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은 부서졌어도, 지울 수 없는 '학살'의 역사

여경수 2026. 2. 2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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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예비검속 백조일손 역사관을 찾아서

[여경수 기자]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210여 명의 제주 시민이 재판도 없이 섯알오름의 옛 일본군 탄약고 터로 끌려가 학살되었다. 늦게나마 그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비석을 세웠으나, 5.16 군사정변 이후 그 비석마저 정부에 의해 파괴되었다.
 제주 예비검속 백조일손 역사관 내의 이도영 박사 전시물
ⓒ 여경수
지난 주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제주지역대학 법학과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한 뒤, 모슬포항으로 향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해동지도를 펼쳐보면, 당시 제주는 크게 제주목·정의현·대정현, 이렇게 세 개의 고을로 나뉘어 있었다. 대정현은 제주도의 서남쪽에 있으며,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서귀포시 대정읍에 해당한다. 대정현 읍치 근처에 모슬포가 있고, 지도에는 마라도와 가파도로 나가는 뱃길도 그려져 있다. 그만큼 모슬포는 역사가 깊은 곳이다.

나는 숙소에 짐을 정리한 뒤, 대학교 시절 친구 2명을 만나 모슬포항을 산책했다. 대학 입학 때부터 인연을 이어온 친구들이니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왔다. 대학 시절에는 군 입대 전후로 함께 자취를 한 적도 있을 만큼 막역한 사이들이다. 우리 중 제일 먼저 군대를 간 친구가 입소할 때 배웅을 갔는데, 그것이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한 친구의 아들이 3월에 군대에 입소한다니, 감회가 새롭다. 이들 친구들은 시간을 두고 육지에서 하던 일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내려왔다. 대학 시절에도, 사회생활에서도 늘 조직을 이끌던 그들이 이제는 제주에서 새롭게 정착했다.

우리는 섯알오름 근처에 있는 제주 예비검속 백조일손 역사관을 방문했다. 그곳에 상주하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으로 강제 구인된 시민들이 학살된 섯알오름 인근의 역사를 다루는 공간이다.

예비검속은 정식 재판 없이 사상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미리 구금하던 제도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전국 각지에서 예비검속된 시민들이 구금되었고, 그중 다수가 학살되었다. 육지에서는 한국보도연맹 가입자들이 예비검속되었는데, 제주에서는 한국보도연맹 가입과 상관없이 당시 군경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많은 제주도민이 예비검속되었다.

1950년 8월, 예비검속으로 구금되었던 210여 명의 민간인이 섯알오름의 옛 일본군 탄약고 터에서 집단 학살되어 암매장되었다. 당시 군경의 엄격한 감시와 통제로 유족들은 시신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으며, 사건 발생 6년이 지난 1956년에 이르러서야 유해 수습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유족들은 훼손되고 뒤섞여 신원을 알 수 없게 된 유해 132구를 한데 모아 안장하였다.
 5.16군사정변 이후 파괴된 백조일손기념비
ⓒ 여경수
132분의 조상이 한날한시에 죽어 그 자손들이 모두 한 자손과 같다는 의미를 담아 백조일손지묘를 조성한 것이다. 한편 같은 사건으로 희생된 한림 지역 출신 피해자들의 유해는 유족들에 의해 별도로 수습되어 만벵듸 묘역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1961년 군사정변 이후 백조일손비는 군경에 의해 파괴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당시 파괴된 비석이 전시관에 보존되어 있다. 전형적인 2차 가해였던 것이다.

제주 예비검속 백조일손 역사관에는 당시 학살 가해자들의 지휘체계도표가 전시되어 있었다. 제주 예비검속 학살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던 이는 이도영 박사이다. 지난해 대전 골령골에서 이도영 박사가 미국에서 보존하던 사진 자료를 찾아내 소개한 사진들을 본 적이 있다. 이곳에서 다시 이도영 박사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도영 박사가 4살이던 당시 그의 부친이 섯알오름에서 학살되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의 노력으로 그의 부친 뿐 아니라 제주에서 예비검속으로 학살된 많은 이들의 명예가 더욱 일찍이 회복되었다. 전시관에서 이도영 박사가 쓴 원고에서 "섯알오름의 대학살"이라는 문구를 보았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정부 수립 전후로 4.3사건으로 제주에서 수많은 시민을 학살했던 것도 모자라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자의적인 판단으로 수백 명의 제주도민들을 예비검속하고 학살했다.
 제주 예비검속 백조일손기념관
ⓒ 여경수
제주 예비검속 백조일손 역사관을 둘러보고, 다시 우리는 모슬포항에 있는 횟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방어잡이를 나섰던 어선들이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내가 방어를 처음 먹은 곳도 바로 이 제주였다. 현지에서 먹으니 더욱 신선하게 느껴진다. 모슬포의 식당에서는 방어 내장을 볶아낸 음식도 함께 내어준다. 우리는 회를 주문한 이후, 방어 내장을 재료로 한 내장탕도 추가로 주문했다.

10여 년 전 아내와 함께 모슬포의 한 식당에서 먹었던 갈치 조림의 맛도 아직 잊히지 않는다. 당시 모슬포항에서 바라본 바다는 다른 제주의 바다와 달리 검붉고 짙었다. 올레길을 걸으며 알뜨르 비행장의 슬픈 역사와 섯알오름에서 백조일손비를 마주한 경험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무렵부터 <오마이뉴스>에 여행 기사를 쓰기 시작했으니, 대정읍은 나에게 영감을 준 곳이었다. 오늘 다시 대정읍을 찾으며, 또 하나의 영감을 얻고 돌아간다. 아시아에서 이행기 정의가 어떻게 실현되고 또 좌절되었는지,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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