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 삶의 터전에서 구원의 역사 이뤄가는 ‘기체교회’ 꿈꿔”

경기도 성남 우리는교회(박광리 목사) 부교역자인 정철용 목사는 2023년부터 제주도에서 사역하고 있다. 주중에는 한 목수의 조력자로 일하며 주민과 어울려 산다. 교회가 제주도에 만든 숙소인 세그루하우스 관리도 정 목사가 맡고 있다.
육지에서 내려온 성실한 젊은이, 지역의 일꾼,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다 주일엔 뭍으로 올라와 우리는교회 새가족부를 담당한다. 교회도 제주와 성남을 오가며 사역하는 정 목사에게 부교역자에 상응하는 사례비를 지급한다.
또 다른 부교역자인 김형우 목사와 박효빈 전도사는 경기도 의왕에 있는 카페 산타벨루가 사장과 매니저다. 교회는 이 카페 전세 보증금을 댔다. 그들 역시 주중에는 이곳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전하는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교회가 추구하는 ‘기체교회’의 모습이다.
최근 교회에서 만난 박광리(57) 목사는 “영국 신학자 피트 워드는 전통적인 예배당 안에서 사역하는 고체교회, 미셔널처치로 대표되는 유연한 액체교회의 개념을 제시했다”며 “우리 교회는 그것을 넘어 성도들이 각자의 삶으로 흩어지고 그 터전에 스며들어 구원의 역사를 이뤄가는 기체교회를 꿈꾼다”고 설명했다.
박 목사는 뒤늦게 신학을 했다. 연세대 의공학부를 졸업한 뒤 대학교수로 일했고 경기도 분당우리교회(이찬수 목사) 찬양 간사로 섬기다 40세에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에 입학했다.
그가 청년 시절 다니던 교회는 성령의 은사가 있는 교회였다. 방언과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교인이 오지 않는 주중에는 예배당에서 친구들과 피자를 만들어 팔며 온종일 교제하고 복음을 전했다.
“대학교 3학년 때 교회에서 성령을 받고 목회자가 되기로 했어요. 그런데 당시 멘토 목사님께서 캠퍼스 복음화를 해보라는 제안을 하셔서 결국 교수가 됐죠. 수업 후 학생들과 성경 공부를 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는데 교수가 일부 학생과 자주 만나는 게 공정성 문제도 생기고 한계가 있더군요. 이후 지인의 추천으로 분당우리교회에서 사역하게 됐습니다.”
이전에 그가 다니던 교회에서 뜨거운 성령을 경험했다면 분당우리교회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배웠다. 또 미국교회를 탐방하며 예배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목사 안수를 받고 교구 목회자로 목양을 경험한 후 2016년 우리는교회를 분립 개척했다. 처음부터 예배당을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도 을지대의 한 건물을 빌려 예배드리고 있다.
박 목사는 우리는교회를 복음의 본질을 알아가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복음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셨기 때문에 그 기쁨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은혜받으려면 기도도 열심히 하고 성경도 많이 읽고 헌신적으로 사역해야 한다는 기조가 한국교회에 깔려 있어요. 그런데 내가 무엇인가를 해서 은혜를 받는다면 그건 은혜가 아니라 보상이나 마찬가지죠. 내가 기도하지 못하고 교회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영혼이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찾아오신다는 게 은혜에요. 그것을 성도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이런 관점에서 이 교회는 많은 훈련을 하지 않는다. 주일예배와 설교 나눔과 성경 읽기 소그룹, 인대인(인생과 인생의 만남) 제자훈련 등만 진행한다. 특별한 모임 중 하나는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얼라인먼트(alignment)다. 이 모임은 특별한 목적이나 프로그램이 없다. 성도들이 1박 2일간 모여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전부다. 삶을 나누며 교제하는 이들도 있고 자발적으로 기도하기도 한다. 교회는 안전하고 여유로운 만남의 장만 제공할 뿐이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자율성을 주면 신앙적으로 나태해지거나 교회를 떠날 것을 염려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2년 정도만 엄격한 훈련에서 해방되면 복음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지는 때가 옵니다. 그다음은 가정과 회사 공동체에서 하나의 교회로 살아가게 되는 거죠. 우리 교회는 성도들의 그런 발걸음을 돕고 있습니다.”
박 목사는 지난해 분립 10년 차를 맞아 부교역자들과 교회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교회 근처에서 출석하는 성도는 30%였고 나머지는 먼 곳에서 왔다. 먼 곳에서 오는 이들을 위해 교회가 달라져야 할지 고민했지만 결론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다가올 10년도 묵묵히 가던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미국의 신학자 레너드 스윗은 처음엔 복음을 전하겠다는 진실한 소명으로 시작한 교회가 시간이 지나며 성도들에게만 집중하는 목회 중심 교회가 되고 나중엔 현상 유지만 하다가 박물관 교회가 된다고 했어요. 이렇게 되지 않으려고 주의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본질에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이런 교회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성남=박용미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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