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무기징역 마땅하다"…'보수의 심장' 서문시장 민심은 싸늘[르포]

우수연 2026. 2. 2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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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선고 다음날인 지난 20일 서문시장
'정치 트라우마' 시달리는 상인들
"정치인들 시장 방문, 짜증 난다"
50대 이상 전통 보수 지지층도 균열 조짐
민주당에 반감은 여전…정치적 무관심으로 연결

"단호하게 잘하지 싶어가 찍어준 거 아입니까. 임기도 얼마 안 남았는데 조금만 참았으면, 그래도 보수 인심은 안 잃었을 거 아입니까."

윤석열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바로 다음 날인 지난 20일. 대구에서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여정동씨(78)가 대구 중구 서문시장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의 말끝에는 기대했던 보수의 모습이 무너진 데 대한 허탈함이 실려 있었다.

금요일 오후 찾은 서문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영남권 최대 전통시장인 이곳은 과거 박근혜·윤 전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찾던 '보수의 심장'과도 같은 장소다. 하지만 이날 시장 안에서 정치의 흔적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보수 진영에서만 두 차례 탄핵을 겪은 이후 서문시장은 일종의 정치적 트라우마를 겪는 듯했다. 윤 전 대통령이 과거 방문해 들렀던 칼국숫집에는 그의 사진 대신 트로트 가수의 사인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고, 김건희 여사가 찾았던 분식집 주인은 '기자'라는 말에 표정부터 굳어지며 손사래를 쳤다.

지난 20일 오후 찾은 대구 서문시장은 평소와 같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수연 기자

분식집을 운영하는 이모씨(55)는 "정치인들이 서문시장에 기운 받으러 온다 하지요? 사실 상인들 마음은 오는 걸 싫어해요. 먹고 살기도 바쁜데 하루 종일 경찰들 서 있고 통신 보안 걸리고 짜증 나죠"라고 말했다.

자신을 국민의힘 책임당원이라고 소개한 그는 이어 "(국힘에) 크게 실망하고 있죠. 대구는 '무조건 보수'라는 얘기도 이제는 70·80대 어르신들 얘기 아닐까요? 국힘은 내부 총질하기 바쁘고 다음 인물은 아예 없는 것 같고…. 제 주변에도 돌아선 사람 많습니다. 대구 시장요? 저는 김부겸씨 찍을랍니다"라고 말했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이천기씨(78) 역시 윤 전 대통령의 무기징역 선고에 대해 "마땅하지. 잘못했으니 벌을 받아야 안 되겠나"라며 "(선거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하도 정치를 못 하니까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20일 대구 서문시장의 한 칼국수 가게. 과거 윤석열 전 대통령이 찾았던 이 가게의 한쪽 벽에는 윤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었지만 현재는 비어있다. 우수연 기자

지역 주민 단골이 많은 칠성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산한 골목에는 손님들의 말소리보다 상인들의 한숨이 먼저 들렸다. 상인들은 얼어붙은 대구 경제 상황을 토로하며 정치권을 향한 날 선 말을 쏟아냈다. 윤 전 대통령의 무기징역 선고에는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정치에 대한 냉소도 함께 배어 있었다.

40년 넘게 소금 판매상을 운영해온 김모씨(71)는 "윤석열이가 그건(계엄) 잘못했지. 왜 그걸 그런 식으로 하노. 정치를 안 해본 사람이 정치를 하니까 그렇지"라고 지적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힘도 하나도 마음에 안 든다. 투표할 마음 한 개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국회의원들은 돈도 많으면서 집값 오른다고 생난리를 친다. 집이 6채인지 8채인지…돈 있는 사람 다 국회에 가 있다. 즈그들은 70만원짜리 밥 먹고 살지만 여기는 6000원짜리 밥도 맛있다 카는 사람이 천지인데. 도대체 어느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고? 서민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산물 판매상을 운영하는 김모씨(74)는 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사형 나와야 맞지 않겠어요? 사람들 때려잡는 검사가 바로 대통령을 했으니…. 내란을 일으켜 놓고 국민의힘은 사과도 안 하고 잘났다고 떽떽거리고 있잖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선거 때 와서 '우리 안 찍으면 전라도보다 더 못 산다' 카면 또 다들 국힘 찍어주겠지. 대구 사람들 또 넘어간다"고 자조 섞인 말을 남겼다.

시장에서 만난 대구시민 이현진씨(55)는 "이재명도 밉지만 '윤 어게인'은 더더욱 아니다"며 "보수 지켜달라고 뽑아놨드만 계엄으로 하루아침에 정권을 넘겨준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탈당까지 한 마당에 왜 '윤 어게인'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대구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는 칠성시장. 상인들은 지역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손님 수도 급격히 줄었다고 토로했다. 우수연 기자

물론 내란 규정에는 선을 긋거나, 계엄의 맥락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보수적 인식도 적지 않았다. 이곳에서 젓갈 판매상을 운영하는 심강호씨(60)는 "내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판부도 실망스럽다"며 "국민의힘은 단합도 안 되고 내부 총질만 하는데 되겠나. 이제는 오래된 인물 말고 새로운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택시 기사 기영환씨(64)도 "(선고는) 예상한 대로 나왔다"면서도 "민주당이 전부 탄핵시키고 사사건건 예산 깎고 그래한 거는 왜 안 뒤집니까? 나는 이재명이 나오면 테레비도 안 봅니다. 대구에 그런 사람 많십니데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 시민들 과반수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 여기는 공천만 받으면 말뚝이라예. 그러니까 당 보고 찍지 후보자 검증 이런 건 다들 관심이 없지요"라고 냉소적으로 덧붙였다.

동대구역에서 만난 80대 김모씨 역시 "(윤 전 대통령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제대로 하지도 못할 거 했으면 자기가 책임져야지"라고 선고에 대해서는 수긍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대구에서 이래 나가면 선거에서는 헛일이라. 정신 못 차리고 즈그들끼리 맨날 싸우는데 그게 되나. 대구서도 마이 돌아섰어. 나이 많은 사람도 그래 생각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더하겠지…"라며 걱정을 내비쳤다.

40년 넘게 칠성시장에서 소금판매상을 운영해온 김모(71)씨는 "서민을 위한 국회의원은 없다"며 정치권에 대한 냉소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우수연 기자

대구=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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