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자식 간에는 비리를 덮어주는 것이 효일까

김기창 2026. 2. 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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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해석에 대해 법학자가 드리는 질문 6

동양과 서양의 법과 사상을 가르치면서 <논어>를 늘 곁에 두어 왔다. 이 글은 법학자의 시선으로 기존의 논어 해석에 대한 생각을 밝힌 것이다. <기자말>

[김기창 기자]

논어에는 섭공(葉公)이라는 자가 등장하는 구절이 셋 있다. 섭공은 초(楚)나라 섭(葉) 지역을 관할하던 대부 심제량(沈諸梁)이다. 도지사(縣尹) 정도에 불과했던 그는 초나라 제후가 스스로를 '초왕(楚王)'이라고 불러온 상황에 편승하여 자기도 칭호를 격상시켜 스스로를 '섭공(葉公)'이라 부른 자이다.

'공(公)'은 제후국 군주를 뜻하는 말이므로 그런 지위에 있지도 않은 자가 '공'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이런 섭공을 노골적으로 무시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 논어에 먼저 나온다.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봤는데, 자로가 대꾸도 안 했다는 내용이다(7.18).

초나라가 북방으로 영토를 넓히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채(蔡)나라와의 접경지역을 개발할 때 섭공은 부함(負函)이라는 고을을 통치한 적이 있다. 이때 고을 주민들이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섭공은 고을 주변을 성벽으로 둘러싸 주민들을 가둬두는 행위를 하기도 했다.

자기가 통치하는 고을의 주민들이 견디지 못하여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 그 고충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해결하려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한 통치자의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섭공이 한 일은 자기 주민을 동원하여 성을 쌓아 자기 주민을 감금해 보겠다는 것이니 공자가 섭공을 높이 평가했을 리 없다.

논어 제13편에 수록된 다음 구절은 아마 이런 시기에 공자와 섭공이 만나서 나눈 대화였던 것으로 짐작된다(13.16):

섭공이 정치에 관해 물으니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들도 오겠지요(近者說 遠者來)."

주민의 이탈을 막아보겠다고 주민을 억지로 가두어 두는 한심한 정치인 섭공이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상황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이 상황에서 공자가 내놓은 대답(近者說 遠者來)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그럼에도 섭공은 자기가 통치하는 고을에는 매우 정직한 사람이 있다면서 "아버지가 양을 훔쳤는데 아들이 그걸 증언했다"는 것을 자랑거리로 늘어 놓는다. 아들이 아버지의 범죄를 증언하는 상황은 행복한 삶의 모습이 아니다. 범죄를 저지른 아버지나 그런 아버지의 처벌에 조력했던 아들이나, 어디 가서 남에게 자랑할 상황은 아니다. 이런 불행한 가정사를 빌미로 '정직'을 들먹이며 자기 고을의 법집행이 엄정하게 이루어진다고 믿는 섭공은 통치자로서의 감수성이 부족하고 정직에 대한 이해도 미숙하다.

아버지의 범죄를 증언한 아들의 행위는 정직한 행위였을 수도 있고, 정직이라는 올가미에 걸려 차마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섣불리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섭공이 경솔하게 늘어놓는 정직에 관한 이야기에 공자는 이렇게 찬물을 끼얹는다(13.18):

우리 고을의 정직은 그것과 다릅니다. 아버지가 한 일을 아들이 숨겨주고 아들이 한 일을 아버지가 숨겨주는 것이 정직일 수도 있어요. (父為子隱 子為父隱 直在其中矣)

아버지의 범죄를 증언하는 아들을 무작정 정직하다고 추켜세우는 섭공처럼 경솔한 인식 수준으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자의 입장이다. 정직은 모든 가치를 뛰어 넘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정직만큼이나 중요한 다른 가치들이 있을 수 있고, 어느 것도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올바른지는 섭공처럼 단순 고지식하게 함부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정직함이 언제나 예법(禮)에 합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법에 어긋나는 정직함은 자신을 옥죄기만 할 뿐(直而無禮則絞, 8.2), 자랑할 일도 칭찬할 일도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는 정직이 실은 비열한 고자질이나 이간질에 불과할 수도 있다(17.24).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직하고도 바람직한 것인지는 섭공처럼 섣불리 판단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차라리 서로 덮어주는 것이 "정직일 수도 있다"는 공자의 말은 정직(直)의 복잡 미묘함을 지적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후대의 학자들은 고지식하게도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덮어주는 것이 정직"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이런 오해는 문법적으로도 용납되기 어렵다. 공자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덮어주는 행위를 언급한 다음, "直在其中矣"라고 한다. 그 뜻은 "그게 정직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 "그것이 정직이다"라는 말이 아니다.

이 점은 "… 在其中矣"라는 표현이 나오는 다른 구절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짓다 보면 굶을 수도 있고(餒在其中矣), 배우다 보면 일자리가 생길 수도 있다(祿在其中矣)는 구절(15.31), 단출한 식사 후 물 마시고 팔베개를 하고 누우면 그 또한 즐거울 수 있다(樂亦在其中矣)는 구절(7.15)에서 보듯이, 在其中矣라는 표현은 그럴 수도 있다(그것도 가능한 결과 중 하나다)라는 뜻이지, 반드시 그렇다(그것 외에는 가능한 결과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 덮어주는 행위가 "정직일 수도 있다"는 공자의 말은 정직(直)에 관한 섭공의 이해가 경솔함을 깨우쳐 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구절이 효(孝)에 관한 것이라고 오해한 맹자는 자신의 오해를 더 한층 발전시켜 가족 구성원 간에는 무조건 감싸고 돌아야 하고, 부모가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 행위를 저질러도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하며 이것이 효라는 생각을 매우 길게 늘어 놓았다. 가족 간의 사랑을 절대적 가치로 숭배하는 맹자의 생각은 정직을 절대적 가치로 떠받든 나머지 다른 가치들을 파괴하는 섭공의 경솔하고 고지식한 인식 수준과 마찬가지로 미숙한 발상이다.

정직도 예법에 맞아야 하는 것처럼, 효 또한 예법에 맞아야 한다. 예법에 어긋나는 정직함은 올가미가 되어 자신을 옥죌 뿐이고, 예법에 어긋나는 효는 정상적 인간이 당연히 가져야 할 윤리적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친인척 간의 부패와 비리를 조장하는 사악한 결과를 낳게 된다. 부모 형제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효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효가 무엇인지라는 질문에 공자는 "어기지 않는 것(無違)"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부모님 말씀에 절대 복종하고 부모 형제를 무조건 보호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런 오해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공자는 자신의 대답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까지 했다. 즉, "어기지 않는 것"이라는 말은 예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2.5). 부모 형제 간의 사랑도 예법(올바른 윤리 규범)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 효가 예법을 초월한 절대적 가치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효자 노릇을 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윤리 규범을 어겨도 된다는 맹자의 입장은 맹목적이고 몰상식한 것일 뿐, 공자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 효 또한 윤리적 범위 내에서 준수되어야 할 가치일 뿐, 무조건 내세울 것이 아니다. 맹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심각하게 오해하고 왜곡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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