중에선 이를 지적하는 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나는 그를 민망하게 여긴다.
<아웃 오브 네스트>는 어떠한가. 나는 이 영화에서 이 시대의 표준이 되어선 안 될 불온한 알레고리를 본다. 영화 속 아서는 전대의 영웅, 그러니까 사악한 마법사를 물리쳤던 두 용사의 자식이다. 그를 은둔한 또 다른 용사인 토드가 거두어 키웠다. 토드가 열심히 살아가는 다른 제자들이 아니라 철없고 무책임하기까지 한 아서에게 일곱 개의 알을 맡기는 건 그에게 이런 특별함이 있어서다. 오로지 그만 모르는 출생의 비밀, 남다른 혈통 말이다. 아서는 선택받은 영웅이다.
아서 뿐이 아니다. 카스틸리아 왕국을 이끌 일곱 명의 왕손들은 어떠한가. 알에서 부화한 일곱 병아리들은 나오자마자 저마다의 분명한 특징들을 가졌다. 알에서 나오자마자 검은발톱단 고수들에게 위협을 가할 만큼 강력한 힘과 기술을 가진 녀석이 있고,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녀석도 있다. 각기 다른 일곱 가지 자질은 모두가 국왕 자오의 자질들을 물려받은 결과라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의 유전적 전승을 넘어 이미 발현된 자질과 기술까지 혈통을 통해 내려오는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이야기는 없다
이는 기획부터 제작 전 과정에 깊이 개입한 태국 제작사, 또 태국의 사회상과 함께 고려하면 더욱 큰 문제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태국은 왕정국가다. 공화정으로의 체제 개혁 시도, 또 민주화를 위한 시민사회의 열망이 없지 않았으나 태국의 왕정은 갈수록 공고해져만 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입헌군주제를 표방하고 있으나 '누구도, 어떤 방식으로도 국왕을 고발할 수 없고 심지어 비난마저 할 수 없다'는 헌법 제6조에서 보듯 법 위에 초월적 왕의 존재를 상정한 국가형태다.
헌법으로 왕권을 인정할 뿐, 정치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게 오늘날 입헌군주제의 기본적 형태다. 그러나 태국 왕실은 군부와 손잡고 그 영향력을 갈수록 키워온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20년부터 약 2년 간 있었던 태국 시민사회의 대대적 집회는 이 같은 현실을 개혁하고자 한 것이었다. 앞서 민주화에 성공한 한국 시민사회에도 적극 연대를 요청해 오는 등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졌던 이 운동은, 그러나 성과 없이 마무리되고 말았다.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득세한 야당마저 왕실 및 군부와 손을 잡은 것이 최후의 결정타가 됐다.
왕실과 군부, 또 자본 및 정치적 기득권을 확보한 세력 간의 공고한 결탁은 태국사회의 변혁을 가로막는 주된 이유가 됐다. 현실 속에서도 태국사회의 양극화는 선명하다. 정치적, 사회적 힘의 차이가 빈부차이로 이어지는 현상이, 사회적 지위가 세대를 거듭해 대물림되는 상황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런 나라에서 <아웃 오브 네스트>의 알레고리, 혈통의 강조와 운명에 순응하는 삶에 대한 강조, 현상유지에 가까운 질서의 복원이란 주제의식까지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떤 영화도 현실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더구나 아이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애니메이션이라면 그 사회적 가치와 효과를 고민해야만 한다. <아웃 오브 네스트>는 그런 측면에서 태국, 나아가 이 시대 어린이들에게 불온한 작품이라 여긴다. 21세기는 유전적 한계, 혈통의 제약, 사회적 편견과 맞서 도전하는 이들의 시대여야 마땅하다. 타고나길 서로 다른 동물들, 돼지와 여우와 두꺼비와 닭과 염소들의 세상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단일종 구성원의 최대 행복을 지향하는 시대이기에 더욱 그렇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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