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은 부서졌어도, 지울 수 없는 '학살'의 역사
[여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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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예비검속 백조일손 역사관 내의 이도영 박사 전시물 |
| ⓒ 여경수 |
나는 숙소에 짐을 정리한 뒤, 대학교 시절 친구 2명을 만나 모슬포항을 산책했다. 대학 입학 때부터 인연을 이어온 친구들이니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왔다. 대학 시절에는 군 입대 전후로 함께 자취를 한 적도 있을 만큼 막역한 사이들이다. 우리 중 제일 먼저 군대를 간 친구가 입소할 때 배웅을 갔는데, 그것이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한 친구의 아들이 3월에 군대에 입소한다니, 감회가 새롭다. 이들 친구들은 시간을 두고 육지에서 하던 일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내려왔다. 대학 시절에도, 사회생활에서도 늘 조직을 이끌던 그들이 이제는 제주에서 새롭게 정착했다.
우리는 섯알오름 근처에 있는 제주 예비검속 백조일손 역사관을 방문했다. 그곳에 상주하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으로 강제 구인된 시민들이 학살된 섯알오름 인근의 역사를 다루는 공간이다.
예비검속은 정식 재판 없이 사상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미리 구금하던 제도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전국 각지에서 예비검속된 시민들이 구금되었고, 그중 다수가 학살되었다. 육지에서는 한국보도연맹 가입자들이 예비검속되었는데, 제주에서는 한국보도연맹 가입과 상관없이 당시 군경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많은 제주도민이 예비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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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6군사정변 이후 파괴된 백조일손기념비 |
| ⓒ 여경수 |
제주 예비검속 백조일손 역사관에는 당시 학살 가해자들의 지휘체계도표가 전시되어 있었다. 제주 예비검속 학살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던 이는 이도영 박사이다. 지난해 대전 골령골에서 이도영 박사가 미국에서 보존하던 사진 자료를 찾아내 소개한 사진들을 본 적이 있다. 이곳에서 다시 이도영 박사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도영 박사가 4살이던 당시 그의 부친이 섯알오름에서 학살되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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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예비검속 백조일손기념관 |
| ⓒ 여경수 |
10여 년 전 아내와 함께 모슬포의 한 식당에서 먹었던 갈치 조림의 맛도 아직 잊히지 않는다. 당시 모슬포항에서 바라본 바다는 다른 제주의 바다와 달리 검붉고 짙었다. 올레길을 걸으며 알뜨르 비행장의 슬픈 역사와 섯알오름에서 백조일손비를 마주한 경험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무렵부터 <오마이뉴스>에 여행 기사를 쓰기 시작했으니, 대정읍은 나에게 영감을 준 곳이었다. 오늘 다시 대정읍을 찾으며, 또 하나의 영감을 얻고 돌아간다. 아시아에서 이행기 정의가 어떻게 실현되고 또 좌절되었는지,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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